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잉여생산물을 축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간 역사가 자본주의가 아니었던 때는 없다."
이런 얘기는 자본주의의 영생을 기원하는 분들에겐 솔깃한 얘기다. 사실과 달라서 그렇지...
우선 기본적으로 교환경제와 자본주의 경제를 헷갈리면 안된다. 교환경제는 심지어 잉여생산물이 없어도 존재가능하다. 어부와 농부가 곡식과 물고기를 교환할 때 각자 입장에서는 그 곡식과 물고기가 잉여생산물일지라도 그 교환경제 공동체 전체로 보면 잉여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공동체 전체로 보았을 때 잉여생산물이 축적가능하다면 그 때부터는 그 잉여생산물을 각자 골고루 나눠갖느냐... 아니면 한 놈이 독점하느냐의 분배의 문제가 숙제로 던져진다. 인간의 역사는 결국 후자를 택했고 지배계급이 탄생했고 국가가 탄생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단계가 자본주의 단계인 것도 아니다.
오해하지 말자. 자본주의적 시스템은 고대에도 존재할 수 있고 중세에도 존재할 수 있다. 고대에도 화폐가 유통이 되었고 로마의 귀족들은 중국산 실크를 걸치고 다녔다. 그렇다고 그 시대가 자본주의 시대인 건 아니다. 핵심은 어떤 작동방식이 그 시대의 주류적 시스템으로 작동하느냐... 이것이다.
비주류적 시스템이 작동을 멈추는 것은 그 시스템 자체의 모순 보다는 주류적 시스템의 와해에 덩달아 무너지거나 또는 돌발적 외부변수에 기인한다. 로마귀족들이 비단옷 걸치고 흥청망청하다가 쫄딱 망한 것은 자본주의 모순 때문이 아니라 노예기반 대토지소유제의 모순과 게르만족의 침입 때문이다.
유럽 봉건경제의 출현은 로마 멸망 후 유럽 재통일에 필요한 정치적/기술적 역량 자체가 미천했기 때문이다. 프랑크 왕국이 제2의 로마가 되지 못하고 자체분열과 바이킹 침략으로 해체수순을 밟은 것이 봉건제가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은 선비족이 중국을 재통일(북위->수/당)하고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그런 면에서 선비족의 수준이 게르만족 보다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즉 노예경제 다음에 필연적으로 봉건경제가 오고, 그 다음에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오는 건 아니다. 서양의 역사가 어쩌다보니 그렇게 흘러간 것 뿐이지 그 순서에 필연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즉 과거 뿐 아니라 미래에도 노예경제나 봉건경제가 존재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사의 흐름은 기독교 이론이나 맑스이론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공동체 역량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즉 자본주의 시대가 마감된다면 노예경제나 봉건제가 다시 나올 수도 있고, 맑스가 꿈꾸던 공산주의가 나올 수도 있고, 또는 전혀 새로운 대안적 체제가 나올 수도 있다.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가 다른 체제와 가장 다른 점은 '팔아야 산다'는 것이다. 이건 노예경제나 봉건경제와는 별 상관없는 자본주의 만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로마의 귀족은 자기 소유의 땅에서 자기 소유의 노예들이 생산한 생산물을 취하면 그것으로 된 거다. 그것을 중국산 비단을 구입하는데 비용으로 지출하느냐 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반면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생산한 재화를 자본가가 취하는 단계까지는 같지만 자본가는 그 재화를 다시 소비자에게 팔아야 한다. 이것은 노예경제나 봉건경제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산업혁명 이후 주류적 시스템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고 부터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자체 모순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세계사의 흐름이 좌우되어 왔다. 이건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 못하면 자본주의 시대는 끝난다는 의미다.
한번 수두를 앓게되면 수두 바이러스는 계속 체내에 남는다고 한다. 이것이 몇십년 뒤에 대상포진을 일으키기도 한단다. 그렇다고 수두 한번 걸렸던 사람을 전부 현재진행형 수두환자로 칭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미래에도 자본주의적 시스템 자체가 일부 유지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시대의 작동원리가 자본주의인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영속성을 주장하려면 주류적 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가 모순을 극복하고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경제학도 출신 정치인 유시민은 '케인즈 경제이론이 자본주의에 영생을 부여했다'고 자기 저서를 통해 주장했다고 한다. 매우 허접한 주장이라고 보지만...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다.
구매력 소진을 극복하지 못하면 자본주의는 자동적으로 와해된다. 이 부분은 더 나가면 역사논쟁이 아니고 경제논쟁이 된다.
결론적으로 역사 자체에서 자본주의 영속성의 근거는 없다. 그런 주장이야 말로 인류의 자기 결정능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맑시즘적, 기독교적 역사관이다.
영원불멸의 지배원리는 없다. 브라흐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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