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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리시스와 칼립소, Arnold Bocklin, 1883
다시 오전 8시. 제1장에서 스티븐이
마텔로 탑에 있던 그 시각, 리오폴드 블룸씨는 집에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스티븐이 친구들
아침식사 준비를 하듯, 블룸은 아내와 고양이 밥을 챙긴다. 제3장까지 주인공이
텔레마코스였다면, 제4장부터는 오딧세우스가
본격적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스티븐이 형이상학이라면, 블룸씨는 그
반대라고 해도 될까? 접근 방식이 다르다 뿐이지 그렇다고 블룸씨가 육체에 가까운 사람은 아니다. 둘은 다른 장소에서
더블린의 하루를 시작하는데, 조이스는 둘이서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
한 조각 구름이 해를 천천히, 완전히, 가리는 것을 본다고 슬쩍 끼워놨더라.
스티븐의 잡생각이 관념에서 출발하여 실제로 내려온다면, 블룸은 감각에서 추상으로 마구 나아간다. 집 열쇠 하나만
봐도, 스티븐은 열쇠를 친구한테 줘버리는데(출발), 블룸은 열쇠를
신경 써서 챙긴다든가(귀가), 이런 식의 대비는 찾아볼수록 구석구석 나오니까, ‘해석에 반대’하면
넘어가자…. 아침부터 역사와 신학과 햄릿을 얘기하는 애들과는 좀 다르구나, 정도로 하고….
콩팥이 그의 마음을 점령했다
리오폴드 블룸씨는 짐승과 가금(家禽) 내장을 맛있게 먹었다. 그는 진한 거위 내장 수프,
호두 맛 모래주머니, 속 다져 넣은 구운 심장, 빵가루와 함께 튀긴 엷게 썬 간, 기름에 튀긴 대구 곤이를 좋아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지진 양(洋) 콩팥을 제일 좋아했는데,
그것은 그의 입천장에 희미한 오줌 냄새 나는 근사한 특유의 맛을 주었다.
콩팥이, 그가 혹 달린 쟁반 위에 아내의 아침식사 거리를 차리면서, 부엌에서 조용히 움직이자,
그의 마음을 점령했다.
블룸씨가 아내의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콩팥 생각을 하는 장면. 제4장의 첫 부분인데, 왠지 모르게, 참 좋다. 마음이 일렁인다.
아내 몰리의 아침 식사는 버터 바른 얇은 빵과 홍차. 부엌에서 밥상 차리면서 고양이에게
우유를 준다. 고양이를 관찰하면서 노는 장면이 재밌는데, 역시 왠지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난다. 특히 고양이의 대사. (영어 울음소리)
저놈한테는 내가 뭐로 보일까?
조심조심 아내의 침실 문 곁에 가서,
아내가 기침하셨는지 살핀다. 마님은 아직 기상 전.
아내의 취침 방해는 금물.
블룸은 골목에 잠깐 나간다. 돼지 콩팥 사러. 현관문 살살 닫고, 조용조용.
블룸은 아침부터 집 나가서 지나는 상점마다 인상이나 떠오르는 연상을 주절주절 댄다. 볼란드 점(빵집), 래리 오러크 상점(차 및 주류점) 같은 가게를 지나는데, 실제
다 있었던 곳이고, 주소도 정확하고 그렇거든. 하여튼 깨알 같은 디테일과 블룸의
잡생각들 재미있다. 술집을 하나도 스치지 않고 더블린을 통과한다는 것은 참 근사한 수수께끼 감일 거야.
그렇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지.
블룸은 목적지인 들루가쯔 푸줏간에 도착. 여기서 옆집 처녀를 만났는데, 블룸의 눈은 자꾸만 옆집 처녀의 ‘활기찬’ 엉덩이에 머무는 거지. 콩팥을 사고, 이 엉덩이를 따라가려고
했는데, 그만 놓쳐버려. 자, 어때? 스티븐의 잡생각과 아주 비교되지 않음?
그녀의 움직이는 햄 엉덩이 뒤를. 아침에 맨 먼저 그걸 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야. 서둘러요, 젠장. 햇빛이 비칠 동안에 건초를 말려야.
그녀는 푸주 바깥의 햇빛 속에 선 다음, 오른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나른한 기분으로
걸어갔다. 그는 숨을 코 아래로 몰아 내쉬었다: 여자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지.[...] 다른 녀석을 위한 거다 : 이클레스 골목길에서 그녀를
끌어안는 한 비번 순경. 사내들은 끌어안기에 꼭 알맞은 여자를 좋아하지. 상등품 소시지야. 오 제발, 순경나리, 나는 어쩜 좋아요.
콩팥을 사서 집에 왔는데 현관 바닥에 편지 두 통과 엽서 한 장이 와있는 거다. 그 중 편지
하나는 몰리의 애인 보일런에게서 온 것. 
몰리는 차를 빨리 갖다 달라고 하고, 블룸은 주전자가 끓고 있다고 대답하며 몰리의 벗어놓은 옷가지를
챙긴다. 그리고 부엌에 가서 콩팥 요리를 하거든. 편지 읽으면서.
* 블룸의 콩팥 요리법
버터를 팬에 녹여서 버터 소스를 만들고 콩팥을 넣는다.
후추로 간. 접시에 담은 뒤 갈색 고기 국물을 위에 뿌린다.
가장자리 탄 부분은 고양이에게 준다.
오,
젠장! 쉬운 말로 말해 줘요
▲ 영화 <율리시스>(감독 Joseph Strick, 1967)
침대에서 아침을 받아먹는 아내. 뭔 죄를 지었나, 아침상
차려 밥시중까지 드는 남편. 몰리는 읽고 있던 책에서 ‘윤회’라는 단어를 블룸에게
묻는다.
- 이게 무슨 뜻이에요? - 머템써코우시스(Metempsychosis, 윤회)?
- 그래요. 그 남자 진짜 이름이 뭐예요?
- 윤회,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건 그리스 말이지: 그리스 말에서 온 거요. 그건 영혼의 전생을 의미하지.
- 오, 젠장! 그녀는 말했다.
쉬운 말로 말해 줘요. 그는 그녀의 조롱하는 눈을 비스듬히 흘겨보며, 미소를 띄워 보냈다. 똑같은 여린 눈.
제스처 게임 뒤의 최초의 밤. 우리가 사후에도 산다는 것.
우리들의 영혼. 죽은 다음의 인간의 영혼, 디그넘의 영혼...(디그넘은, 오늘 장례식이 있는, 블룸의 죽은 친구)
잘난 척 좀 그만하고 쉬운 말로 하지그래~ 하고 조롱하는 듯한 몰리는 조이스의 아내 노라를
연상시킨다.
 ▲ 노라 바너클, 제임스 조이스의 아내
몰리 블룸은 조이스가 아내 노라를 모델로 만들었다고 알려져있는데, 아무리 모델이었다
하더라도 소설 속 인물을 실제 인물과 동일시할 수는 없겠다만, 몰리가 내뱉는 말들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성격은 노라 바너클과 비슷한
점이 많다. 몰리의 독백인 제18장 페넬로페와 제4장 칼립소에서 잘 볼 수 있음. (아이러니하게도, 몰리는
칼립소이자 페넬로페가 되는 거다.)
다음은 노라의 주옥같은 말들.
누군가 노라 바너클에게 그녀가 몰리 블룸의 모델이냐고 물었을 때, 노라는 이렇게 돌려준다.
“아니. 몰리는 훨씬 뚱뚱해.”
기자들은 문학 취미가 없던 노라에게 다른 훌륭한
작가를 아느냐고 묻곤 했는데, 그녀가 별 관심 없고 생각도 안 난다고 하면, 그 내용을 지면에 싣기도 했다. 어느 날 노라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 최고의 작가와 결혼했으면 말이야, 다른 조무래기들은 다 잊어버리거든.”
목하 열애 중이던 조이스와 노라. 조이스가 마텔로 탑에서 고거티와 지내던 생활을 정리하고 아일랜드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노라는 결혼도 안 하고 남자와 이 나라를 뜰 것인가. (당시 아일랜드의 가톨릭 문화를 생각해보셈. 그리고 돈 한 푼 없는 가난한 작가 남친) 조이스는 친구 바이런(J.F.Byrne,<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크랜리)에게 연애 상담을 한다.
“노라, 많이 좋아하나?”
“예스, 아이 엠.”
“노라, 사랑하나?”
“이번엔 다른 여자애들처럼 그렇지가 않네.”
“뭘 기다리고 꾸물대나. 노라에게 같이 가자고 해. 같이 가라고.”
조이스는 마텔로 탑을 나온 다음 날 노라에게 자기
계획(이래봤자, 이 나라를 뜨자. 돈 없지만, 어찌 되겠지. 결혼제도엔 관심 없어,라고 말했겠지)을 말한 뒤 물었다.
“Is there anyone who understands me?”
만난지 세 달도 안 됐을 때인데, 프로포즈도 참…
이때 노라가 뭐라고 답했느냐 하면,
“예스.”
때가 때이니만큼, 둘은 한 동네 살면서도 편지로 사랑을 주고받았는데, 조이스는 자기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과 노라의 몸과 마음을 다 그리워한다는 걸 글로 쓰고 표현하는
데 어려워했다. 노라에겐 ‘사랑’ 이 한마디면 되는데, 조이스는 욕정, 애정, 상냥해지는 마음이 버무려진 그 감정과 ‘사랑’ 사이에서 말 고르기를 하는 스타일. 나중에는 ‘오늘 밤 너무 외로워.’ 이런 말을 쓰기도 했지만 ㅎㅎ.
이런 경험이 조이스에게는 노라를 만나고 얻은 새로운
것이어서 소설에 많이 인용했고. 나중엔 둘의 언어가 점점… 구멍과 똥의 에로스로 나아가기도 했다.
아무튼 조이스가 노라에게 쓴 편지를 보면, 자기 과거를 고백하기도 하는 등, 사랑에 빠진 사내의 조바심과 불안이 스며있는데, 노라는 사랑이면 사랑. 끝. 이랬던 거지. 그리고 그건 아주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었고. 노라와 몰리의 닮은 점을 또 찾아보자면 무심함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찌 보면 단순함이라 할 수도 있고,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난 내 남편이 천재인지는 몰라.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이 같은 사람은 없다는 것.”
정신의학자 칼 융이 <율리시스>를 읽고 조이스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 책이 ‘여성의 진짜 심리’를 다뤘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때 노라가 한 말. “그(조이스)는 여자에 관해선 아무것도 몰라.”
조이스에 대면 촌뜨기에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않았고, 지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는 남편이나 남편 동료들의 ‘수준 높은’ 대화나 취향에 눌리지 않았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이었던 것. 편지뿐만 아니라 말할 때도, 문법이나 철자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아서, 이런 화법이 ‘몰리의 독백’에 반영되었다고 하지. 조이스는 노라의 이런 점을 관찰하고 의미 있게 다루었고, 세간에서 쉽게 말하는 ‘무식함’이라기 보다는 ‘무심함’, ‘도덕관념 없음(amorality)’이라 여겼는데, 이를 여성의 특질이라고 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좀 언짢았을 수도 ...) 땅에 가까운 존재. 그러면서도 영혼에 더 가까운 존재.
▲ 노라 전기
“I have enormous belief in the power
of a simple honourable soul . You are that, are you not, Nora?” (1909.9.2. 조이스가 노라에게 쓴 편지에서)
※ 참조
제임스 조이스 전기(리처드 엘먼)
율리시스(김종건 역)
* * * * ▲ 영화 <노라>(감독 Pat Murphy, 2000)
조이스와 노라가 처음 만난 장면.
(조이스는 <인형의 집>의 작가 입센의 팬이었다.)
"마이 네임 이즈 제임스 조이스"
"헤이, 제임스 조이스. 내 이름은 안 물어보나?"
"노라 바너클."
"굿. 입센의 그...?"
"뭐? 입센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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