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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면
대통령을 처음으로 만난다는 사실은 그에게 있어서 가슴 설레면서도 은근히 두려운 일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문 수석과 함께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공인이 되어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이 될 때 까지 특별한 관심으로 지켜보아 왔으므로 대통령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통령의 열정, 순수성, 겸손을 좋아했고, 현실감각, 승부근성, 학습능력을 높이 평가했으며, 약자에 대한 인간애와 강자에 대한 당당함을 존경했다. 그러한 인물을 직접 만나는 일은 설레고도 남을만한 일이었다.
그의 두려움은 대통령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당연히 얼마간은 그가 여러 경로를 통해서 받아들인 정보를 자의적으로 가공하여 형성시킨 이미지일 수가 있고 그것이 실제와 많은 차이를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만나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엿볼 수 있는 기회는 얼마나 값진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불안감을 억눌러야만 했다.
저녁을 겸한 술자리는 청와대 부속실의 한 온돌방에 마련되었다. 사적인 일로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단출하고 수수한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대통령의 마음을 잘 아는 부속실장의 배려로 대통령의 사랑방으로 종종 이용되는 방이었다. 뒤뜰이 내다보여서 마치 여느 한정식식당 같은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다.
다행히도 그가 맞닥뜨린 대통령의 실체는 그가 마음속에 만들어 둔 이미지가 온갖 가치 있는 것들의 집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조금도 축내지 않았다. 대통령의 성품은 꾸밈없는 태도를 통해 쉽게 드러났다. 대통령은 돈을 좇아 산전수전 겪은 그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깨끗하고 고결한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가 오래 동안 살고 있는 국가의 정치지도자를 떠올리면서 ‘아! 대한민국 국민은 참으로 복 있는 국민이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문수석이 권유하는 태도로 보아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자리가 되었건 현 정부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때로는 이 답답한 인사들 대신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현 정국에 대한 생각을 미리 정리를 해두었다가 대통령에게 충고삼아 좀 전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곧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수도 없이 들었을 그런 애기를 내가 또 전할 필요는 없겠지. 힘드실 텐데 위로나 해드리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정리되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진행은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몇 순배 잔이 돌면서 긴장이 풀어지자 솔직하면서도 상대방을 인정해주는 대통령의 화법에 유도되어 김인철도 속내를 터놓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다. 문 수석은 대통령을 스스럼없이 형님 대하 듯 하였다. 친한 친구들 사이의 그것처럼 솔직하고 격의 없는 대화가 이어지면서 존경하는 대통령을 위로하고 말을 살펴서 하겠다는 그의 애초 생각은 이 유쾌한 분위기를 빌어 더러 정치적 사안에 대하여 답답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아도 되겠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더 나아가서 대통령을 자극하고 트집을 잡아서 반응을 보고도 싶었다.
김인철 개인의 신상에 관한 것들이 화제에 올랐을 때 그럴만한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문정인의 유도에 따라 그의 인도네시아에서의 사업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 대통령이 말했다.
“맨손으로 외국에 가서 기업을 일으키다! 참 멋지지요. 좁은 땅에서 네 편 내편 갈라 싸우는 우리보다 그대 같은 사람들이 참말로 애국자요.”
이어서 자조적인 표정을 짓고는 물었다.
“ 거기 사람들은 나를 어찌 생각하오?”
그는 이 질문으로 대통령이 덫에 걸려들었음을 느끼면서 서두르지 않고 대답했다.
“보통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그 나라 대통령이 누군지 모르 듯 모를 테고, 한국 대통령을 알만한 지식인들은 청렴과 탈 권위의 표상인 대통령님께 찬사와 존경을 표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부터 전개될 대통령으로서는 술맛 떨어지는 소리를 시작하기 전에 달착지근한 말로 우선 분위기를 잡으려고 했으나 맞을 매를 재촉하는 학생처럼 대통령이 재촉했다.
“ 교민들 말이요. 교민 숫자가 꽤 많죠?”
“ 교민들 중에는 ....... 에....... 죄송합니다. 대통령님을 무능하면서 독선적이며 가진 자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가득 찬 인물, 소 뒷걸음질에 쥐 잡듯 대통령이 되긴 했는데 어찌 할 바를 몰라 격에 맞지 않는 언행을 일삼는 인물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거기 사람들은 여기보다 하루 늦게 배달되는 한국 신문을 아주 열심히 읽습니다. 거의가 소위 말하는 보수신문들이지요.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면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의 생각이 어찌 이렇게 한국 신문의 논조와 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에게는 종이 신문의 영향력이 큽니다.”
할 말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지만 혼자서만 이야기 하면 효과가 반감되고 정리도 해야 하므로 잠시 말을 끊었다. 그때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며 대통령이 말했다.
“부자들에 대한 시기심이라?........재미있군. 내가 비록 대학을 못 나왔지만 그래도 한국사회에서 상류층 삶이 보장된다는 사시에 합격했고, 정치를 하기 전에는 큰 부자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적도 있는 사람인데......, 그런 나를 부자들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삼류 공산주의자처럼 생각한다는 말이지요?.......,그것이 김 형의 표현대로 신문의 영향 때문이라면........대단하지요 그 영향력이? 그래 김 형도 그 신문들을 열심히 보고 살았소?”
“예 근 20여 년 간 열심히 읽었지요.”
“그대도 문수석의 친구가 아니었으면 세뇌가 될 뻔 했군 그래.”
“저도 이미 세뇌가 되었다고 봐야겠죠.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까지 모조리 세뇌당하는 판에 전들 별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허허, 자네 말에 가시가 있구먼.”
“국가원수의 신분으로 평검사들과 그렇게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신 대통령님께서 설마 이정도의 제 말씀에 노여워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자네는 또 무슨 판가? 내 정책에 불만인........, 문 수석 이 양반 혹시 요즘 부쩍 우리를 갈구는 소위 좌파 아닌가? 자기네 편인 줄 알고 지지 했다가 내 정책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뭐 왼쪽깜박이를 켜고 오른 쪽으로 간다나?”
그때 아슬아슬한 두 사람간의 대화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듣고 있던 문정인이 재빨리 대답했다.
“하하하!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알기론 이 친구 지금까지 돈을 벌겠다는 목표로 살아온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사고방식의 소유자입니다. 아직 재벌도 못 되었지만 말입니다. 지금까지 만날 때마다 귀 아프게 들어온 이 친구의 불만은 왜 당하고만 있느냐? 그렇게 맞아서 반신불수가 되어 일을 어찌할래? 뭐 그런 얘기입니다.”
김인철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예. 저는 좌파가 아닙니다. 북한의 인권을 거론하고, 최소한의 교류를 퍼주기라 비난하는 부류들을 경멸하는 만큼 미국의 존재를 못 본 체 하고 이라크 철군 등의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는 소위 좌파들도 싫어합니다. 저는 참민정부의 가치, 목표, 정책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막중한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참민정부 사람들은 참모들이나 의원들이나 언론의 주술이 인도하는 대로 극심한 패배주의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정체성과 현재의 위치도 망각하고 자신들이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게 불공정한 잣대를 가지고 심판을 자처하는 적의 평가에 일희일비 하면서 말이죠. 왜곡되고 불공정한 판을 바로잡을 엄두는 못 내고 한다는 소리가 ‘대통령의 스타일이 문제다.’ ‘ 언론과 적대하면 안 된다.’하고 있으니 딱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문수석이 받았다.
“현 정부가 처한 대내외적 환경을 이해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걸 알걸세. 네오콘들이 장악한 미국정부, 독점언론사들의 불공정한 행태, 등 돌린 영호남의 민심, 정책에 반대하는 진보매체와 지식인들, 우군이라고는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지.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뚜벅뚜벅 많은 일들을 하고 있고 소정의 성과도 거두고 있네. 모든 일이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네. 그래도 자네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니 우리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내가 청와대 홈 페이지에 가끔 들어가서 이것저것 읽어보라고 하지 않던가?”
이 말에 김인철의 억양이 살짝 높아졌다.
“선배님 나를 어떻게 보고 하시는 말씀 입니까? 적어도 저는 이 정부의 어떤 인사보다도 대통령님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정부가 하는 일은 꿰뚫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청와대 홈페이지도 가장 열심히 들락거리는 사람이고요. 제가 우려하는 것은 참민정부의 정책이 아닙니다. 보수언론의 프리즘에 찌그러진 여론의 평가가 어떻던, 제 눈에 경제, 외교, 대북 정책, 복지, 교육, 정말 정책이 이 보다 더 반듯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그러면 뭐 합니까? 정권 바뀌는 순간 다 날아갈 텐데.”
다시 대통령이 받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형편에 다음 정권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뿐이지. 다음 정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말이지. 우리가 한번 더해서 정책의 결실을 보고 백년대계의 방향을 굳히면 좋기야 하겠지만 쉽진 않겠지. 내가 된 것도 기적이야........, 그렇다고 우리가 힘써 이룬 것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기야 하겠는가? 음.......그렇게 안 되도록 해야지. 다음 정권은 만들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정권이 바뀐다한들 손대지 못할 큰 물줄기들을 우리가 잡아놓아야겠지.”
김인철은 열띤 어조로 대답했다.
“대통령님께서는 집권 초기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시대의 첫차가 되고 싶었으나 구시대의 막차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세종이 되고자 하였으나 태종의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 보다 더 한국 역사에서의 대통령님의 위치를 적절히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대통령님께서는 대선 당시 어쩔 수 없이 불법 선거자금의 도움을 받은 사실. 그걸로 태종으로서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 소견으론 임기 내내 손에 피를 흥건하게 묻히고서야 해낼 수 있는 역사적 소명으로서의 태종의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애써 외면하고 반석위에서나 할 수 있을 세종의 역할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여신 전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님께서 당선되신 것은 국민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낭비하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군주 앞에 엎드려 ‘통촉 하시옵소서’ 하면서 왕의 결단을 촉구하는 조선 시대의 신하처럼 여겨졌다.
“나는 일국의 역사라는 물줄기가 한두 사람의 의지로 바뀌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비록 내 임기 후 정권이 넘어가더라도 내가 세운 가치가 바른 물줄기라면 그 도도한 흐름을 돌리지는 못할 것이요. 우리 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 내가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가진 권력을 동원하여 뭔가를 해볼까 하는 유혹을 느껴본 적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원칙이 흔들려 본 적은 없소. 그렇게 하는 것만이 역사의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것이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우리의 가치를 훼손하고 거꾸로 가겠다는 세력이 칼을 들고 덤비는데 총을 가지고 있으면서 맨손으로 상대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하겠다는 격입니다. 찔려 죽으면 다 끝납니다. 우리가 장렬하게 죽고 나면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와 그 가치의 주인인 국민들은 어찌되겠습니까?
저는 우리민족 역사상 우리 의지로 행한 가장 미련하고 비극적인 사건이 '3.1만세사건' 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놈들은 총칼로 지키고 있는데 맨손에 태극기만 들고 대체 어쩌자는 것이었을까요? 일본 놈들이 눈이나 깜짝 했을 까요? 독립운동의 도량이 될 기개 있는 인물들은 모두 희생되고, 친일파들이 더 득세하게 되고, 무력의 힘 앞에 절망한 국민은 독립에의 희망마저 놓아버리게 되는........., 그런 미련한 독립운동이 어디 있습니까?
참민정부의 개혁은 대를 잇지 못하면, 실패한 3.1 운동처럼 개혁세력의 철저한 와해를 불러오고야 말 것입니다. 저들은 다시 정권을 잡게 되면 온 권력을 동원하여 다시는 개혁세력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개헌이든 뭐든 무슨 짓이든 할 것입니다. 정권 재창출이 첫 번째 목표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입니다."
수십 년을 동고동락한 사이인 문정인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을 상대로 감히 사용할 수 없는 표현들을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뱉어내었다. 물론 의도적인 것이었지만 속마음은 편치 않았으므로 그는 말을 멈추고 대통령의 기색을 살폈다. 대통령은 화가 났거나 기분이 나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담담한 표정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내려와 앉아 있었다. 그는 대통령이 그 자신과 꼭 같은 고민과 갈등을 하고 있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 얼굴의 저 그늘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이 민족을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었다.
대통령은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잊은 듯 건배도 청하지 않고 혼자서 술잔을 비우고는 다시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몇 모금 담배를 들이마신 다음 대통령은 입을 비틀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말 다했소? 나 기분 나빠야 마땅한데 왠지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군. 그래 당신이 나라면 어찌하겠소? 우리당 국회의원 수가 몇이나 되는지 알고나 있소? 국회 협조 없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는지는 생각해봤소? 아닌 게 아니라 다가오는 선거에서 최소한의 의석수라도 건지지 못하면, 이념이고 뭐고 다 내주고 합당을 하던지 정책연합을 하던지 뭐라도 하지 않고는 임기 채우기도 힘들겠어. 식충이처럼 아무 일도 안하고 시간만 까먹자면 임기야 못 채울 것도 없지만 ”
김인철은 대통령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억누르고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다수당은 못 만들더라도 제3당과 합쳐서 과반수를 이룰 수 있는 의석수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요. 백만 공무원의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은 마음 만 먹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 마키아벨리가 되라는 말이로군.”
“ 바로 그렇습니다. 대통령님의 역사적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 더 해보시오. 구체적으로 ”
“대통령님께서는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을 어렵게 만드는 세력들의 구성 요소와 그들이 소통하여 아젠다를 만들고 그들의 의도를 사회적 합의(여론)로 만들어가는 매카니즘에 대해서 분석해 보셨을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들 세력을 결집시키고 가르치고 응원도 하면서 이끌어가는 그룹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야 물론이지. 자네가 말하는 그 그룹이 언론 아닌가? 그 중에서도 종이매체. 그들의 힘이 세지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이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들 스스로가 이익집단에 가담하고 있어서 공정하지 않으며 시장이 소수에 의해 과점되어 있는 것이 문제지.”
“그렇다면 해답은 아주 간단한 것 아닙니까? 언론이 그런 짓을 못하도록 해야지요. 그리고 셋 중의 하나쯤은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매체로 변화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선문답은 그만하시오. 요즘 세상에 그게 쉬운 일인가?”
“우리나라에서는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을 장악하기만 하면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언론 사주와 언론종사자들을 포함한 소위 기득권 계층에 속한 사람 중에 털어서 먼지나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가진 합법적인 유일한 채찍이 검찰일진데 그것을 제대로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취임 초 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대통령께서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검찰 독립을 천명하신 것은 잘못하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검찰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데는 여러 수단과 함께 국정원이 유용할 것입니다. 검찰과 국정원이 수족처럼 움직이는 단계가 되면 개혁의 70% 정도는 끝난 셈이 되겠지요. 다음으로 할 일은 독립군 군자금과도 같이 의로운 자금을 마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차기 정권을 다시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 최종 목표는 우리 민족에게 너무도 중요하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내야만 합니다.”
“자네 말이 좀 심한 것 같네. 자네의 말대로라면 지난 전임 대통령의 임기동안 이만큼이나마 발전한 민주주의를 버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옳다는 것이로군. 자네 진심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가치와 원칙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네. 또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자금은 또 뭔가 ? 나를 몰라서 그런 얘기를 입에 담는가?”
“죄송하지만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신 분 치고는 너무 순진 하십니다. 돈은 필요합니다.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돈 때문에 옥살이 하고 있는 보좌관이 돈을 만지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될 수도 없었을 것 입니다. 돈이 없으면 그 가족이 굶어도 도울 수 없습니다. 지도자 재목이 있어도 정치가로 키울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정치에 야망을 가진 돈 없는 재목이 있다면 반열에 오르기도 전에 필연적으로 그 자신의 손을 돈으로 오염시키고 맙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돈에는 여러 종류의 돈이 있습니다. 검은 돈, 하얀 돈, 세계에 떠도는 임자 없는 돈. 놔두면 없어지는 돈, 점점 자라는 돈......., 태생부터 정의롭고 깨끗한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령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모습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조건 없이 내놓을 수 있는 돈, 그런 돈들의 풀을 만들어서 스스로 불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통령님께서 예전에 기업을 운영하셨던 것과 같은 취지입니다.”
“돈, 돈이라....... 으음 자네 말이 일리가 있긴 한데.......돈 문제는 쉽지가 않아.”
아픈 곳을 찔린 듯 얼굴을 찡그리며 대통령이 그를 물끄러미 건너다 볼 때 그는 대통령이 그가 돈에 대한 야욕이 있는 사람인지 미심쩍어 하는 것 같아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대통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 당신의 말들을 종합하면 지향하는 가치는 나와 비슷한듯한데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와 사뭇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구먼. 당신이 생각하는 방법은 잘못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룬 모든 것을 말아먹을 위험이 있소. 우리의 재산, 우리의 무기는......., 그렇소. 도덕성, 원칙, 정정당당, 우리 자손만대로 전해야 할 가치, 그것이요.”
이제 그는 국가를 위해 이 유약한 정권에서 자신이 반드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발전했다.
“ 잘 알겠습니다. 한 말씀만 더 드리지요. 대통령님은 유비와 같은 분입니다. 뜻이 크고 기개가 강하고 인자하십니다. 그러나 제갈량 없이 착하고 단순하고 배신하기 쉬운 사람들로 구성된 현재의 진용으로는 조조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싸움에 한번 이겨 터전이 될 작은 성을 하나 차지했으나 계속되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연달아 패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제갈량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제가 바로 제갈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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