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성공은 겸손과 소박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미신적인 유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고 교활한 자와 한 가지 목적에 전념하는 자들이 소박하고 겸손한 자들을 착취하는 것에 기댄, 천년왕국 이야기의 또 다른 장이다.”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자비를 팔다〉(The Missionary Position: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모멘토)에서 내린 평가다. ‘그녀’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1979년)요, 20세기의 성녀로 추앙받은 테레사(1910~1997) 수녀. 〈자비를 팔다〉는 자기희생의 화신인 ‘그녀’가 실은 다국적 선교사업체의 수장, 근본주의 종교사업가에 지나지 않았던 게 아니냐고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히친스의 전복적 사고는 다음과 같은 글에도 집약돼 있다. “니카라과 정부에 대한 전쟁에서 고의적으로 살해된 사람의 수는 콜카타의 모든 선교자들이 우연으로라도 목숨을 구한 사람 수보다 훨씬 많다.”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에 대한 우익 콘트라 반정부군의 공격 배후에는 돈과 무기를 대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로마 교황청과 현지 추기경은 그들을 지원했고 산디니스타에 훈계를 늘어놓았던 마더 테레사의 ‘사랑의 선교수사회’는 교황 직속 조직이었다.
1994년 의학전문지 〈랜싯〉의 편집장 로빈 폭스 박사는 테레사 수녀가 45년간 봉사한 인도 콜카타의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집’을 방문했다. 선행과 영웅적 덕행의 표본 마더 테레사를 ‘콜카타의 성녀’로 우러르게 만든 그곳에서 폭스는 삭발한 채 한 방에 오륙십 명씩 수용돼 죽어가고 있는 말기 환자들을 목격했다. 아스피린 이상의 진통제를 받지 못한 채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에겐 어쩌다 운 좋으면 항염증제인 브루펜 같은 약이 주어졌다. “(링거와 같은)점적장비들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주삿바늘을 쓰고 또 쓰고 너무도 여러 차례 사용했고, 종종 바늘을 수도꼭지 밑에서 찬물로 헹구는 수녀들이 눈에 띄고는 했을 정도였어요. 그중 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깨끗이 해야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그래요. 헌데 왜 소독을 안 하는 거죠? 물을 끓여서 바늘을 소독해야잖아요?’ 그러니까 그 여자 말이 이래요. ‘그럴 필요가 있나요. 시간도 없고요.’”
돈과 일손이 부족해서? 그게 아니다. “마구잡이식 날림시설”을 그런 식으로 운영한 것은 “심사숙고의 결과”다. 목적은 “고통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죽음과 고통, 그리고 굴종에 기반한 일종의 신흥종파를 선전하는 것”이었다.
105개 이상의 나라에서 500개가 넘는 수도원을 운영했다는 테레사의 사랑의 선교회 소속 수녀는 4천여명에 이르고 평신도 일꾼도 4만명이 넘었다. 기부금은 전세계에서 홍수처럼 밀어닥쳐 뉴욕 브롱크스 선교회의 한 당좌계좌에만 무려 5천만달러가 들어 있었다.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 쓰는 일을 좀처럼 허용받지 못했고, 대신 “가난을 호소할 것, 그리하여 손이 크고 어수룩한 사람과 기업들이 더 많은 재화와 봉사와 현금을 내도록 조종할 것을 강요받았다”고 히친스는 지적한다. “의지할 데 없는 아기들, 버려진 낙오자들, 나환자와 말기 환자들은 동정의 과시를 위한 원자재들”이었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 자신은 심장질환 및 노환과 싸울 때 서구에서 가장 우수하고 값비싼 병원들에서 치료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테레사 수녀가 타계하기 2년 전인 1995년에 발간된 〈자비를 팔다〉는, 2001년 마더 테레사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작업을 진행하던 교황청의 직접적인 요청에 따라 히친스가 반대쪽 증거와 주장들을 제출할 때 모본으로 삼은 책이다. 그런데도 교황청은 2003년 테레사 수녀를 준성인인 ‘복자’ 반열에 올렸다. 히친스가 테레사 수녀의 시성(諡聖)에 반대하는 증거로 제시한 사례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1981년 아이티에 간 테레사 수녀는 나중에 결국 돈가방을 들고 외국으로 도망친 폭군 장 클로드 뒤발리에를 두고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우두머리와 이토록 친근한 경우는 처음 보았다”고 칭송했다. 또 “현대세계의 가장 냉소적이고 천박하며 못된 여성 중 하나”요 “위선자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라고 히친스가 쏘아붙인 그의 부인 미셸의 두 손을 정답게 감싸쥐고는 “영부인은 느끼시고, 아시며, 자신의 사랑을 말뿐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체적인 행동으로도 보여주고자 하시는 분”이라 예찬했다. 사진에 담긴 그 장면을 독재자 뒤발리에는 잘도 이용해먹었다. 이런 게 마더 테레사의 ‘본질’이라고 히친스는 말한다.
사이비 종파 지도자 존 로저한테서 1만달러를 기부받고 함께 사진을 찍어 그의 사기모금 행각을 도왔다. 미국 역사상 최대 사기사건 가운데 하나인 저축대부조합 스캔들로 10년형을 살고 있는 가톨릭 근본주의자 찰스 키팅한테서 125만달러를 기부받고는 자신의 권위를 써먹도록 허락했다. 1992년 테레사 수녀는 키팅한테 관용을 베풀어 달라며 법원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때 답장을 보낸 로스앤젤레스 지방검사보 폴 털리는 2억5천만달러를 낭비와 사치를 위해 가로챈 키팅의 범죄행각을 설명한 뒤 기부받은 125만달러를 원래 소유자들에게 돌려주라고 정중하게 권했다. 그러나 답장은 없었다. 그 돈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답지한 거액의 다른 성금들의 행방도 묘연했다.
테레사 수녀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그리고 스페인 우익 프랑코주의자들과 만나 낙태 및 산아제한 반대 캠페인에 힘을 실어주었다. 1985년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주는 자유훈장을 받았는데, 그때 수상식장 지하실에선 올리버 노스 대령이 이란-콘트라 사건을 꾸미고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고 1984년 미국 다국적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의 인도 보팔 공장에서 수천명이 즉사한 유독가스 참사가 일어났을 때 분노한 유족들에게 말했다.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히친스는 결국 세계의 구조적 모순에 눈감고 지배자들 위주의 질서를 긍정하며 현상유지를 꾀하는 종교세력을 문제 삼고 있으며, ‘자비를 파는’ 마더 테레사야말로 그 첨병이라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 마더 테레사. 그녀는 홀로 자기희생을 하는 열혈 신앙인인가, 아니면 다국적 선교 사업체의 수장인가?
ⓒ 모멘토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스스로 원해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몇 달 간의 예비 신자 교리를 받은 뒤, 드디어 '모태신앙'이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녀들에게 종교 선택의 자유를 주겠다는 어머니 덕에 기독교, 불교, 원불교 등 다양한 종교에 관심을 가졌지만, 인도의 살아있는 성녀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책들은 나를 성당으로 이끌었다.
내 세례명은 테레사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자비를 팔다>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 눈에 띄어 읽기 시작했다.
내가 존경하는 마더 테레사를 조목조목 비판한 이 책은 겨우 155쪽. 그리 두껍지 않지만 20여 년간 갖고 있던 긍정적인 평가를 뒤집어 보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막돼먹었단들 누가 야위고 쭈글쭈글한 늙은 여인을, 세월에 좋이 찌든 노파를, 더군다나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을 가볍게 헐뜯겠는가.
다른 한편, 아무리 무관심하단들 누가 한때 (인도를 빼고도) 105개를 웃도는 나라에서 500개가 넘는 수도원을 운영했다고 호언한 여인의 영향과 동기들을 살펴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겠는가. 그녀는 홀로 자기희생을 하는 열혈 신앙인인가, 아니면 자비를 상품화한 다국적 선교 사업체의 수장인가?"
마더 테레사, 다국적 선교 사업체의 수장? 히친스의 질문은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마더 테레사라의 행적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논쟁할 필요조차 없을 것처럼 느껴질 마더 테레사에 대해 히친스는 냉정한 문체로 이야기한다.
책 표지에서 '악마의 변호인'이라는 문구를 읽었을 때 사실 더 신랄한 말투와 감정적인 공격을 기대했지만 기자 히친스는 사실만 드러내려 애썼다. 일반적으로 대화나 토론중에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의견의 모순점을 드러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반대의견 등을 제시하는 사람을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라 일컫는다.
이 말은 원래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聖人)의 대상자로 천거된 사람을 비판적인 견지로 조사하던 사람을 가리키는 별칭이다. 성인 후보자에 대해 증거들을 하나하나 의심해 가며 오류나 모순, 심지어 조그마한 결함까지도 들추어내는 임무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반대로 기적과 업적들을 제시하면서 성인으로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청원한 사람은 '하느님의 변호인(God's advocate)' 또는 '천사의 변호인(Angel's advocate)이라 불렸다. '데블스 애드버킷'은 악마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만 건설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며 이미 오래 전부터 교회 밖에서도 사용돼 왔다.
▲ 아이티에서 독재자의 부인 미셸 뒤발리에와 함께. 1971년 아버지에 이어 86년 미국의 압력과 민중봉기로 축출되기까지 종신 대통령으로 독재정치를 한 장-클로드 뒤발리에의 선전 기관지 <공격> 1981년 1월호에 실린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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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마더 테레사의 선한 이미지를 훈장과 상금으로 사려는 독재정권의 수장에게 순진한 건지, 순진한 체 하는 건지 모르겠는 마더 테레사가 순순히 응하는 장면이다. 누가 주는지 모르면서 받지는 않았을 테고, 그 돈이 어떤 돈인지 모르지 않았을 텐데 콜카타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테레사는 독재자를 칭송하며 훈장을 받아들인다.
아이티의 독재자 장-클로드 뒤발리에가 수여한 아이티 국가훈장 레종 도뇌르를 받은 마더 테레사는 독재자에 대해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우두머리와 이토록 친근한 경우는 처음 보았다. 내게는 아름다운 배움의 경험이었다"라고 말한다. 지배자 부부에게 보내는 그녀의 찬사는 CBS 다큐멘터리 <60분>을 통해 방영되었다.
미소 짓는 두 여인의 사진을 다시 보자. 마더 테레사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으로 볼 때 이것은 '맞지' 않는다. 요즘 쓰는 표현으로 하자면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어떤 이미지인지, 어떻게 인식되는지가 모든 것이며, 이 점에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신화를 결정할 능력, 스스로 매긴 값어치대로 대접받을 능력을 갖게 된다. 행동과 말은 평판에 의해 판단되지 그 반대가 아니다. (이 책 22-23쪽)
코닥 필름의 기적, 합성사진으로 자비를 구하다 마더 테레사의 '기적'은 1969년 BBC에서 제작한 <하느님을 위한 아름다운 것>이라는 다큐멘터리와 그에 대한 책을 낸 맬컴 머거리지로부터 시작됐다. 빛이 거의 들지 않는 희미한 실내에서 찍은 장면이 "각별히 아름답고 부드러운 빛에 잠겨 있었다"는 것.
이를 두고 머거리지는 "화가들이 성자의 머리 둘레에서 보아내던 후광"이며 기적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당시 촬영을 맡았던 켄 맥밀런은 "코닥 필름의 신제품을 위해 만세 삼창을 외칠 참이었다"고 말했다.
콜카타의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에게 전 세계에서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가난한 자들의 형편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가난'에 대한 마더의 집착 때문이었다. '빈자의 영적 복지'에 관심이 더 많아 보이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시설에서 일했던 수전 실즈는 "기부금이 몰려오고 은행에 예치됐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금욕적인 생활이나 우리가 도우려 애쓰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고 밝혔다.
▲ '존-로저 성실상'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는 자선단체가 1만 달러의 기부금을 받도록 하기 위해, 존-로저와 함게 PR사진을 찍어야 했다. 두 사람의 사진은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이고, 콜카타의 가난한 이들은 나중에 덧붙였다. 존-로저는 '인사이트'라 불리기도 하는 MSIA('영적인 내면의식 운동의 약자이며 '메시아'라고 읽는다.)라는 광신집단의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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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존-로저 성실상'을 받은 마더 테레사와 광신집단의 지도자 존-로저가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이다.
두 사람 뒤에 보이는 콜카타 사람들은 나중에 합성한 것이다. 1만 달러의 상금을 받으면서 그녀가 존-로저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녀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돈이 필요했을 테니 그 돈의 출처가 어디인지 굳이 받는 자의 처지에서 따져 물어 득이 될 일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최대 사기 사건 중 하나인 저축대부조합 스캔들과 관련해 10년 형을 선고 받은 찰스 키팅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찰스 키팅은 정치인들에게 엄청난 선거 기부금을 대고 상원의원들로부터 특혜를 받아 다른 투기꾼들과 나란히 미국 소액 투자가들의 예탁금을 지속적, 범죄적으로 공략한 죄인이다.
그의 도둑질이 절정에 달했을 때, 마더 테레사는 키팅으로부터 125만 달러를 기부 받았다. 이 돈은 결국 소액 투자가들의 돈인데, 키팅이 법정에 세워졌을 때 마더 테레사는 판사에게 관용을 베풀어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그러자 이 재판의 기소 담당자 중 하나였던 폴 W. 털리라는 지방 검사보가 마더 테레사에게 답장을 보낸다. (인용문 치고는 꽤 길어서 손가락이 아프지만 마더 테레사에게 나도 묻고 싶은 내용이라 많은 부분을 인용한다.)
제가 편지를 하는 것은 키팅 씨가 유죄임이 확정된 범죄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드리고, 키팅 씨가 당신께 준 돈의 출처를 이해시켜 드리는 한편, 당신이 그 돈을 정당한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을 하시면 어떨까 권해드리기 위해섭니다. …(중략)….
키팅 씨에게 사기를 당한 희생자들은 광범한 계층에 퍼져 있습니다. 일부는 부자에다 고학력자입니다만, 대부분은 재산이 많지 않고 대형 금융 거래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은 정말 영어조차 모르는 가난한 목수였는데, 평생 저축한 돈을 키팅 씨한테 사기당했습니다. …(중략)….
당신은 이토 판사한테 찰스 키팅에게 판결을 내릴 때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예수님이라면 하셨을 일을 하라고 권고합니다. 같은 과제를 당신께 드리고 싶네요. 범죄의 열매를 받았을 때 예수께서 어떻게 할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도둑질한 돈을 갖고 있다면 예수는 어떻게 행동할까. 도둑이 양심을 편케 하려고 예수를 악용한다면 그분은 어떻게 할까를 말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망설임 없이 즉각 그 훔친 재산을 정당한 소유주에게 돌려주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도 그래야 합니다. …(중략)….
그가 원하는 '면죄부'를 그에게 허락하지 마십시오. 돈을 붙들고 있지 마십시오. 제게 연락을 주시면 당신이 갖고 계신 재산의 정당한 주인과 곧장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보낸 폴 W. 털리는 3년이 지나도록 마더 테레사의 답장을 받지 못했다. 히친스는 말한다.
부유한 세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무언가 제3세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믿기를 좋아하고, 믿기를 원한다. 이런 이유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그의 동기와 실천을 너무 깊게 파고들려 하지 않는다. 늘 그렇듯이 선교가 배달되는 진짜 주소는 후원자와 기부자의 자기만족이지 짓밟힌 자들의 필요가 아니다. 의지할 데 없는 아기들, 버려진 낙오자들, 나환자와 말기 환자들은 동정의 과시를 위한 원자재들이다. 그들은 불평할 입장이 전혀 아니다. 마더 테레사 자신이 우중선동가이며 우민정책가이고 세속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때다. (이 책 80쪽)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누구?
신(神)과 마더 테레사 수녀를 인정사정 없이 비판해온 논객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는 2005년 가을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가 함께 실시한 ‘100대 공적 지식인’ 독자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2만여 명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 결과, 1위가 노엄 촘스키, 2위는 움베르토 에코, 3위 리처드 도킨스, 4위 바츨라프 하벨, 그리고 5위가 히친스였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7위, 앤서니 기든스는 39위였다.
영국 포트머스에서 해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옥스퍼드 대학 시절엔 트로츠키주의자였다. 졸업 후 좌파 성향의 뉴스테이츠맨지(誌)에 들어갔고 그리스 특파원 등을 거쳐 1981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네이션·배니티 페어 등 유력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며 '키신저 재판' '미국을 만든 사람 토머스 제퍼슨' '왜 조지 오웰이 중요한가'와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된 '신은 위대하지 않다' 등 10여 권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그의 말이 다소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검은 돈을 거절하지 않고 회계감사를 따로 받지 않아서 기부금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파악되지 않는 마더 테레사의 '사랑의 선교수녀회'를 단지 종교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면죄부를 파는 시절의 교회가 아니므로. 마더 테레사 수녀의 행적을 다시 살펴봐야 할 이유를 제공하는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인도 보팔시에 있는 유니언 카바이드 케미컬 사에서 유독 가스가 누출돼 2500명이 죽은 참사가 벌어졌을 때, 현장에 간 마더 테레사에게 도움말을 부탁하자 "용서하세요"라고 말했다.
또, 방글라데시 집단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낙태만은 안 된다"고 호소했다. 피해자들의 상처 앞에서 탐욕적이고 악의적인 가해자들을 용서하라는 말은 스스로 성녀라고 믿고 있는 자 이외에 누가 또 할 수 있을까.
마더 테레사의 업적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그녀의 행적 가운데 성인으로 추대되기에 의심스러운 부분을 파헤친 이 책은 과도하게 포장되고 우상화된 한 인간에 대한 서술이다.
평가는 여전히 독자의 몫이다. 히친스의 공격에 대해 애석하게도 마더 테레사의 답을 들을 수는 없다. 그녀가 대중에게 했던 말로 대신한다.
사람들은 불합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비논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라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성실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내 일은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만들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채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어라. <엄지뉴스 - 휴대폰 메시지(문자·사진·동영상)를 보내주세요. #5505>
솔직히 위의 모든 인용문들에 동의하지만,
그래도 개인들의 삶이 나약하고 불안하고 허무함으로 종교,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에 기대고, 또한 그러한 믿음으로 고통스런 현실을 인내하고 극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라나?
믿는 쪽, 안믿는 쪽 어느쪽도 그 자체로 완전하지는 않은거 같다.
치매백신/ 비판하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고, 당연히 비판해야지.
근데 위에 종교비판을 위해 인용된 문구들만 보면 백해무익해 보이는 종교도,
또 누군가는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좋은 점도 많을 수 있다는 거지.
마더 테레사를 비판하지만, 그 비판에는 어쩌면 이시대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분에대한
비판으로 아마도 그 비판은 추악한 인간이다라기보담은 그 정도의 성인은 아니다가 아닐까란 생각이들어.
솔직히 자기 인생 버리면서 가난하고 병든자를 도우려고했던 인간적 면은
그런면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성인으로 추앙된게 아닐까?
난 무신론자이고, 종교에 대한 비판을 좀더 옹호하는 입장이지만,
한쪽으로 어두운 면만을 파고드는 것도 문제인거 같기에,
오히려 너무 치우친 비난에 조금 반항심이 드는거 뿐임.
잔차탄소나/비교적 갈등환경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잔기자와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지. 어두움이 아니라 밝음에 집중하는 거 말이야. 이런 사람들은 신문을 봐도 미담기사를 좋아하고 극렬한 토론에서도 중간자의 입장을 견지하거나 아예 토론기피증을 갖지. 울나라는 이런 태도를 지지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따지는 태도를 일종의 피해망상으로 몰고가는 분위기도 많고. 유시민도 그 희생양 중 하나.
종교때문에 죽어갔거나 지상에서의 행복을 기꺼이 반납한 그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덮어두고 오직 신의 은혜만을 찬미하는 교회가 가능한 것은 어두움을 은폐하는 기법때문이야. 달리 말하면 반이성이고.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어두움을 들춰내는 것이야말로 닫힌 사회를 여는 방식이지. 좋은 게 좋은 거, 나도 알지. 사회적으로 '있어보인다는' 평가도 받고. 그러나 이런 태도는 스스로 은폐의 도구가 되는 거야.
어둠과 밝음 사이에서 지식인의 중립적 거리 유지?
이게 의미하는 건
1. 악마와 천사 사이에서 반악마 반천사로 남겠다는 뜻
2. 인생의 어두운 쪽에서 고통당하게 된 사람들과 이심전심이 안될 지경에 다다른 공감장애증
3. 황희정승(중립과 권위의 승리, 토론의 죽음)따위를 롤모델로 강요받으며 자란 트라우마의 표현
치매백신/ 지적한대로 나는 조금 중간쪽으로 가서 토론하고 싸우는 것을 조금 더 선호하는 경향이야. 내가 노무현을 좋아했던 것도 그가 극단적 보수, 극단적 진보쪽에서 사회의 문제들을 바라보지않고 좀더 중간쪽으로가서 융화시키려고 했던 노력과 인간적 고민을 더 좋아했던거 같다.
이념, 신념, 종교... 모두 조금 극단으로 밀어올려서 정신 무장을 하면 논리와 자기신념이 더 명확해지고, 분명해지고 오히려 내적 갈등도 덜해지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가끔해, 근데 난 그게 잘 안되는 성격인듯... 하지만 내가 그런 갈등구도를 고민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고, 그냥 그리 잘 안된거 뿐이더라고. 용기가 부족하고 신념이 부족한 것이지...
그냥 적당한 평화주의자일뿐... 그래도 난 박정희를 존경하지 않는다. 김대중, 노무현을 존경했지.
단지 노무현도 완벽하지는 않고, 완벽할 수도 없지. 그의 노력과 선의를 믿는거고.
아마 좀더 극단적인 진보입장에서는 노무현을 아무리해도 용서하기 어려운 사건들과 정책들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좀 한쪽을 너무 집요하게 부정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거 뿐이야.
난 박정희를 싫어하는데, 박정희 좋아하는 친구하고 얘기해보면 좋은 것만 얘기하더라고.
뭐 어쩌면 한두가지 좋은 점도 있었겠지... 노무현대통령님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던가?
박정희의 정책중에도 한두가지 좋은 점은 있었고, 인정한다고...
근데 이렇게 말하고나니 너무 회색지대에 있는 느낌인데, 분명히 나는 박정희 싫어하고 김대중, 노무현을 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