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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눈물나게 아름답다라고 한 적이 있어 넌.
나는 무얼 하러 올레길에 온 것이었지. 잊고 있었다. 아니 잊혀지는 거다. 자연스러운 현상. 두어 밤이 지나던 제주였다. 이젠 숙소의 사람들과 익숙해 졌다. 유난히 추운 겨울을 함께 안고 있는 모양이다. 도란 도란 얘기를 저녁이면 나누었다. 누군가의 연애담을 듣고 웃기도 하고 누군가의 생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어지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들 속. 자리잡은 나는, 엉덩이를 무겁게 그들 안으로 집어 넣고 앉는 건지도 몰랐다. 올레의 밤은 항상 그랬던 건 아니었다. 무거운 외로움이 내려 앉기도 했고 또 무서운 침묵의 밤도 있었다. 많이도 익숙해진 그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 결국은 타인. 나그네는 너무 많은 정을 주지 않는 법. 그게 나그네의 숙명이다. 미련이 없어야 나아갈 수 있다. 게스트 하우스의 마지막 날은 일행과 함께 하기로 했다. 올레 2코스를 같이 걷기로 한 것. 전날 먼저 자신의 여정을 마무리 하는 대전에선 온 누이는 자신을 ‘한가인’을 닮았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한가인? 그게 누구? 라고 해서 사람들을 폭소하게 했다. 서른 후반을 다다른 나이였지만 한때는 누구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웠을 여자였다. 누이는 연락처 하나를 우리에게 남겼다. “참 좋은 곳이더라. 그 숙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인데 좋은 언니가 주인이 곳이야. 그리고 …” 그리고? 작은 비밀을 남기고 누이는 떠났다. 서두르지 않는 아침이였다. 간단히 라면을 끊여 먹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는 사람. 사진을 점검하는 사람. 토스트를 보기 좋게 만들어 건네는 사람들. 모두 모여 출발을 준비했다. 날은 잔뜩 흐려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눈이 오기 시작했고 점점 그 양을 더해 갔다. 함께 제주의 도원결의의 멤버중 한 처자가 급한 연락을 받았다. 이른 아침. 미간을 좁인 채 매우 당황하고 걱정스런 눈빛의 그녀는 전화 통화 내내 “응, 응, 알았어, 빨리 올라 갈게”를 반복하고 있다. 사람들은 걱정 물음으로 그녀를 일순 바라 봤다. 할머니가 위독하시다고... 글렁이는 눈으로 그녀는 짧게 답했다. 급히 가장 빠른 공항편을 알아 보곤 우리와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걱정마. 괜찮으실 꺼야” 오랜 친구였던 것 같이 사람들이 위로를 건넸다. 그녀는 여고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국어 선생이라고 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고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와 어울리지 않는 닭살 멘트를 하다 우리에게 들키고는 매우 쑥쓰러워 홍당무가 되는 사람이었다. “잘 가요. 할머님이 아픔을 딛고 일어 나실 꺼예요. ” 따위의 위로는 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떠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삶이니까.
나의 외할아버님이 가실 때 난 얼마나 실감했던가 모르겠다. 연이어 그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신 할머님이 가셨을때야 일제시대를 통과한 할아버님이 어릴적 그의 무릎에서 해주시던 옛날 얘기를 흥미롭게 듣던 내가, 그의 주머니는 항상 세배돈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던 어린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여름 방학 때 한아름 책을 안고 당신들이 살던 시골, 계곡에서 연애소설을 읽던 여름. 할머님의 장례식이 끝나고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까닭 없는 눈물을 흘렀던 기억. 국어선생도 그렇게 되는 날이 지금이 될지 아님 고비를 넘기시고 난 한참의 시간을 더 지난 뒷일수도 있지만 그건 통과 해야만 하는 거라고 터널 같은 거였다. 선생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선생도 알고 있을 거라 믿었다. “잘가요. 건강해요.” 국어선생을 떠나 보내고 남은 일행은 2코스를 시작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모두 여섯명의 남겨진 사람들 아니 떠나온 사람들. 가장 어린 처자는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취업을 앞 두고 있다 했다. 명랑하고 맹랑하기 까지 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띠우려 마구 오버를 한다. “제가요. 요리를 너무 열심히 배운 나머지 이렇게 살이 찌고 말았거든요. 남은 음식은 꼭 버려 주세요. 먹지 말고” 라며 재롱을 피운다. 모두 웃어 준다. 착한 녀석들. 난 웃기지 않았다. 허나 말하지 않았다. 그냥 웃었다. 이런 것이 예의라고 누구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었던 거다. 눈발은 점점 거세졌다. 그러나 앞 뒤로 줄을 지어 얘기를 하면 걷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올레 2코스는 올레꾼들 사이에 가장 평범하고 재미 없는 곳이라고 하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개인의 몫이고 제주 바람과 각 마음의 차이리라. 광치기 해변이란 곳이 출발점. 한동안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 위의 쌓이는 눈을 떠서 일행들에게 먹어 보라고 나는 권했다. 그래야 마음속에 너희의 길로 소화 되는 거라 해줬다. 눈보라에 얼굴을 꽁꽁 싸맨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뚝방길을 지나 오름을 오르고 있었다. 눈보라가 더욱 새차게 쳤다. 얼어 있는 돌들은 미끄러웠고 튼튼한 경상도 청년이 앞장을 서서 길을 내고 그 뒤를 일행이 뒤따르고 있었다. 요리학교를 나온 처자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걷는 경험은 처음 이라 했다. 통통한 걸 조금 넘은 몸무게 탓에 버거워 했다. 나는 그 처자 뒤를 받이고 걸었다. 경산도 청년의 지팡이를 빌려준 탓에 어린 처자는 힘겹지만 오름을 올랐다. 쉴새 없이 재잘거리던 처자는 말을 잃고 거친 숨을 쉬었지만 끝내 한 오름을 결국 올랐다. 다른 일행도 매선 눈보라가 버겁긴 마찬 가지였지만 어린 처자에게 용기를 주려 묵묵한 산행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오름은 말 그대로 평온한 자연그대로 였다. 눈보라가 일순 멈추 었을 때에 서야 정상을 다다랐다. 감탄스런 환호를 했다. 요리학교를 나온 어린 처자였다. 그리고 눈에 엎어져 깔깔 하는 큰 웃음을 지르고 있었다. “나 오길 잘한 거야? 그치” 응. 잘 했어. 일행은 그런 시선으로 어린 처자를 보고 같이 웃었다. 그랬다. 눈이 이리 오지 않았다면 지루하게 오름이 두 곳이나 오르고 내리는 2코스는 인기 없는 평가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언제 이 고생을 사서 하겠어요. 그쵸?” 라고 이제 좀 살아난 처자는 좀 전 죽을 것 같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다시 재잘 거리고 있었다. “이제 살만 하냐?” 라고 물었다. “네. 아니요 아니요. 죽을 맛이 나요” 그리고 우리가 만난 곳은 바다를 만나는 곳이었다. ‘말 방목장’. 바다에 닿은 넓은 초원이었지만 그 곳은 눈이 점령한 어느 히말라야가 되어 있었다. 눈에 덮힌 말들은 추위를 피해 커다랗게 쌓여 있는 풀더미 뒤에 옹기종기 서로의 체온으로 그 추위를 이겨 내고 있었고 석양이 지는 초원은 하얀 카펫이 끝없이 이어진 동화 책의 한 곳이었다. 그곳을 걷는 동안 내내 벅찬 기분이 들었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백설의 초원. 그곳이라면 헤어졌던 연인은 사랑을 할 것 같았고, 삶에 찌든 무명의 사람들은 희망을 노래 할 것 만 같았다. 바다로 떨어지고 있는 석양은 눈물샘을 마구 두드렸다. 사람들과 떨어져 있을 때 나는 눈물을 훔쳤다. 몰래... 다 자란 어른은 울지 않는 법. 다 자란 어른이 울 때는 우린 경계한다. 참아내기 때문이다. 어떤 수위를 넘었다는 신호다. 다 자란 어른이 우는 것은. 다만 그 때 내가 운 것은 그것과는 달랐다. 아니 같았던가. 다음날 엉덩이에 자란 털들은 내가 울다가 웃었기 때문일까. 여튼 그랬다. 경산도 청년은 마구 감탄하면 커다란 사진기로 파노라마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야 진짜 명작이네. 명작이야” 나는 낡은 사진기를 조용히 꺼내 그의 뒷 모습을 몰래 찍었다. 사진찍는 걸 별로 좋아 하진 않았지만 어느 순간은 꼭 그 시간안에 가두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는 문득 그랬던 것 같다. 그 순간. 석양. 그들과 백설의 초원. 그리고 나란 시간을.
그리고 어린 처자도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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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