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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를 추억하며. 제1편. 어린 시절.
" 男兒須讀五車書라고 했다. 책을 많이 읽거라."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다.: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나는 五車書하지는 못했다.
아니 그 근처도 아니다.
다만 늘 스트레스는 받았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나보다"하고.
국민학교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가난했고 라디오만 듣던 시절이라서 지식기반이 약했던 시절이다.
한마디로 정보가 아주 없던 시절이다.
더 바르게 말하면, 진짜 뭣도 모르고 살았다.
알파벳도 모르고 중학교에 입학했던 시절이다.
그런데 쥐뿔도 모르는데 책을 많이 보라고 하시니,
그냥 그래야 하는 가보다 하고 살던 시절.
기억해보면 아무것도 없는 가난했던 집에 책이 여러 권 있었다.
집이라기 보다는 당시에는 하꼬방 이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판자집.
아버지께서 손수 만드신 가보1호 책꽂이에 얼마간의 책이 꼽혀있었다.
낡은 길천영치 삼국지, 그리고 토마스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
또 하나 책 표지가 떨어져나가서 제목도 모르는 두꺼웠던 책.
그리고 6학년 겨울 방학 때 다 읽고 기뻐했던 한국 단편문학전집 몇 권들.
책을 펼치면 피어 오르는 곰팡내.
누렇게 바랜 종이와 깨알같이 작은 글씨들.
뽕, 벙어리 삼룡이, 아네모네의 마담, 갯마을, 억세게 재수 좋은 날,
감자, 배따라기, 상록수, 메밀꽃 필 무렵, 소나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무작정 닥치는대로 읽었던 책들..
지금도 생각난다.
그리고 그 때가 너무나 그립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도 했다.
그때 빌려 읽은 책 중에 현진건의 무영탑과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가장 기억이 난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끓는 사랑.
그리고 캐서린과 히스크립.
바람에 실려오는 히스크립을 부르는 흐느끼는 소리.
밤 세워 손에 땀을 쥐며 읽던 기억.
격정의 스토리.
잔인한 복수와 사랑.
그때 사랑이 뭔지 알기나 했나.
그리고 스트레스.
히스크립은 왜 이렇게 막 나가는 거야?
히스크립에 대해서 그때는 유감이 많았다.
정말 밤을 하얗게 세웠다.
다 읽고 나서 나는 내가 히스크립인줄 알았다.
이후에 폭풍의 언덕은 항상 전혜린과 연관되어 생각된다.
언젠가 읽은 전혜린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대천해수욕장의 바람소리가 폭풍의 언덕의 바람소리를 따라 들려오는
히스크립으로 들리는 듯하다던 그녀의 독백 때문에.
자살한 전혜린을 내가 좋아했었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전혜린의 얼굴도 모른다.
자살이라는 죽음은 때로는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슨 책이든 문학은 항상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 연상이 된다.
살면서 가장 자주 연상되는 문학은 반전주의 작가 레 마르크의 개선문이다.
주인공 라빅의 독백이 늘 인상 깊다.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구나."
도망자 라빅의 가장 심각한 소유물 조앙 마두우.
아! 조앙 마두우.
안개 낀 세느 강변의 밤거리를 한없이 걷는 그녀.
노천 카페 푸우케와 압상트주.
잊을 수 없다.
전쟁 중이지만 감수성을 자극하는 파리의 그늘진 이야기.
어찌 다 말로 표현 할 수 있겠는가?
잉그리드 버그만과 샤를르 보와이에.
노무현님 돌아가시던 날 아침의 비보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개선문의 라빅이 생각났다.
조국을 탈출한 독일인이 프랑스에 숨어 살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 하던 모습.
자살로 억울하게 압살당하는 동반자들을 구하려 했던 노무현.
사면초가의 완전히 고립된 상항에서도 자존을 잃지 않는 용기.
지고 지순한 인간의 위대함을 느낀다.
최악의 순간에도 흐트러짐 없었던 노무현.
안중근과 윤봉길의 기개를 연상한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진실로 아름다운 사람.
라빅은 2차 대전 당시 유태인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조국으로부터 추적을 당하는 신세였다.
어디에도 설수 없는 경계인.
그리고 인간 노무현.
개선문은 나에게 언제나 최고의 아름다운 문학이다.
읽고 또 읽어도 언제나 새로운.
그리고 길천영치 삼국지는 중딩 이후로도 수 없이 읽는다.
다 외울 정도로.
고3때 읽게 되는 대망은 일본인과 삼국지를 통해본 중국인과의 극단적인 차이를 알게 했고
그때 중간에 놓인 한국인인 나는 매우 초라했다.
조숙했던 나는 당시 조국을 사랑하기에는 너무나도 가난했고 어렸다.
남들은 대학시험 공부하는 여름방학 내내 대망을 독파한다.
우연히 옆집 사는 형님께 빌렸는데 읽다 보니까 하루 20시간씩 25일간을 봤다.
그리고 이어서 대벌과 하얀거탑까지.
하얀거탑은 얼마 전에 드라마로 방영된다. 김명민 주연.
사또미 슈지와 자이젠 고로.
일본 소설을 아주 뽕을 뽑았다.
이 책을 통하여 일본인들의 기획력과 스케일을 알게 된다.
클래스가 전혀 다른.
야마자끼 도요꼬라는 한 여류 작가와 그녀의 문학을 위해 모여든 스태프 진들.
그 때에 어떻게 이런 문학이 만들어지는지를 단편적으로 나마 느낀다.
이때 거의 책에 미쳐있었다.
대학은 당연히 떨어졌다.
안간 거다.
책 보느라.
진짜 내 맘 대로.
옛날에는 이렇게 사는 미친놈도 많았다.
그리고 그때는 1년만 열심히 해도 대학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도 몇 개 없었는데.
서울대학은 빼고 지만.
요즘 애들이 정말 불쌍하다.
재수는 필수요 삼수는 선택이라.
다시 중1로 돌아 가서.
책꽂이의 그리스 로마신화.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지은이 토마스 벌핀치의 프롤로그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유럽 문명의 시녀이다." 라는 이 한마디.
이말 때문에 읽었다.
사실이다.
그것도 여러번.
그때부터 "유럽문명의 최고봉은 그리스 로마 신화다"라고 떠벌리고 다닌다.
지금 생각하면 무지 창피한 일이다.
벌핀치 할아버지 말만 믿고 그랬으니.
뭘 얼마나 안다고.
하지만 지금도 그러고 다닌다.
아무튼 처음으로 읽는 신화는 아주 지루했다.
벌핀치 할아버지 때문에 의무감으로 읽었다.
몇 번을 읽어도 역시 지루하다.
몰입이 안되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정말 예쁜 시녀였다.
유럽문명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그리고.
어느 날 2학년 때인가?
고난의 시작이다.
아무생각없이 겉 표지가 뜯겨져 나간 책을 꺼내보았다.
제목이 죄와벌이고 지은이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참 낮 설고 긴 이름이다.
처음으로 접하는 러시아 문학이었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내 평생의 버거운 배낭이 된다.
제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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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