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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기자 -
극동일보 청와대 출입기자인 문성국은 기자실을 나오면서 ‘처음에는 올곧은 이상을 품고 기자가 되었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한심한 모습이 되고 말았을까? 저들은 내가 겪고 있는 마음의 갈등 비슷한 것도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신임 검찰총장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나 여유가 있었지만 기자실에 더 있다가는 질식할 것만 같아서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탄핵사건이후, 기자실 구성원인 기자들의 태도의 변화는 지난 대선이후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했다.
국민이 결집된 힘을 발휘하며 그들의 주술을 단숨에 깨뜨리는 순간에는 잔뜩 몸을 사렸다가 자신들을 손보겠다는 존재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이자 다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동안 긴장감이 감돌던 기자실의 분위기도 해가 바뀌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스스로를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고 믿는 사람들의 집합소인 청와대 기자실의 분위기가 양아치들의 아지트와도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거기 모이는 스무 여남은 명의 기자들 사이에서도 소속한 회사의 영향력과 나이, 부임순서 그리고 능력에 따라 권력과 서열이 존재했다.
조일신문 소속인 기자실 간사는 누구로부터 위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는 개별기자에 대한 기자실 출입 제한 권까지 행사하면서 기자실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그는 기사거리가 되는 이벤트가 있을 때 서로 상의하는 형식을 빌어서 쓸 내용과 다룰 범위도 정하고, 특정회사의 기사가 남들의 것과 많이 벗어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까지 했다.
기자실의 모습은 경쟁사의 기자들이 모여서 취재경쟁을 하는 긴장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각사의 기자가 쓴 기사 초고를 서로 돌려가면서 읽어보는 것은 이미 관행이 되었고 바둑이나 장기를 두던 사람이 옆 사람의 글을 한자도 고치지 않고 데스크로 전송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기자실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지탄받을 가장 나쁜 행동은 혼자서 특종 하겠다고 튀는 기사를 쓰는 경우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당사자는 기자실의 왕따로 전락하고 만다. 기자실에서의 왕따 생활은 인간관계의 괴로움뿐만 아니라 정보의 단절도 당하게 되므로 견디기 어렵다. 왕따 리스트에 올라간 기자는 대부분 근무처를 딴 곳으로 옮기게 된다. 정보의 단절로 인해 혼자서만 다른 기사를 계속해서 써내게 되면 소속사의 데스크에서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매체들도 현장기사 자체는 보수신문들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자실의 주요구성원으로서 이런 분위기에 젖어든 자신의 모습이 가끔은 혐오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의 소속사가 3대 일간지 중의 하나이고 그 덕분에 이 작은 사회에서 주류 행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맛보는 우월감과 안도감은 달콤한 것이었다.
아직 정의감과 패기가 살아있었던 기자 초년병 시절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쓴 기사가 데스크에서 난도질이나 비틀림을 당할 때 마다 참지 못하고 대들었었다. 그의 상사는 그의 항의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재능은 인정했는지 다른 부서로 보내거나 자르지도 않았다. 결국은 못 참고 시사 월간지인 ‘신극동’ 쪽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한 것은 그 자신이었다.
‘신극동’ 에서의 기자생활은 그의 적성에 맞았다. 그곳에서는 데스크의 의도에 따라 낯 뜨거운 억지 주장을 펼 필요가 없었고 편집자도 그런 걸 요구하지 않았다. 이해당사자들의 상반된 입장을 균형 있게 다루어 비교적 공정한, 적어도 공정하게 보이는 기사를 써야만 했다.
여기서는 사주나 편집인이 요구하는 독을 기사에 타 넣어야하는 경우에도 지식 계층인 독자들의 판단력이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교묘하게 논리를 전개해야만 한다. 그러나 선천적인 재능과 함께 고도로 연마된 논리와 문장력을 필요로 하는 그런 글을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런 능력을 가진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인 그가 때때로 의도적으로, 비뚤어진 시각을 독자들에게 강요하는데 미흡한 기사를 써낸 경우에도 크게 간섭을 받지는 않았다. 일단 첫 번째 목적인 독자들의 좋은 평가를 얻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신극동’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기 부끄러운 기사를 쓰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일을 하면서 자신의 양심과 갈등하는 경우가 잦아들자 묻어두었던 야심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의 그가 일간지 정치부 쪽으로부터 다시 부름을 받자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인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그동안 그 만큼 세상물정을 익히고 모난 각이 닳아진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김인철이라는 인물의 뒤를 캐라는 임무와 함께 청와대로 배정된 것은 3개월 전이었다.
일간지 기자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관행을 까맣게 잊은 상태에서 시작한 청와대 기자실 생활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는 커다란 곤욕을 치러야만했다.
올해 2월 27일 국회연설에서 행해진 대통령의 국정연설 중 ‘우리 군대는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로서 동북아시아의 균형자로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이것이 나중에 탄핵이후 정치권의 큰 논란거리로 발전하는 ‘전시작전권 환수’에 관한 대통령의 첫 번째 공식적인 언급이었다.
대한민국의 군작전권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미군에 양도되었는데, 1991년 당시 대통령 노태우가 처음 환수 계획을 밝힌다. 1995년까지 평시 작전권을, 2000년을 전후하여 전시 작전권을 이양 받는다는 구체적인 일정도 제시했고 미국 측도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 한국의 주류 언론은 일제히 기사와 사설을 통해 대통령의 조치를 자주국방의 원년을 선언한 쾌거로 규정하고 칭찬과 환영을 쏟아놓았었다.
그때 합의된 일정에 따라 평시 작전권은 1994년 한국 정부로 이양되었고, 전시 작전권은 환수하기로 예정된 시기의 집권정부가 IMF 사태로 초토화된 경제를 살려내느라 다룰 엄두를 내지 못하는 바람에 일정을 넘기고 말았다. 그것을 대통령이 언급한 것인데, 어느 정도 경제안정이 이루어진 환경에서 대내외 국정을 꼼꼼히 챙기고 있던 대통령으로서 그 문제를 국방과제로 다루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국회 국정연설 중 그냥 대통령의 자주국방에 대한 신념을 강조한 평범한 말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고 전시작권권 이양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후자 쪽이라 한들 국가 간의 합의사항을 예정된 일정에 따라 진행시키겠다는 것으로 하등 국가적 이슈가 될 만한 발언은 아니었으나 재료가 궁했던 3대 일간지를 중심으로 한 보수 언론들은 그것을 국정이슈로 부각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들의 계산에 그것은 총선이후 승승장구하면서 좀체 실수가 없는 현 정부를 공격하기에 아주 적당한 구실이었다. 반미 친북 이슈는 이 나라의 보수를 자처하는 국민들을 결집시켜 반정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최고의 재료였다. 그리고 대통령의 기질로 볼 때 이렇게 뻔히 잘못이 없는 사안에 대하여 공격을 받으면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뒤로 물러설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정국을 다시 한 번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수 있을 것이었다.
자신들이 과거에 썼던 작전권환수를 찬성하는 글들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상대편은 그런 것들을 국민에게 알려줄 수단이 별로 없다. ‘그 때와 사정이 달라졌다’고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느니보다는 그냥 무시해버리는 편이 훨씬 나은 방법이 될 것이었다.
정부의 논리는 타당한 것이나 청와대 홈페이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므로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진보언론이라는 패들은 그들의 반대쪽에서 정면 승부를 청해 오더라도 두렵지 않을 진데 종종 그들이(보수언론) 정부를 비판할 때 인용하기 좋은 고리를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도움을 준다. 그들은 어용이라 불릴 것을 두려워해선지 아니면 정부의 정책에 삐쳐 있어선지 정부에서 아무리 진보적인 정책을 내놔도 흔쾌히 지지하는 경우가 없다.
국회 연설 다음날 청와대에서 이루어진 간담회는 전작권 문제를 크게 이슈화 하고자하는 의도를 가진 언론사들의 지시를 받은 기자실 주도자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대통령의 즉흥적인 발언을 유도하기 위한 치밀한 사전 계획도 세웠다.
그날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크게 말실수를 범한 것은 없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자신감이 충만해 보이는 대통령은 자신의 말실수만을 노리고 있는 기자들을 상대로 국회 발언의 배경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나갔다.
그는 전시 작전권 환수가 지금 당장이 아니라 군 당국이 판단하는 사전준비를 철저하게 끝내고 났을 시점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먼저 강조했다. 이어서 남북 화해 분위기와 국제 군사력 다극화의 대비책으로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추어야하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국방예산을 확충해야 한다는 점, 우리 군의 당면한 과제로서 인력과 육군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는 현 체제를 현대전에 대비하여 장비위주로 개편하고 해 공군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 과도한 수의 병력유지에 필요한 예산을 줄여 무기현대화에 전용하는 한편 청년층의 노동력 낭비를 줄이기 위하여 사병의 의무 복무기간을 6개월 단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앞으로 점점 늘어날 매년 수십조 원 상당의 무기 및 국방장비 구매에 부정의 소지를 없애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하여 방위사업청을 신설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전작권 환수의 당위성에 관한 질문에는 그 일은 대통령 자신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국정의 연속성 원리에 의하여 과거 정부의 대국민 약속과 국제적 합의를 실천하는 차원에서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며 이모든 국방개혁을 추진하는 정신적 동력으로서도 의미가 있는 시의적절한 화두라고 자찬했다.
어김없이 갈고리가 달린 조일신문 소속 기자의 질문이 있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대북관계에서 미국을 배제시킴으로써 북한이 원하는 주한미군 철수에 한발 더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안 그래도 참민정부 들어 삐걱거리는 대미관계를 더 악화시킬 것이 우려됩니다. 굳이 실익이 없는 그런 일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말 국익을 떠나 미국이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이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질문이었다.
대통령은 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질문에도 성의를 다해 답변했다.
“세계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독립국가의 전시작전통제권이 남의나라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일입니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긴 하지만 남의 나라 아닙니까? 우리 운명을 언제까지나 미국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미국도 이점을 이해하고 있고 이것을 반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또 반미로 생각하지 않도록 협의하고 이해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언론에서 나를 반미 대통령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나는 미국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친미가 국시로 될 수는 없습니다. 나는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국익을 위해서 어떤 사안을 놓고 때로는 미국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도 있을 수 있고 실제로 대립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반미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판단해야지 친미를 절대가치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미국과의 우호관계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미국사람들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잘 관리해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언론에서 나를 반미 대통령으로 표현해서 공연히 문제를 만들지나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답변은 논리 정연했고 흠잡을 데 하나 없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처음 접하는 대통령간담회를 통해서 대통령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대동하지 않고도 국방 현안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비전을 막힘없이 풀어냈다. 뿐만 아니라 설득력 있는 화술과 적절한 유머감각, 겸손하면서도 열정이 느껴지는 말투와 표정........., 누구라도 저런 대통령의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이라면 지지자가 될 것은 분명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무능하면서 독선적이고, 언행에서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가 내비치는 그런 대통령의 모습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언론에 종사하고 있는 자신과 같은 사람도 실제 모습과 그렇게도 다른 대통령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넣고 있었으니 보통 국민들은 어떨까 싶었다.
그날 대통령의 회견 내용은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환영해야 할 만 한 내용이었고 대통령과의 첫 대면에 강한 호감을 느낀 그의 마음 같아서는 칭찬의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현 정부에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그 회사의 기사작성 대 원칙에 맞추기 위하여 간담회 내용을 사실에 근거하되 그로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비판적으로 썼다.
기사의 제목으로는 ‘대통령 전시 작전권 환수의지 천명’ 소제목으로는 ‘군 복무기간 단축 등 무리한 국방 개혁 추진으로 논란 부를 듯’ 으로 뽑았다. 기자실 칠판에 쓰여 있던 ‘반미’라는 글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그가 쓴 기사는 그날 마침 부친상을 당한 편집장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그대로 실렸다. 그러나 다음날 그는 최만호 논설고문에게 불려가 호되게 당했다. 다른 신문사들은 제목을 ‘대통령 전시작전권 도박, 반미 노골화시키나’, ‘대통령 전시작전권 도박, 반미가 국정목표인가?’, ‘ 반미대통령 전작권환수로 대미관계 균열 조짐’ 등으로 뽑았다. 그리고 그들의 기사에 대통령이 한 말들의 절반이상은 사라지고 대통령이 했다는 말 중에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도 헷갈릴 정도로 교묘하게 짜깁기 된 것들도 있었다. 그 짜깁기 된 말들마저 여러 신문에 대동소이하게 실린 것으로 보아 기사를 여럿이서 같이 작성했거나 한 사람의 것을 돌려가면서 베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는 후안무치한 기사를 쓴 기자실 주도자들로부터 자신들과 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동안 왕따를 당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겪고 난 이후 자신을 꺾고 그들 무리에 섞여 출세라는 것을 향해 달려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는 각 수석들의 집무실이 있는 별관 쪽으로 걸어가다가 오늘 임명장을 받을 신임 검찰총장을 발견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빨리 도착한 것으로 미루어 그 전에 누군가와의 약속이 잡혀있는 모양이었다.
문성국이 무의식적인 호기심으로 그 사람의 뒤를 따라가니 그는 민정수석실에 이웃한 바로 그의 목표인인 김인철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 방의 주인인 김인철이 걸어왔다. 김인철은 취재를 구실로 말을 붙여볼까 망설이고 있는 그를 지나쳐 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성국은 미친 척하고 그 방으로 따라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참고 걸음을 되돌려서 입구 쪽으로 나왔다. 아직은 목표물이 자신의 관심을 눈치 채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현관 입구에서 그는 그 방으로 향하는 또한 사람을 마주쳤다. 서석준 이었지만 문성국은 그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그는 서석준의 옆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참석자가 있을까하여 현관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30분 쯤 지나서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쯤 홍보수석인 조경숙이 빠른 걸음으로 나타나서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가벼운 목례를 던지면서 그를 지나쳐 역시 그 방으로 들어갔다.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다가 그녀를 참석시킬 필요가 있어서 불러낸 것이리라. 그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언론에 관한 비공식 회의를 하기위해 모이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특보와 검찰총장, 홍보수석, 그리고 그가 얼굴을 모르는 또 한 사람, 만일 그 사람이 국정원 소속이라면 이 시간 그들의 논의 대상이 된 존재는 긴장해야만 할 것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흥분에 몸을 떨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가 된 기분으로 그 방에서 진행되고 있을 대화내용을 추측했다. 너무도 궁금했지만 추후 그 자신에 의해서 다 파헤쳐질 것이므로 참을 수 있었다. 그는 즉시 본사에 전화를 했다. 김인철에 밀착하자면 우선 그의 거처를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카레이서 경력을 가진 박 기자가 효자동쪽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김인철이 돌아가는 길에 그를 따라붙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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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