베를린 올림픽 시상식. 왼쪽부터 남승룡(동메달), 손기정(금메달), 하퍼(은메달). 동메달을 딴 남승룡 선생님의 울먹이는 듯한 표정을 보니 나까지 덩달아 슬퍼진다.
일찍이 미츠보시(三星) 왕국의 건희 황제는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고, 박성광은 "더러운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고 말했지.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역시 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의 희생양이셨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셨지만,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생에게 묻히면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셨던 고 남승룡 선생.
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 육상계의 1인자는 남승룡이었지. 양정고보(현 서울 양정고)에 다니던 1931년부터 1933년까지 전 조선 마라톤대회를 3연패한 뒤 일본 메이지대(明治大)에 스카웃되었고, 3명을 뽑는 베를린 올림픽 일본 지역예선(3인 선발)에서도 극동 지역의 내로라하는 준족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지.
반면 손기정은 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만년 2인자였어. 양정고보에서는 남승룡에게 에이스 자리를 내 주었고, 올림픽 예선에서도 재경기까지 가는 사투(원래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스즈키라는 선수의 통과를 기대했는데, 이 스즈키라는 놈이 약 1분 차이로 4위에 그치자 "한 경기만 가지고서 손기정의 기량을 검증하는 것은 무리다"라고 평균기록을 운운하며 억지로 재경기를 만들었었지) 끝에 간신히 3위를 지켜 베를린 행 비행기에 탑승한,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였지.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얄궃었지. 경기 당일 따라 베를린의 날씨는 35℃에 육박했고, 더운 날씨를 의식한 남승룡 선생은 '초반부터 속력을 내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어. 죽으나 사나 20㎞ 지점에서 승부를 걸어야지'하면서 초반 15㎞ 지점까지 느릿느릿 달린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3위에 그쳤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손기정 선생은 초반부터 앞서 달리며 서양 선수들을 뒤에서 도발한 것(트래쉬 토킹)이 효과를 봐 1위로 골인 테이프를 끊은 거야.
이 때부터 남승룡 선생은 조선 육상계의 1인자에서 비참한 2인자로 전락했지. 자신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손기정한테 패한 정신적 고통도 컸지만, 그보다 더 큰 고통은 2인자라는 이유로 손기정에 비해 차별을 받는 것이었지. 자본가들의 후원금과 스포트라이트는 손기정 선생에게만 돌아갔고, 해방된 조국은 첫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지도력이 아닌, 금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손기정 선생을 감독으로 선출하고, 남승룡 선생을 플레잉 코치로 임명하는 모욕감을 줬어(그렇다고 손기정 선생을 폄하하는 얘기는 아니라는 거 알지? 근데 플레잉 코치가 뭔가, 플레잉 코치가).
결국 남승룡 선생은 사회의 차별에 지치셨는 지는 몰라도 한국전쟁 종전 후 고향 순천으로 내려가신 뒤 세상과의 연락을 끊으셨고, 2001년 봄 쓸쓸히 세상을 떠나셨어.
저 세상은 차별도 없고, 한도 없는 세상일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님, 남승룡 선생님 등이 계시는 저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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