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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을 가지고 토론이나 논쟁을 할 때는 먼저 그 대상에 대한 정의 자체가 합의가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정의를 들이대면서 니 말이 옳으니 내 말이 옳으니 하는 것 자체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예를 들어 '잉여생산물이 축적된 이래 자본주의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는 주장이 그렇다. 사실 원시인 집단이 매머드를 사냥해서 그날 모두 먹어치워 버리지 않는 이상 그들 사이에 분배와 교환의 필요성, 즉 경제활동의 필요성이 당연히 대두된다. 즉 생산없는 약탈경제에도 분배와 교환이 필요하며 그 자체가 경제활동이다.
예를 들어 '유사이래 경제활동이 없었던 적이 없다.'...라고 하면 말이 된다. 사실 인간의 모든 행위가 경제활동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이건 '유사이래 모든 경제활동은 자본주의다.'...라는 식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자본주의는 팔아야 산다...는 의미는 이렇다. 고대나 중세 시대 지주의 창고에 곡식이 꽉꽉 차 있으면 그 지주는 행복하다. 그냥 쳐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자기 재력이 허락하는 한 중국산 비단으로 몸치장을 하거나 사병을 부리거나 황제의 측근에게 뇌물을 주거나 알아서 할 일이다. 핵심은 그들은 자기 소유의 잉여생산물을 다시 처분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반대로 잉여생산물을 많이 축적할 수록 유리하다.
반면 자본가의 창고에 재고가 넘쳐나면 그 자본가는 미쳐버린다. 자본가에게 미판매 재고는 악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 계급을 동원해서 재화를 생산하고 그 재화를 다시 노동자 계급에 되팔아야 하는 모순에 직면한다. 이 부분은 작년에 정치 게시판에 올린 '경제학 쌩기초'라는 몇편의 글을 통해 충분히 설명한 바 있다. 고대/중세의 지주들은 노예나 농노계층에 자기가 그들로 부터 착취한 잉여생산물을 되팔아야 하는 그런 황당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이런 전혀 다른 시스템이 다 똑같은 것이고 이것도 저것도 다 같은 자본주의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의미없는 언어유희는 시간낭비다.
사실 자본주의의 소비부족/잉여재고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역사나 철학같은 인문학이 아니고 더하기 빼기 수준의 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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