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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에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에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에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에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의 저녁눈이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1969년이니까 내가 시가 뭔지도 모를 때, 현대시학사 제 1회 이영도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상은 이영도가 청마와의 연련한 행복을 까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출간하였는데 그 인세로 만든 상이었다. 오늘 밤 감상하기 좋을 것 같다.
이걸로 끝내기는 아쉬우니까 하나 더 올린다. 이 건 술기가 해남 땅끝을 간다기에 달마산 미황사 대밭 깊은 곳에 숨은 부도전을 보고 보길도 보옥산도 보고 오라 일러 준 적이 있는데 그 때 생각해 놓은 거다. 짤방은 우리집 뒤란 장독대가 갑자기 미황사 부도전 구석 같은 느낌이어서 한장 박았다. 눈 내린 밤은 불을 모두 끄고 촛불을 켜 놓으면 창호가 붉게 물드는 데 이게 별스럽고 호젓하다. 이 때 붉고 노오란 빛으로 떠오르는 것이 송기원의 치자꽃이다.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옆에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는데요
남해안 땅끝에서도 더 아래로 내려온 섬학교답게
아열대성 상록수들만 무성한 화단이 있는데요
화단에 가득가득히 치자꽃들이 한창이어서
교정 전체가 치자꽃 향기에 싸여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벗어나 들샘머리에 이르러
두 손으로 샘물을 길어 올렸더니
넘쳐나는 치자꽃 향기가 손바닥에 고였습니다
들샘머리 콩밭에서 김을 매던 할머니가
잠깐 일손을 놓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는데요
"쩌그 뾰족산에 가면 섬들이 가랑잎처럼 둥둥 떠있고
이쁜 디가 많은디 육지사람덜은 몰르고 가뿌러라우."
일흔 가까운 주름살 투성이로 수줍에 웃어 보이는
할머니의 얼굴에서도 치자꽃 향기가 풍겨왔습니다
그대여, 얼마나 오래 숨어살면서 그대에게 가는 길을 찾아야
그대는 치자꽃 향기처럼 나에게 풍겨올는지요
조금 덜 오래 전, 그러니까 1988 년 이맘 때 겨울이었지, 버스 타고 걷고 기다리며 보길도에를 갔었다. 예송리 동백꽃이 떨기 떨기 낭자하고, 예송리 해변은 몽돌 소리가 파도 거품을 숨기고 있었다. 버스 차부에서 운전사가 저짝으로 가면 아주 좋단다. 선착장을 지나 그리로 가는 길은 환상이었다. 아마도 내가 걸어간 길이 풍장 놓던 잔디 깔린 바다 언덕이었던 것같다. 송기원 시에 나오는 할머니 가랑잎처럼 둥둥 떠 있는 것은 몰랐었고 황지우 시 沿革 냄새가 비릿하게 밀려 드는 솔섬들이었다.
솔섬들이 보이고 이윽고 종점에 이르렀다. 허름한 종점 점방에 나와 앉은 초등 4학년 쯤 되어 보이는 까무잡잡한 계집아이는 얼마나 눈이 초롱했던지 지금도 선하다. 아마도 이쪽 땅은 멀리 류구왕국을 거쳐 인도네시아까지 해류로 교통하던 씨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리란 잡생각이 스쳐갔다.
보옥리 뾰족산은 그야말로 삼각형, 배롱나무 껍질처럼 단단하고 굽어진 아열대 나무들이 빽빽해서 사뭇 기괴하고 무서웠다. 숲을 지나고 가파른 절벽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彼岸의 바다, 그리고 눈을 돌리면 이엉 얹은 초가지붕을 돌담으로 갈라쳐 길을 내고 사람들이 다녔었다. 눈오는 밤 저 멀리 남쪽 나라를 생각는 까닭은 무엘까? 눈 내린 저녁은 촛불을 켜야하리...우련 붉고 노오란 방을 불러내어 느끼고 싶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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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