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고사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고객분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람도 불고 스산한 그런 날이었다. 연포탕으로 메뉴를 정하고 의향을 물으니 보신탕 같은것만 아니면 괜찮단다.
남도에서는 신기한 일인지 모르지만 부산에선 아직 연포탕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는것 같다. 그냥 낙지 넣어서 끊여주는 뜨신 국물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연포탕을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공통화제를 찾는다. 이야기 끝에 부인이 다니는 절과 울 어머님이 다니시는 절이 같다. 막혀서 겉돌던 이야기가 갑자기 술술 풀려 나간다.
난 때에 따라 세상의 모든 종교를 받아 들일수 있는 나홀로교다. 그분은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자 우리 어머니도 수행하지 못하는 생활속 부처의 삶을 설파하신다.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큰 강화유리 뚜껑으로 덮어 놓은 연포탕 냄비가 기분좋게 끓고 있는 소리를 배경으로 난 그저 즐거웠다. 일이 술술 풀려나가는 느낌이었으니..하지만 어리석은 중생임을 깨닫는데는 3분의 시간이면 충분하였다.
식당의 서빙하시는 분이 두 손 가득.. 살아있는 낙지를 들고 우리자리로 오는 순간..난 순간적으로 얼음이 되었다. 살생.부처의 삶.. 끊는 국물냄비를 앞에두고 진지하게 경청했던 낱말들이 내 머리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고층빌딩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그 짧은 순간에 살아온 인생을 모두 복기한다는 말처럼..꿈틀거리는 낙지를 보는 그 찰라의 순간에 난 앞으로 벌어질 그분과 나와의 악연에 대한 모든것을 예상해 버린것이다. 너무 늦게...
앞에 앉은 고객분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하며 외면하는것과 낙지가 냄비에 들어가는 순간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암담하였다. 연포탕 쥔장도 만만찮은 나의 고객인데 삼각관계가 맞물리면서 몇초동안에 난 스마트폰 수준의 머리를 굴렸다. 아~~내가 왜 연포탕집에 오자고 했지.. 미리 낙지를 넣어서 오라고는 왜 생각을 못했을까?
우리 두사람 모두 다른 이유로 허둥되는 순간... 쩌억~~~ 쩡...스르르... 거짓말 같이 강화유리 뚜껑이 낙지가 조금전에 사라진 국물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쥔장은 과학적으로 해명하며 연신 미안하다고 했지만 ..난 그날이후 氣를 믿는다^^
극도로 민망한 상황에서 정신을 못차릴때 우리 두사람은 정말 간절하게 소망했다. 마주보고 있는 분께 결례를 범하지 않고 이 자리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그분은 점심을 청한 나를 위해서..난 그 분의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서..
종업원과 쥔장이 사태를 수습하는 동안 ..난 혼미한 정신을 추스리며 말했다. 부처님께서 우리를 인연으로 맺어주시는 역사를 보여주신것 같다고..부처님에 대한 고객님의 신심이 우리를 살려주셨다고^^
그후.. 연포탕이 뭔지 모르고 따라오신 그 분은, 따뜻한 국물을 대접하고자 했던 나의 선의를 받아들여주셨고...난 그분을 만날때 마다 이야기했다. 그때 강화유리 깨어짐의 반전은 곧 우리의 인연맺기를 원하신 부처님의 뜻이란걸..그 모두가 고객님의 독실한 부처님 사랑 덕분이란걸.
난 그분과의 인연으로 지금 충분히 보상받고 있다^^
|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