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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젊은 것들이 제 몸뚱이를 맹렬히 연소시키며 고층에서 뛰어내려 시멘트 바닥에 으깨어 지고 있다. 께어진 육신에서 흘러 나온 즙이 시멘트 바닥에 얼룩무늬를 그린다. 제몸을 태우며 죽는 자들의 마지막 절규는 경청되지 않고, 물동이와 빗자루를 들고온 청소부는 그 얼룩무늬에 물을 끼얹어 미스나오시를 한다. 박박 미스나오시된 세상 위에 또다른 산자들의 경세론이 쌓이고, 세계는 잠시 공룡처럼 뒷발을 게으르게 움직여 가려운 곳을 두어번 긁고 다시 잠든다.
세계는, 그리고 문명의 전체는 적대하는 한쌍씩의 모순을 뼈대로 얽어논 이원론의 초라하고도 남루한 가건물이다. 그 마을에서는 모든 말은 그 반대말의 반대말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와 당신들이 혈거하고 있는 이 잘난 이원론의 판자촌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말의 반대말을 기를 쓰고 해대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동네에서 마지막 제정신이라도 가지고 있는 자라면 어찌 입을 벌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말 끊어진 봄날에 나는 때때로 임제의 거렁뱅이 친구인 보화의 요령을 생각했다. 저 빌어 먹는 풍광(風狂)은 묘지에서 잠을 자고 저물면 묘지로 돌아 갔다. 낮에는 저자거리를 돌며 인간의 들끓는 언어를 향해 요령을 흔들었다. 시끄럽다 닥쳐라. 파천황의 웅변가 임제는 보화의 요령소리 앞에서 흔히 부끄러웠을 테지만, 저 맑고 거대한 풍광은 수다스런 친구의 수치심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말이 끊어진 어느 봄날에 보화는 허공 속으로 요령소리 아득히 풀어 놓으며 입적했는데, 사람들이 관뚜껑을 열어 보니 요령소리만 들려올 뿐, 시신은 이미 풍화되고 없었다.
말이 끊어진 봄날의 피곤한 저녁에 나는 또 별 수 없이 최승호나 황지우의 시를 읽는다. 나는 사실 보화를 감당해 낼 수는 없다. 최승호의 시 속에서 초월이나 피안 또는 자유는 추락한 시신들처럼 땅바닥에 으깨어져 있거나 쇠파이프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다. 초월이나 자유는 한마리 눈 먼 지렁이가 되어 진흙 속을 더듬고 있거나 수세식 변기 속에 빠져 있다. 추락한 그것들의 육즙이 땅 위에 으깨어지면서 이루는 그 난해한 문양이 바로 인간의 언어이며 경(經)이란 말인가. 최승호는 아마 그렇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최승호는 판 전체의 무의미를 무서운 시선으로 읽어 내고 있다. 변기에 빠진 귀뚜라미는 변기 속에서 '피안'을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쳐 가고 있다. 끈을 잡아 당기면 물과 귀뚜라미가 함께 캄캄한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구멍으로 들어가긴 들어 가는데/ 왜 이리 오랜 날들은/ 겁먹은 채/ 맴돌다 들어가야 하는지" 같은 시행들처럼 캄캄한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무의미 하고도 권태롭다. 최승호는 그 귀뚜라미의 운명을 무의미 속에 방치해버린다. 그 대가로 시인은 자신의 무의미의 몫을 에누리 없이 받아들인다.
황지우의 시 속에 나오는 거북이는 배때기로 땅을 밀면서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안에서는 바깥만 보고 있었는데 안에는 또 안이 있었구나" 또는 " 아무리 멀리 나가봐, 거기에 또 바깥이 있지!" 같은 난감한 시행들을 통과해야 하는 그 거북이는 영영 바다에 닿지 못할 것이다. 배때기로 긴 자국과 추락해서 으깨어진 자리의 문양이 말이요 경이라 해도, 뒤로 생기는 그 말은 '거품같은 길'이다.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덫이었구나"라고 말할 때 황지우는 길 없는 세상의 운명을 관통한다. 닻이 덫인 것이다. 닻을 내린다는 것은 덫에 갇히는 것이다. 닻을 내릴 수도 없이, 길 없는 세상을 배때기로 밀고 나가야 한다. 지나가고 나면 말들이 쌓여 길을 이루지만, 그 길은 '거품'이고 그 거품 속에서 들끓다가 사라지는 말들은 '포말문자'들이다' 낡고 추운 이원론의 마을을 떠나면, 인간이 기다리는 그 다음 마을은 변기통 속이나 진흙밭이다. 보화는 요령을 흔들며 그 변기통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변기통의 세계, 뻘밭의 세계 바닥에 이원론의 육신들이 추락해서 만드는 육즙의 문자는 무의미하다. 그 무의미를 확실히 깨닫는 자만이 그 무의미를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소리 조차도 이 혈거하는 판자촌에서는 죽기 싫은 자들의 자기 변명으로 들린다. 변기통 구멍 속 저 깊은 곳에서 죽은 보화의 요령소리 한바탕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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