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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노래를 만든다.
우도봉 전망대는 절벽위 봉우리에 자리 하고 있었고, 길은 절벽 아래 바다와 맞닿는 작은 동굴로 이어 졌다. 현무암 위를 덮은 눈과 파도의 흰 일렁거림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바람소리가 굉음처럼 크지만 아득하고 아련한 소리로 들리게 하는 곳. 우도 였다.
제주에는 육십여개의 작은 섬들이 있다고 한다. 우도는 그중 가장 큰 섬이고 또 가장 산호 빛의 바다가 펼쳐진 곳이라고도 했다.
나는 지중해를 보진 못했지만 수많은 책에서 사진에서 그림에서 보았던 에메랄드 빛의 바다는 그런 것일 거란 생각을 우도 바다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 곳은 현무암의 검은색과 눈의 하얀색 그리고 바다의 에메랄드 색이 절묘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조화였다. 부러 상상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 것.
우도봉으로 향하는 곳은 산책코스로 유명했다. 긴 갈대들이 바람에 춤을 추듯 요동치는 곳을 길을 따라 걸어 갔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에 갈대에 내게 거기에 있던 많은 이들에게... 천천히 바다를 보기도 하고 갈대들의 춤사위를 눈에 담기도 하며
봉우리를 향해 갔다. 여기 어딘가에 한채의 집을 짓고 싶어진다. 그 곳은. 초가집. 너와 내가 사는 작은 집. 꿈인것 같이 알콩한 삶을 살수 있을 지도 모른다. 꿈이리라. 전망대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북적이는 사람들 속으로 굳이 들어 가고 싶지 않았다. 봉우리 등선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등선을 따라 넓은 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조랑말 들이 풀을 뜯는 곳이였다. 들판으로 향하는 길에 지뢰같은 말똥들이 수북히 깔려 있었지만 뭐
상관 없다. 지뢰는 터지라고 있는 법. 조랑말들 가까이 접근해 보았다. 이런 쓸때 없는 인간 놈들을 숱하게 경험한 듯 무심히
바람을 등지고 서서 풀을뜯는 조랑말이였다. 괜히 머쓱해 진다. "그래 조랑말 처음 보는 촌놈이다." 라고 조랑말에게 말을 건네진 않았다. 나와 비슷한 인간들이 모여 들고 있었다. 얼른 자리를 피해 주는 게 도리. "잘 살거라." 등선을 타고 내려오는 길에 잠시 올레길 표시를 잃었다. 갈라지는 길이 였다. 어디로 가야 할까. 잠
시 우둑하니 서서 망설이고 있었다. 검은 패딩 차림에 귀까지 덮은 모자를 쓴 처자가 오고 있었다. 그녀도 그 지점에서 망설이는
눈치였다. 이곳으로 향하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함참을 기다려도 이 쪽 방향으로 사람의 왕래가 없는 모양이였다. 결국 처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저도 오다보니 표시를 잃었어요? 혹 님도 올레길을 오신건가요?" 처자는 체구 만큼이나 작은 소리로 답하고
있었다. "저도 표시를 잃어서..." 두 갈레길중 하나를 가르치면 내가 말했다. "그럼 저랑 이곳으로 가보실래요? " 아무래도 그
길이 안전해 보였고 혹 코스를 벗어 나게 되더라도 우도항으로 모두 다다르게 될 것이였다. 처자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수줍어 하는 듯 보였다. 처자와 나는 아무 말 없이 내리막 길을 걸어 나갔다. 수풀과 덮혀 있는
눈 탓으로 한참을 표시를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우리가 들어선 길에서 올레길의 주황과 파랑의 표시를 발견하고 나서야 검은 모자
사이로 처자의 안도하는 작은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았다. 길은 바닷길을 벗어나 섬의 중앙으로 향해 갔다. 날씨가 개이면서 눈은
금새 녹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 서는 길은 키작은 돌담들이 이어지는 골목. 어느 아담한 난장이 마을로 들어선 것 같은 기분. 전통
제주를 그대로 간직한 마을과 돌담과 골목이 였다. 돌담이 낮아 집이 고스란히 보였다. 어느 집의 뒷간에는 변이 떨어지는 곳에 작고 검은 돼지 (일명 제주 똥돼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도는 그대로 어느 박물관 같이 역사를 담고 있었다. 처자와 나는 한참을 같이 걸으면서도 말이 없었다. 올레길의 동행이란 이런 건가 보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혼자 길을 가고
싶었다면 빠른 걸음으로 짧은 인사를 하고 걸어 나갈수도 또는 부러 걸음의 속도를 늦출 수도 있었지만 나나 처자는 그러지는 않았다.
말이 없는 동행. 한시간쯤 그렇게 걷다가 뜬금없이 말을 건낸건 내가 먼저 였다. 기습 공격. "어디서 왔어요? 그대는" 모자를
벗고 물끄러미 쳐다보는 처자는 더 작고 여리게 보였다."아. 아. 저요", " 아 저 해남에서 왔는데..." 라며 꼬랑지를 내려
가는 말투로 답하고 있었다. 처자는 수줍은 해남처녀 였다. 그랬구나. 사투리가 언뜻 묻어 나는 것도 같았지만 심한 것은 아니였다.
내가 더이상 물음이 없자. 답답했던지 처자도 용기 내어 말을 이어 갔다. "아 아저씨는 아니.. 오빠는 어디서 오셨어요? "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갑자기 '오빠'라고 하는 처자의 말이 순간 어이 없이 황당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도
같이 웃고 있었다. 스무살 언저리의 그녀는 해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였다. 아래로 열살 이상
차이나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부모가 뒤늦게 본 늦둥이라 동생이 아니라 아들 같다고 했다. 말을 더럽게 안 듣는 동생 얘기를
한참을 쏟아내곤 처자는 겸언쩍었는지 까르르 한참을 바람에 벌게진 볼이 부풀리며 웃음을 웃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수다는 어느새
올레길의 풍경보다는 수다에 치우쳐 갔다. 수줍게 보이던 처자는 아주 명랑한 해남 처자 였던 것이다. 낯선 것이란 이렇게 어이
없게 한 순간에 무너지는 담이 였다. 우리의 대화는 제주의 낮은 돌담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서로 배가 아프게 웃고 말하고 떠들고 있었다. 소풍 같았다. 해남은 아주 작은 동네라서 다 알고 지낸다고 한다. 그래서 지나치는 관광객들이 아닌 낯선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 견디기가 쉽지 않다고, 이방인이 그만큼 없는 곳이라고 그래서 낯선 사람과 얘기하는 일도 드물다고 처자는 말해 줬다. 배를 타고 제주로 오는 길은 지루하지만 제주에 올때 마다 새로운 올레 코스로 온다는 처자는 자신의 동네에서는 자기를 바람났다고 동네 사람들이 말하곤 한다는 것도 전해 줬다. 내가 물었다. "그럼 해남을 떠날 생각이예요? " 처자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답해 줬다. "음 아니요. 그래도 그곳만한 데도 없어요. 익숙하기도 하고 동생이 자랄려면 멀었고... 그리고 어무이도 아직 도와야 하니까..." 라는 대답을 하곤 또 홀로 처자는 한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생은 또 어떻게 변했을까 ? 지금도 가끔 궁금해 진다. 어느새 선착장이 있는 우도의 시작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뜨거운 커피를 나눠 마시며 배를 기다렸다. 처자도 나도 말 없는 하이파이브를 하고 배에 올랐다. 바다는 잠잠해져 있었고 긴 걸음에
지쳐 있었지만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아름의 이야기를 담고 오는 길. 처자와 나는 성산의 한 바닷가를 좀더 걸으며
그녀의 숙소가 있는 곳까지 배웅을 했다.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끝내 서로의 연락처 같은 것은 묻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해남에
가면 안내 해 줘요. 꼭" 라고 말했고 "제가 시집가기 전에 꼭 오세요. 그래야 실컷 구경시켜 줄수 있어요." 라고 처음 처럼 수줍게 웃으며 대답하는 처자는
벌써 어두워 진. 골목을 따라 그녀의 숙소로 들어 가고 있었다. '안녕, 길동무" 나도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있던 사람들은 저녁에는 김치찌개를 끓인다며 부산을 떨고 있었다. 얼른 내려오라는 성화에 짐을 풀고 간단히
세수를 했다. 하우스의 작은 마당에는 눈이 내려 앉아 있었고 작은 눈사람이 만들어져 있었다. 우도에서의 기억을 반찬으로
김치찌개를 먹었다. 쓰고 달고 맛있는 저녁 이였던 것 같다. 저녁을 먹으며 각자 오늘 다녔던 코스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해남처자와의 동행에 대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해가 내린 제주에는 낮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건 우도의 바람과는 분명 달랐다.
<다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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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