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생활 초기에, 내 눈에 어리둥절하고
참 불편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가게 영업을 저녁 6시까지만 한다는
것과 일요일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는 것이었는데. 한국에서 가족들이 다니러 왔을 때였어. 식솔이
늘어서 장을 자주 봐야했지. 냉장고도 한국처럼 대형냉장고가 아니고, 자취생들이나 쓸만한 미니냉장고들 쓰고, 부엌에 빌트인 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지지고 볶고 하는 음식문화가 발달되지 않은 곳이라 부엌이란 게, 집 내부구조에서
비중이 적어. 한국처럼 대형냉장고에 김치냉장고까지 갖추면 부엌이 꽉 찰 거야.
그런데 슈퍼마켓이 저녁 6시면 문을 닫잖아.
그러니 가족들과 어디 나들이 갔다가도, 5시쯤 되면 마음이 급해지는 거야.
슈퍼마켓 문 닫으니까 빨리 집에 가야 된다고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왜 문을 닫아? 하던 생각이 나네.
일주일에 한 번 저녁 영업시간을 연장하는 날이 있는데, 목요일. 저녁 9시까지.
예전에 주급 받던 시절에, 목요일이 임금 받는 날이었대. 그래서 목요일 저녁에는 장도 보고, 술도 한잔하고 그러던 풍습이 지금도 남아있더라고.
한달에 한번씩은 일요일에도 문을 열어. 매월 첫째
일요일.
월급을 대부분 월말에 받으니까, 첫번째 일요일이 또 돈 쓰는 날인 거지.
좀 돈이 들어가는 살림살이들, 계획했다가 그 날 사고.
일요일은 쉬는 날
일요일에 가게 영업을 안하는 이유는, 기독교 문화
영향이 젤 큰데,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네덜란드 친구 얘기 들어보면, 일요일에는 밖에 나가서 놀지도 못했대. TV도 못보고. 엄마는 밥도 안한다네.
그럼 뭐하고 지내느냐 했더니, 오전엔 교회 가고, 오후엔 집에서 그냥 뭐...별 일 안하고 보내는데, 오후에 다시 교회에 가는 집도 많았다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교회에도 안 가면서, 왜 그
풍습을 지키느냐.
일요일은 쉰다는 게 문화로 굳어진 거겠지.
노동만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떤 이벤트를 만들지 않고, 약속도 잡지 않고....집에서 쉬더라고.
이게 지내다 보면 또 그렇게 되는 것이, 가게 문을 열지 않으니까 시내가 ‘고스트 타운’ 분위기가 되거든. 기차나 버스도 운행간격이 뜸해져서 불편하고.
나들이 간다해도 그래서 도시락 챙겨가야 되고. 그러니까 그냥 ....집에 있는 거야. 그래서 나도 일요일 되면, 그냥 아무 것도 안 해. 청소도, 밥도, 뭐 하던 일도...
일요일은 그래도 되는 날.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게 어떤 건지 배워가고 있음.
(처음엔 이거 적응 안되고, 꼭 내가 바보 되는 것 같았거든. 사람이 어떻게 아무 것도 안할 수가 있느냐 생각했음.)
네덜란드에도 특히 개신교 전통이 강한 지역이 있는데, 이른바 ‘바이블 벨트’.
이 동네는 안식일 더 엄격하게 지키는데, 일요일 선거 유세하지 마라,
스포츠 경기 하지마라...이런 항의하고 그런다.
▼ 네덜란드의 바이블 벨트 (위키피디아)
영업시간법
그래서 일요일은 가게 영업 안하는 게 기본.
네덜란드의 영업시간법은 그 예외 사항을 정하고 있는데, 즉, 일요일에 문을 열어도 되는 경우를 위주로.
- 일요일과 공휴일 영업금지
- 평일 오전 6시 이전과 22시 이후 영업금지
- 지자체는 연 최대 12일까지 일요일과 공휴일
영업을 허가할 수 있다.
=>여기서 ‘매월 첫째주 일요일 영업’이 나오는 거거든.
최대 12일이니까 매월 한 번씩 문 열면, 크리스마스
같은 공휴일에는 문 닫아야겠지.
- ‘저녁 영업’ 허용 가게는 지자체에서 알아서.
(술집, 레스토랑 등)
- 관광업과 관련된 지역은 추가 영업 허용 가능
- 박물관,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은 당연히 예외사항이고,
‘라마단’ 시기도 예외사항. 무슬림들 단식기간인 라마단에는, 해 지고 나야 뭘 먹잖아. 그래서 이때는 일요일이라도 일몰 전에 빵집(주로 무슬림들 가는 가게겠지) 문 잠깐 열어도 되도록.
‘연 최대 12일까지 일요일 영업가능’
조항도 1996년에 처음 생긴 건데
이른바 보라색 내각. 폴더 모델로 유명한 윔 콕 총리가 이끌던 좌우연정때.
네덜란드 연정에 항상 기독민주당이 들어가거든. 그런데 이 좌우연정 내각에 네덜란드
역사상 (제2차 세계대전 뒤) 처음으로
기민당이 빠진 거야. 그래서 이게 가능했다능. 바이블 벨트쪽과 작은
가게 주인들한테서 반발 많았다고 함.
많은 사람들에게 ‘일요일 노동’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지만, 문화라는 게...한번 이렇게 시작되면 또 습관이 되는 거잖아. 지금은 첫째 주 일요일 영업 정도는 ‘기본’이 되어가는 분위기.
한 달에 한번 일요일 문 여는 것조차 반대하는 이유가 꼭 종교적, 문화적 이유만은 아닌데, 아무튼 이 반대도 만만찮아서 결국 정부는 지역별로 알아서 해라...라고 던져준 상태. (이거 결정하느라 주민총투표 하는 동네도 있음.)
그러다보니 어떤 동네에서는 일요일 거리에 사람 안다니는 거지. (일요일에 어디 갈
때는 꼭 확인해봐야 함.) 피고용자가 일요일 근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있고.
네덜란드 사회의 변화
2006년 이 영업시간법을 중간평가한 보고서가 나왔는데, 지자체별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면,
- 20% 일요일 영업 안함.
- 7% 연 1~3일
- 10% 연 4~7일
- 9% 연 8~10일
- 31% 연 12일
- 20% ‘관광 특수’로 모든 일요일 영업
요기까지는 2006년 보고서고,
최근 추세는, 마지막 조항 ‘관광특수’의 경우가 두 배 넘게 늘어서 지자체의 47%가 일요일 영업한다거든. 그러니까 절반 정도가 이제 일요일에 문 연다는 거지. 반면, 절반은 문 안 열고, 여전히 반대도 많은데, “관광특수” 조항을 지자체들이
악용한다는 비판.
1) 기독교 정당은 종교 문화적 이유로 반대.
2) 좌파쪽 정당은 소규모 자영업의 피해를 이유로 반대.
내가 사는 동네도 한 달에 한번 열다가, 얼마 전에 일요일마다
여는 걸로 바뀌었거든. 나는 일요일 문 안 여는 게 불편했고, 삭막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이 조치가 반가웠지. 일요일에 친구와 약속도 잡을 수 있고. (전엔 이게 안됐음. 그러니까 다들 자꾸 집으로 오라 그러고, 아니면 자전거 끌고 강가에서 만나고...이런 분위기)
그런데 그 배경이 시 정부가 우파정당으로 바뀌어서 그렇더라고. 가만 있던 동네가 갑자기 관광지가 된 게 아니고.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이유일 듯.
결국 좌 VS 우, 사회주의적(social) VS 자유주의적(liberal) 입장에 따라.
영업시간이 늘어나면, 결국 대형영업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
(대형영업점은 주로 슈퍼마켓 체인점, 대형 잡화 체인점들)
▶ 일요일 영업 찬성 주장
- 상점주인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며, 소비자도
무슨 요일에 쇼핑할 지 알아서 해야.
- 종교적 이유로 일요일 영업금지하는 것은 ‘세속적(정교분리적)’ 사회에 맞지 않다.
- 규제는 경제발전에 좋지 않다. 영업시간 규제할 경우 일자리 얼마얼마가 없어진다.
- 빵집 같은 소규모 점포도 일요일 영업하는 것이 유리하며, 대다수가 일요일 영업을
원한다. (동네에서 제빵사가 직접 만들어 파는 빵집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빵집이 일요일에 문 닫는 유일한 나라다.
- 소규모 점포의 3분의 1만이 일요일 영업에
반대한다. 소규모 점포가 대형점포에 밀릴 것이라는 예측은 근거 불충분.
- 피고용자들에게도 재정적으로 이익이며(일요일 근무는 평일 임금의 두 배)
일요일 근무 여부는 선택할 수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
▶ 일요일 영업 반대 주장
- 소규모 점포에 대한 불공정 경쟁이다. 대형점포는 일요일 근무자 구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반면, 소형점포는 일요일 근무자를 고용할 여력이 안된다. 주로 주인 혼자 또는 종업원 한 둘 두고 경영하는 가게들이므로.
- 거리 청소비용 같은 지자체의 행정비용이 얼마얼마 더 늘어난다.
- 기독교 신자들이 안식일을 가질 권리. 안식일이란 노동을 쉬는 것 뿐만 아니라
스포츠클럽 모임 등의 사회적 활동도 하지 않는 것이므로 수영장 등도 문 열지 말아야.
전업주부가 오후 나절에 자전거 끌고, 자주 장 보러 다니던 생활방식에서, 맞벌이 기본, 따라서 일요일 활동이
점점 증가하는 사회, 탈종교 사회, 일요일 휴식 대신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는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고 (이제서야!)
거기에 맞춰 영업시간을 늘려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자본. 경쟁에 밀리는 작은
상점들.
이런 배경을 생각해보면, 일요일에 가게 문 연다고, 와~ 이제 좀 사는 것 같네, 하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더라구.
일요일에 가게 문 닫아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는 비교도 안되는 생존의 문제가 그 뒤에 있다는 걸 알면, 생활습관을 조금 바꾸는 게 더 낫겠다...이렇게 생각하긴 하는데...친구들 만나서 점심이라도 한 끼 먹고, 쇼핑이라도 좀 하려면, 사실 일요일이 젤 만만한지라...참...
▼ 우리 동네(이런 분위기얌)
| 
..
.. 
....
...후비적~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
머.....
여러가지 사회움직임(마약이나 밤문화등)이
한국보다 트여(?) 있길래
리버럴한 줄 알았듸만...
킁..
P.S.
그란데....
밀혼도 이옵화에 못지 않은 칸츄리에서 사시는고만...
ㅋㅋㅋㅋㅋ
....
써든리..동지애가 아조 막 솟아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