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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라는 섬,
섬은 섬이 주는 고립감, 낯설음, 새로움, 그리고 바다와 산이라는 자연과 자신 본래의 민낯으로 대면하게 해준다. 그 청량한 감정들이 혼재해 있으면서도 단순한 날 것으로 정리해 주는 마력이 섬에는 묻어 있다. 무언가 변화에 부딪치고 좌절할 때, 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때 류의 두려움 따위에 쉬이 용기가 나지 않고 망설이고 있을때면 이끌리 듯 섬을 찾곤 했다. 아마 제주를 처음 찾을 때도 그러했던 것 같다. 무엇에 절망 했을 테고 두려웠고 용기가 필요했고 정리가 필요한 순간. 일상다반사.
딱히 여행이란 이름의 걸 맞는 것들을 따로 준비하지도 않고 최소의 정보만으로 현지 조달하던 습성대로 길을 나섰다. 짧은 여정이라면 가까운 서해의 섬들을, 좀 긴 생각꺼리나 시간이라면 남해의 섬들을 다니곤 했는데 그땐 여정의 길이가 얼마큼인지 측정할 수 없었다. 얼마나 머물게 될지 몰랐고 결정하지 못했다. 아마 자금의 한계 만큼 머물 요량이 가장 컸을 거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제주였다. 우리네 섬중에 가장 거대하기에 다닐 곳이 많을 것이고 그만큼 긴 시간이 내게 배려될 거란 직관적인 판단.
제주는 초행이였다. 여타 섬과 제주의 공통점은 낯선 곳 이란 것이고 점만 빼고는 모든 것이 달랐다. 물론 온전히 나만의 견해다. 항시 통통거리는 배나 시원한 쾌속선으로 안내 되는 섬들과는 달리 비행기에 몸을 싣고 섬에 이르는 여정은 시작 부터 다른거다. 당시 처음 개통되었던 수줍은 아이 같은 제주항공은 저렴했고 신선했다. 싼게 비지떡이란 지론. 배낭속 짐이라곤 겨울에 맞는 두툼한 외투 두어개와 단순한 트레킹화와 여분의 운동화 그리고 가벼운 책 몇 권를 챙겼을 뿐이였다. 딱히 한라산 등산이나 특정한 장소 (서귀포나 마라도) 를 가려고 한 것은 아니였기에 현지어를 구사하는 현지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이동하면 될거란 막연함이 친구되줄 거란 기대였을까?
올레길을 안 것은 제주 공항에서 였다. 여정 어디나 단체 여행지가 아닌 곳이 있기 마련이고 숨겨진 곳은 발견되기 마련이다. 올레길이 대중의 유명세를 타기 전이였을 거다. (떠나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나만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 인간 구경이나 하는 단체 여행지가 아니라 홀로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곳. 제주말로 '올레'라는 길이 막 도착한 공항 안내 책자 속에 숨어 있었다. 다행스러운 발견. 고작 이름난 곳의 여행지에서 바가지를 써가며 생뚱맞은 주인네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것도 홀로 여관이나 여인숙에 묵게 되는 것도 여간 고통스러운게 아니란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더욱 반가웠을 거다.
날은 어두워 지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의 어둠은 낭패의 지름길이 될 수 있었다. 길로 들어 서기 전 머물 곳 부터 정하는 것이 여정의 순서일터. 올레길 사무처라는 곳으로 전화를 했다. 올레길의 사무처라는 것은 따로이 만들어진 관광 사업의 목적의 사무공간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낼수 있었고 특별히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담담하고 간단한 정보들을 내게 주었다. 감사. 알려준 대로 시외 버스를 탔다. 버스는 시흥리라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올레길 제 1코스의 시작점인 시흥리란 곳으로, 우도라는 섬의 섬과 가깝다는 설명.
지구는 남쪽으로 향할 수록 더워진다는 단편적인 지식 따위가 얼마나 우스운지는 얼마 지나지 않고 깨닫게 되었다. 겨울 제주는 상상이상으로 추웠다. 배낭에 뭉개져 있던 패딩점퍼를 꺼내 입고 어두워져 가는 제주 어느 곳인지 모를 도로로는 해변이 펼쳐 지고 있었다. 바다. 제주의 바다. 제주가 섬이란 걸 실감할수 있을 때는 오로지 비행기 위에서 바다에 덮힌 땅덩이를 볼 때 뿐이다. 제주는 뭍이였고 진짜 섬 사람은 없다. "섬의 정신은 언제 사라지게 되었을까?"란 질문은 무의미하다. 내가 사는 도시도 그러한 것과 같이. 지구의 기억에는 모든 곳은 땅이였고 바다가 되었으며 다시 섬이 되고 산이 되고 들이 되었을 터. 도시 이전의 논밭위에 초가집이 지어 지고 허물어 지고 그 위에 아파트와 상가와 빌딩이 만들어 지는 것. 도시라는 이름은 우문이고 제주가 섬이라는 질문도 우문이였다. "다 왔어요 내리세요 총각" 처음 버스에 오를 때 부탁대로 버스기사분은 흔쾌한 목소리로 알려 주었다. 감사.
벌써 시흥리의 하늘은 완전한 어둠이 내려져 있었다. 숙소는 안내책자에 전화번호가 나온 곳, 올레길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게스트 하우스 였다. 전화로 물어 물어 찾아 갔다. 도시의 조명발이 없는 시골의 어둠은 말그대로 칠흑 같다. 어둠을 미로 삼아 숙소로 향했다. 게스트 하우스는 저렴했다. 싼게 비지떡이고 콩고물. 게스트하우스 지기 주인장은 낯선 반가움으로 대해 주었다. 생긴지 얼마 안된 게스트 하우스 였고 그래서 특별 할인 기간의 행운이란것과 공동 합숙은 일만원이고 선불이란것. "혼자 왔어?" 따위의 질문이 없는 점이 마음에 든다. 공동 합숙은 방 하나에 이층 침대 대 여섯개가 있는 형태. 선착순이란 진리대로 침대 순서가 정해 졌고 올레길의 여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짐을 풀고 몸을 낯선것에 익숙해 지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순서... 인생의 순서는 어느 곳이나 비슷한 법.
저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이유들로 올레길을 찾고 있었고, 제주올레길을 자주 찾는 이들을 '올레꾼'이라고 부른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공동합숙의 장점은 '올레꾼'은 올레꾼의 정신과 방향에 대한 브리핑이 자연스레 새롭게 짐을 풀는 새내기에게 들려 준다는 것이다. 간단한 통과의례인 통성명과 어디곳에서 흘러 왔는지 정도의 인사만 치르게 된다면 다들 친절한 금자씨가 된다. 한라산을 등정하고 올레를 찾은이도 있었고 제주를 자주 찾는 꾼도 있었고 낚시 여행을 온 중노인도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리버리 세상이란 곳을 마주하는 녀석도 있었다.
"처음이세요?" 그 중 가장 커다란 배낭을 소유하고도 모자라 각종 도구와 매우 전문적으로 보이는 카메라를 점검하고 있는 청년은 특유의 경상도 톤으로 친근하게 내게 말을 건낸다. 모든 것의 처음은 설레고 어려운 법. 여인과 처음 손을 잡을 때도 처음으로 깊은 키스를 나눌때도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나눌때도 그러하다. "제주는 처음이라 잘 몰라요. 잘 알려 주세요" 라고 나도 선의의 액션을 취했다. 그리고 악수후 결투 인가?
그는 서글서글한 외모와 건장한 덩치의 사내 였다.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해 준다. 꽤나 많은 여행 경험들을 축적한 티가 난다. 제주의 첫날 저녁부터 제주통돼지를 먹었다. 매일 저녁 각 만원을 각출하면 게스트하우스에선 작은 파티가 열린다고 했다. 정보도 필요했고 저녁도 필요한 난 참여 하기로 했다. 아직 몸이 온전히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몇점 집지도 못하고 배가 불러왔고 먼저 익숙한 사람들과 여성 공동합속소 사람들이 교류를 나누는 곳에서 난 타인들의 대화를 조용히 입력하고 있었다.
자리가 파해 질때쯤, "와 눈이다" 누군가의 신호와 함께 다들 하우스의 마당으로 몰렸다. 행운을 만난 표정이였다. 제주는 눈이 오는 곳이라는 것과 내게 올 첫 눈이 제주라는 사실은 아무런 연관 관계도 없는 것이지만 왠지 아이처럼 눈을 만나게 되는 것은 여행이란 의미안에만 가능한지도 몰랐다. 내일 이른 아침에 '성산봉'이란 곳에서 일출을 보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차를 태워 주겠다고 하는 주인장은 첫 눈이 온 기념이라며 반가운 웃음을 웃었다. 눈이 점점 굵어 지고 있었다. 첫날의 밤은 좀 처럼 잠을 청하지 못했다. 합숙소 작은 창으로 서리치게 눈이 내리고 있었고 바다를 품은 바람은 괴상한 소리를 지르는 밤이였다. 전날 걷기로 피곤한 여객들이 금새 하나둘 잠에 빠져 들어 갔고 난 한참을 내 생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상상한 뒤에야 뒤척 거리다 잠에 들었다.
예상치 못했다. 다음날 제주의 이른 아침은 그야말로 새하얀 눈의 세상이 되어 있었다. 폭설이 내린 후였다. 첫날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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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