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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몇 년 전 학교 수업 과제로 제출한 글인데, 얼마전 블로그 정리하다가 다시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에 여기에 올려본다. 학교 과제라 분량이 너무 많아 중간에 책 내용의 상당수는 그냥 생략하였다. 그래도 책이 제법 재미있으니 내용이 궁금한 봉팔러들은 한 권 사서 읽어보길 권한다. 책 값은 하는 책인거 같다.ㅎㅎ
저자 - 모리스 버만 (Morris Berman) 이 책의 원제는 ‘미국 문화의 여명’(The Twilight of American Culture)이다. 짙은 어둠 속에서 새벽을 준비하려는 마음가짐의 표현처럼 느껴진다. 과연 새벽이 올까. 지은이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르네상스의 가능성은 영영 사라진다고 경고한다. 미국 문화의 몰락을 바라보는 그의 위기감은 절박하다. 미국 문화 따라가기에 바쁜 우리나라 상황을 떠올릴 때 그런 걱정은 남의 일 같지 않다.
문화역사학자 모리스 버만은 ‘미국 문화의 몰락’을 예고한다. 4~5세기경 로마제국처럼 미국은 화려했던 전성기를 뒤로하고 몰락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버만은 ‘미국 문화의 몰락’에서 얼핏 보기에 미국이 에너지와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이러한 활력이 상품 구매와 소유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혼란스러움에 불과한 이런 에너지가 미국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공허함을 숨기는 구실을 해서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과거의 문명 모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자 기록이다. 즉 문화의 순환적 성쇠는 현실이다. 지금 미국 중심으로 일어난 기업의 문화지배는 경제적 불평등뿐만 아니라 교육의 붕괴를 야기시켰다. 각종 미디어는 오제이 심슨 재판, 빌 클린턴의 성생활 등 사소하고 자극적인 사건들로 대중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학교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총기난동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전혀 갖지 않는 대중들에게 상업주의와 무관한 교양은 타도의 대상이 되었고 문화는 한없이 가볍고 무의미한 것으로 타락하였다. 이런 문화 붕괴 현상의 최종 방어선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인 노력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자본을 중심으로 세계를 하나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거대한 미국이 이미 문화 정책을 기업의 손에 넘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1. 현 미국 문화의 몰락 징후 네 가지 - 빈부 격차 확대, 소비주의 만연, 둔재 생산국이 되어버린 미국, 교양 정신의 몰락 - 에 관한 서술 2. 현재 미국은 과거 로마 제국의 멸망과 유사한 형태를 보임 3. 로마 제국 말기에서 중세 암흑기까지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수도사들 4. 우리는 그런 수도사들의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나 어쩐다나. ... 뭐 이런 것들이 책 내용이었다. 자세한 책 내용은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어보시길.
저자 모리스 버만이 지적한 미국문화의 네 가지 몰락징후- 들은 한국에도 상당부분 해당하는 듯하다. 급격한 빈부격차, 의료보험 민영화 시도, 공교육의 몰락과 주택문제, 그나마 대학교육이 대중화되어 있고 문맹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긴 하지만 비판의식이 거의 마비되어버린 젊은이들과 대중들, 인문학 및 기초학문의 몰락과 실용학문의 부흥, 갈수록 선정적이 되어 가는 연예인 중심의 대중문화 등. 이러한 결과는 해방 이후 미국의 위성국가 내지는 정치적 식민지 비슷한 길을 걸어왔던 한국의 역사이기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버만이 제시한 소위 '수도사적 해법'은 미국화된 문화의 문제점을 치유할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버만의 해법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미국적'인 것이며, 가장 불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버만의 '수도사적 해법'이라는 것은 문제의 해결을 '개인'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그저 각성한 개인이 나름대로 실천하고, 나름대로 대안적으로 살아감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도대체, 버만의 말처럼 온통 저급화되고 비판적 능력이 사라지고 기업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각성할 개인이 얼마나 될 수 있으며, 그들이 뭘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물론, 원론적으로는 버만의 의견이 옳을 수 있다. 권력화 되기 쉽고 거대화 되기 쉬워 딴 길로 가기 쉬운 집단적 해법보다는 개인들이 각성만 하면 사회는 쉽게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개인이 각성을 해야 거대한 한 나라의 문화가 변화할 것이며, 또 그 개인은 누구에 의해, 어떤 계기로 각성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또 각성을 해도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시스템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나는 버만이 진단한 현실 문제들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문화를 여전히 고급 대 저급 문화의 이분법으로 보는 저자의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의 본질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실천에 있다면, 오늘날 그 진원은 엘리트라기보다 오히려 익명의 대중, 즉 시민사회의 자발적이고 다양한 문화적 실천에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의 '개인적'인 해결책에는 동의할 수 없다. 사회적인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고, 구조적인 문제는 결코 개인들의 각성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구조적인 문제는 구조적인 변화와 충격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한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와 충격은 수많은 개인들의 집단적인 행동을 수반함으로써 가능하다. 수많은 개인들의 집단적인 행동은 흔히 '사회운동'이라 불린다. 그런데, 버만은 그 사회운동을 반대하고 있다. 물론 버만이 사회운동 혹은 시민운동과 같은 집단적 움직임이 흔히 잘못된 길로 간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그 속에서 개혁하고 풀어가야 되는 것이지, 원론적인 문제점들 때문에 아예 그 길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것은 무모하다.
책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최근 한겨레 신문 기사에서는 흑인 대학생 수보다 흑인 수감자 수가 더 많다는 경악스러운 통계가 나왔다. 흑백간의 빈부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한 NAFTA 이후 라틴 아메리카계(특히 멕시코계) 불법 이민자들의 수가 기하급수 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백인들은 여전히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과 미국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 잠재된 인종에 대한 편견도 여전하다. 소수 인종의 불만을 백인들에게 향하게 하지 않도록 다른 소수인종에게 향하게 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개인주의로 인한 사회 계층 간의 불화, 신보수주의의 대두로 빈부 격차의 확대 등은 미국 사회를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내부 불만을 잠재우고 외부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전쟁,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타국의 정세에 간섭하고 세계 평화의 움직임과는 동 떨어지는 정책의 연속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세계들의 불만을 촉진시키고 미국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일견 미국 사회는 지금 당장 멸망해도 하등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을 여전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유지시켜 주는 것은 미국 내에서 작동하고 있는 강력한 시스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리전개(예컨대, 미국과 로마문명과 비교하는 식)와 '개인적 각성'이라는 황당한 해결책이 치명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미국문화가 가장 융성하고 있는 시기에 그 문화를 정면 비판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자신을 수정하면서 생명력을 유지했듯, 미국문화 역시 이렇게 비판을 통해 스스로를 수정해 가면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힘이다. 비판을 거부하는 지경까지 이를 때, 그들은 파멸할 것이다. 이 책은 미국문화가 아직은 '파멸'과 '몰락'까지 이르기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한 줄 요약 현실적인 문제 진단과 비현실적인 문제 해법의 한계
p.s) Twilight라는 단어는 책 내용을 생각할 때 사실 '미국 문화의 황혼(기)'이라고 번역해야 옳은 번역이겠지만, '여명'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두 가지 중의적인 의미가 있더라. 1. [黎明]희미하게 동이 터 올 무렵, 희망의 빛. 2. [餘命]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쇠잔한 목숨. 한자로 풀어쓰는 전혀 다른 단어지만, 그냥 말장난 해볼겸 내 맘대로 '여명'이라는 단어로 번역했다. 하나가 사라지면, 또 다른 새로운게 오는 법이니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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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