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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법(法)
도교의 49제(祭, 제사)는 혼백(魂魄) 분리기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는 생명의 시초가 1 → 2 → ... → 7백(魄)을 거쳐 완성되니, 죽음 또한 그리 해체될 것이란 추산 때문일 것이다.
첫번째, 두번째 ... 마지막 일곱번째 백(魄)이 흩어지기까지 남겨진 자들의 슬픔 역시 그리 사그라질 수 있는가.
혼(魂)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魄)은 땅으로 흩어진다고들 하지만, 올 때 그 만남의 정경을 알 수 없었으니 갈 때라고 그 흔적을 또한 구할 수 있는가.
불교에서 49재(齋, 재계)는, 석가모니부처가 제자 목련존자의 망모(亡母)를 지옥에서 극락왕생케 하고자 했던 일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 소리(聲)
절마당 끝엔 상복차림의 두 아낙이 쪼그려 앉아 있다. 아침 공양시간이 지났는지 까마귀들의 각갹소리도 어느덧 잠잠해진 참이다. 마침 계곡 사이로 든 햇살은 그 여인네들 무릎밑에 철푸덕 엎드려 있는 전나무를 비스듬히 넘어가고 있다. "나라에 변고가 생기려나?" 그네들에게 망자에 대한 상념은 잠시 뒤로 미뤄진게다.
계곡엔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여기저기 진흙더미 사이로 산발한 물줄기들이 우드당탕 떼춤을 추며 흘러간다. 밤새 제법 큼지막해진 폭포들은 산모퉁이를 접을 때마다 솨솨거리며 귀를 열다간 이내 닫아놓기를 반복한다.
폭풍우가 남겨진 높은가지 자락 어디쯤, 어둔 그림자들이 후두둑일 때마다 어깨를 겨누며 상수리들이 굴러간다. 어떤 때는 총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산문턱 아래에선 한 노인네가 길다란 하늘까지 목을 디밀고 딱따구리를 찾고 있었다. 가슴을 철렁일 때마다 큰 울림통들이 계곡 계곡 퐁당퐁당 물수제비로 소용돌이친다. 딱따구리 부리가 하룻새 더 길어졌나. 아니면 밤새 나무통이 뒤바뀐건가.
#3 감촉(觸)
연산군묘 앞 느티나무는 참 오래다. 나무는 아파트에 숨겨져 있고 묘는 다시 그 뒤로 숨어 있다. 망각의 울타리가 나즈막히 둘러진 옆으로 샛길 하나. 그 좁단 기억끝 사진 속 한 남자가 또랑또랑하다 못해 엉뚱하단 듯 쳐다본다. 그의 풀이 누워있기엔 너무 먼 곳이다. 이번엔 내가 그를 엉뚱맞게 바라본다.
그를, 그의 <온몸, 身>을 보다 문득 이런 글을 쓴다.
혼백(魂魄)과 몸(身)이 만나 사람이 되었다는 이 시나리오는 적확한가?
하나
몸(身)은 단지 고깃덩이(肉)에 불과하다
시체가 저절로 사람(生)이 되진 못한다.
하나하나
몸 속 공간(空) 어느 곳에 혼백이 있다면 - 삶도 피치못할 가정 -
사람 후 막혀 봉쇄되면, 어찌 다시 나갈 수 있나
열리고 통할 곳이면, 살아서 항상 왕래를 할 수 있겠나
혼백이 자리를 비울 때도 내가 맞나.
하나또하나
혼백 스스로 자리를 정할 수 있다면, 굳이 내몸이어야
하나.
#4 향(香)
그의 낯빛은 여전히 거맣게 타든다
다 타지 못할 분노의 재가 대롱대롱 터럭 끝마다 위태위태하다.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고
먼저 일어서는, 그 가운데에(中)
풀이 있는가 바람이 있는가
혹은 혼이 가는가 백이 오는가.
둘
늦바람이 발목풀에 온다면
발밑풀에 갈 바람은 없어야 했다
그러나 풀뿌리엔 벌써부터 울고있는 바람이 있다
혼(魂)이 백(魄)한테 간다는 이치는 맞지 않다
바람이 풀한테 온다는 것도 그렇다.
둘둘
풀이 바람보다 더 빨리 누웠다면, 바람 앞에 있다면
풀이 바람보다 더 늦게 누웠다면, 바람 뒤에도 있다면
풀은 하나일 수가 없다
따라서 백(魄)이 혼(魂)에게 온다는 이치 또한 맞지 않다
풀이 바람한테 다가간다는 것 역시 그렇다.
#5 맛(味)
방학동을 떠나 창동을 지나간다
그날 중랑천엔 그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각로 굴뚝궁뎅이만 모락모락한 낮동안이다.
옛술집 옆에 강아지를 껴안은 채 할어미가 졸고 있다
연신 눈을 부벼댈수록 앞사람이 점점 흐릿 보이는지
내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입꼬리를 슬며시 치킨다.
그녀도 얼마 전 할아비를 잃었다.
노가리 맛이 남아있을 혀를 피해 미지근한 소주를 담근다.
노가리 맛을 알아내는 건 나의 혀인가
내몸에 혼(魂)줄내는 건 혼인가
내정신(精神)을 낚는 건 백(魄)의 기분인가.
셋
혼(魂)이 내몸을 혼내서 부셔놓는 동안
백(魄)이 내 정신(精神)을 기분줄로 엮을 수 있다는 건
내몸이 둘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만약 내몸과 정신이 하나라면 모를까
혼백조차도 이미 하나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옛날 외상값~
할어미는 망자 몫을 오래된 돈으로 거슬러 줬다.
나도 똑같이 거스름을 돌려 줬다.
인수봉을 등진 수영의 그림자가 버스창가에 늘어지며 달려 온다.
공릉동 가로등 너머 한켜한켜 노을비늘이 벗겨지고 있다.
#6 색(色)
돌아가는 버스에서 그들을 회상했다.
6색깔 알 없는 안경을 준 사람
세상을 가득 채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목걸이를 준 사람
허나
바위등 얄은 흙을 밟고 지나간 소나무 뿌리처럼
얇은 태반을 뚫고 자궁을 지나간 제 7식(識)처럼
남아
나의 윤회를 따라갈 사람들처럼.
김수영(1921-1968)이 뱉은 침이 삼천리 동네동네 있겠지만
우리 동네 어귀에도 좀 튄 흔적이 있다.
김수영의 꽂꽂한 눈빛이
그(김형기,1933-2005)의 시를 들여다 보면 활짝 웃고 있다.
낙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한
내 영혼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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