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언제부터 존재하는가? 존재가 발생한 그 시점부터 존재한다. 존재는 존재가 발생한 그 시점부터 타존재와 어떻게든 엮이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걸리적거리는 타존재를 부정하려고 존재의 '전일'함을 가정하는 것이 힌두로 넘어가는 첫걸음이다.
존재가 진정 타존재로 부터 자유롭고 타존재와 영향을 주고받지 않으려면 존재 스스로가 사멸하면 된다. 그런데 사멸하면 그 자체로 비존재 아닌가?ㅋ 그래서 존재가 존재하는 한 타존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존재의 운명이다. 즉 관계없는 존재는 애시당초 존재할 수가 없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인간이 태어나는 그 순간, 그 인간은 자기를 만든 부모와 '관계'가 형성된다. 살아 나가면서 부모 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과 관계가 형성된다. 그 관계가 어떤 모양새인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 뿐이고 관계 그 자체가 부정될 수는 없는 거다.
소위 '존재론'이라는 것이 별게 아니다. 현실세계와의 관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절대진리(?)와 관계하겠다는 비뚤어진 태도의 관계론일 뿐이다. 존재론이랍시고 자아니 정신이니 논하면서 이데아니 신이니 가이스트니 등등... 자아 외적인 그 무엇을 설정해 놓지 않은 경우가 단 한가지라도 있었나?ㅋ 심지어 맑시즘 조차도 '물질이라는 신'의 매개가 필요하다. 맑시즘은 유물론이자 동시에 관념론이고 존재론이고 결국은 관계론일 수 밖에 없다.
인류역사는 자본주의라는 황당한 주장이 있는데, 이런 방식을 빌려 말하면 인류의 철학은 그 모앵새가 어찌되었든 예외없이 모두 관계론일 뿐이다.
진정한 존재론을 추구하고 싶은 사람은 산으로 들어가면 된다. 이것은 개인주의의 완성(?)이기도 하다. 단, 이때 빤스 한장 걸치지 말고 알몸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빤스 한장 안에 이미 수많은 관계가 엮여 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역시 관계론 속에서의 개인주의임을 인정한다면, 존재(개인)가 다른 존재(or 존재 집합체)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유리한지 고민하면 된다. 사실 그 자체가 철학이다.
논어를 한번이라도 성의있게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공자 사상의 핵심은 충(忠)과 서(恕)다. 忠은 글자 모양 그대로 마음의 중심, 즉 일이나 그 무엇에 임함에 자신의 성의를 다하는 것이다. 글자부터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내셔날리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한편 恕는 마음(心)을 같이 한다 (如).... 즉 내가 좋은 건 남과 나누고 내가 싫은 건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관계론과 개인주의를 이 정도로 아름답게 결합하면서 동시에 깔끔하게 압축한 텍스트가 또 어디 있다고 개나 소나 공맹을 ㅤㅆㅣㅍ어 돌리나?
관계론은 그 관계론이 왜곡되고 악용되는 부분을 비판해야지 관계론 자체를 부정하면 철학 자체의 부정이 된다. 사실 관계론이 악용되고 오염되는 근저에 바로 존재론이 도사리고 있다.
관계론적 공맹철학이 우주론/존재론적 요소가 강화되면서 계급차별적 힌두철학으로 변질된 것이 바로 송대 이후의 성리학이다. (서구철학을 숭상하고 공맹을 갖잖게 보면서도 조선의 성리학자 중에서는 이황과 남인계열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얼핏 황당하지만 힌두와 존재론의 코드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취향이다.)
서구의 존재론이나 여기서 파생된 개인주의 역시 사익추구 정당화로 자본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대접 받는 것 뿐이다. (서양철학이 과학발전과 물적토대를 뒤따라갔지 선행한 적이 없다. 갈릴레이 없이 데카르트 없다. 우리는 서양철학에 대한 과대평가 속에서 살고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존재가 어쩌구 정신이 어쩌구 노래를 부를 때는 그 밥그릇의 손익이 어찌 돌아가는지부터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서로 공헌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공동체라면 구성원 피차간에 존재론을 들먹거릴 이유가 별로 없다.
타자와 이익을 공유하려면 자기도 열심히 일해야 하기 때문에 존재론 놀이를 할 시간이 별로 없고, 하는 일도 타자와의 관계 자체도 즐거우니 존재론이니 개인주의니 떠드는 얘기에 별로 관심이 안간다.
이익공유가 잘 안되면 관계에서 착취-피착취적 성격이 강화되고 피착취자 입장에서는 일도 인간관계도 짜증스럽다. 세상이 싫으니 현실을 회피하고 싶고 존재론,종교,개인주의... 포괄적으로는 힌두질로 수렴한다. 착취자 입장에서도 잡것들과 어울리지 않고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역시나 존재론,종교,개인주의... 역시나 힌두질로 수렴한다. x같은 세상에서는 이래저래 존재론,종교,개인주의,힌두질의 수요가 풍성하다.
결국 모든 철학은 존재론이라고. 존재 없이 관계가 있을 수 있냐고. 이 문제는 나도 계속 고민해 오던 것인데.
밥솥 기자가 말했듯이 관계 맺지 않는 존재는 존재가 아니다. 상호작용 하지 않는 존재는 완벽한 비존재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아니고 진짜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는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위에 말했듯이 관계는 또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도 맞다. 존재와 관계는 상호 배척적인 개념이 아니고 서로 의존하는 개념이다.
결국 궁극의 존재가 있느냐는 것인데, 서양의 과학은 그것이 있다고 보는 관념하에서 크게 발전했다. 원자론인데 이는 서양과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현대 물리학에서도 옛날의 알갱이 개념만 탈피했을 뿐 여전히 양자장이 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더 이상 환원되지 않는 물리적 실체로 17 종류의 양자장을 도입했다. 물론 원자는 서로 상호작용하니까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이고 결국 과학이란 것이 그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원자가 3 종류인지 17 종류인지, 각각의 성질은 무언지를 탐구하기도 하니까 존재자체에 대한 탐구도 하는 셈이다.
훗날 양자장을 구성하는 더 궁극의 무언가가 발견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것이 또 원자의 지위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이 끝 없이 이어질 것이냐, 언젠가는 끝을 보게 될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 내 개인적인 의견은 끝이 없다는 쪽이다. 왜냐하면 극미의 고에너지 상태로 가면 계속 다른 환경이 만들어지고 그기서는 다른 존재가 계속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에너지 레벨이 높아지면 계속 그에 걸맞는 새로운 존재가 끝 없이 나올 것이라는 의견이지.
그런데 과학에 있어서는 궁극의 존재로 가상의 원자 개념을 가지는 것이 자연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틀이 됩니다. "이러 저러한 것들이 있다. 이유는 모른다. 하여간 이것들이 있다고 하면 모든 현상들이 설명 되고 예측 및 통제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과학입니다. 그것이 근사적 기술임에 분명하지만, 어쨌건 원자개념 없이 접근하는 것 보다는 월등히 효율적이에요. 최소한 현재 인류의 지적 수준에서는 그렇슴다. 먼 훗날 과학이 원자개념 없이 전혀 다른 형태로 발전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수준은 아니에요.
1번 댓글에서 과학의 태동기에 존재론에 치우친 서양의 전통이 일정역할을 했다고 했는데, 신이나 이데아 같은 철학이 역할을 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직 원자가설을 말한 겁니다. 그리고 갈릴레이가 확립한 과학의 방법론이 중요한데, 오직 실험으로 검증하자는 태도지요. 이런 것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하고는 관계 없지요. 신하고는 더욱 거리가 멀고요. 그러니까 원자가설이나 과학을 이해하는 데에 이런저런 서양철학은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현대 과학을 리드하는 일급 학자들은 철학자들을 비웃는 분위기가 많아요. 제 아무리 뛰어난 사변가라 해도 현실 자연세계의 작동원리를 모르면 엉뚱한 방향으로 사변이 흘러갑니다.
공자 말씀은 훌륭하지만, 과학을 하려면 현상 이면에 있는 어떤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이런 태도를 갖지 않으면 전자 같은 입자를 보지 못합니다. 보아도 안 보인다고나 할까. 원자론에 입각한 환원주의가 근사적 접근법임을 잊지 않으면 될 듯.
동양에서 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가 원자론 같은 환원주의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함.
다시 보니 공자 말씀은 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군. 솔직히 신하고 원자는 아주 다른 거잖아? 신이라고 하면 대체로 자유의지를 가진 어떤 초자연적 존재를 뜻하지 않나? 기독교의 신이나, 조상신이나, 귀신이나, 천사나 다 마찬가지 개념을 공유하잖아? 그니까 원자는 신하고는 다르다. 공자말씀이 과학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군. 신 따위는 논쟁의 대상으로도 안 쳐준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과학에 부합하는 태도다.
서구의 존재론이 과학발전에 유리했던 것도 맞고, 신이나 이데아가 과학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도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현실적 필요성이죠.
우연한 발견이 뭍히지 않고 이론화되고 발전하려면 현실적 요구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동양처럼 농업생산력이 우월하면 과학발전의 필요성 자체가 덜 요구됩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과학과 기술이 물적토대를 고도화하는데 필수적입니다.
이게 안되면 식민지신세로 추락하는 걸 역사적으로 경험했구요.
그래서 21세기 과학 발전을 위해서 존재론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 봅니다.
엥? 나는 신이나 이데아는 과학의 태동과 별 관계 없다고 했는데요? 원자가설 및 환원주의가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입장임.
원자설과 환원주의 자체가 이데아라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듯 한데... 하여간 나는 원자설은 이데아랑 별 상관 없다고 봄. 신하고는 진짜 아무 상관 없고.
현란한 말로 이데아를 들먹이지 않고도 원자설은 그 자체로 매우 명료한 개념이라서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됨. 게다가 원자는 현실에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를 의미하므로 이데아 하고는 다름.
인간사 문제에 대한 밥솥의 견해에는 전부 동의.
21세기 과학 발전을 위해서 존재론 철학을 파고들 필요는 전혀 없는 것 맞지요. 그래도 확실한 것은 21세기 과학도 여전히 환원주의가 추동하고 있습니다. 성급한 사람들은 양자역학이 환원주의의 종말을 가져왔다고도 하는데, 과학현장에서의 실상은 전혀 아닙니다. 양자역학도 철저히 환원주의에 기초하고 있고, 이 기조가 상당히 오랫동안 갈 것입니다. 다만 약간의 변화 기미가 있기는 있습니다. 부분계와 그것들의 관계를 아무리 정밀하게 끌어 모아도 전체계를 기술할 수 없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결론으로 유도되는데, 여기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면 환원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과학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주류과학의 흐름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곁다리 논의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 그거. 신이 인간에게 신의 섭리를 파악할 수 있는 이성을 부여했다는... 그래서 열심히 섭리를 파악하는 것이 신의 은총에 보답하는 길이라는...뉴튼도 그런 마음으로 역학을 만들었을지도...
요새도 저런 마음으로 과학을 하는 사람들 많지요. 우리나라에도 창조과학회라고 있고요. 현대 물리학에 와서는 신 믿는 사람이 과학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신이니 영성이니 하는 관념에 경도되면 과학 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믿는 사람은 반대로 생각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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