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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뭉치를 먹는 대시인... 나는 노시인 허만하가 적어 놓은 청마와 김춘수가 만나는 이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파 뭉치 대신 미나리 강회와 초고추장을 개다리 소반에 올려 통영 시인 어른들께 한 잔 모시고 싶어서일 게다.
이런 잔칫날은 희뿌윰한 새벽 강구항 시장 할머니들이 닥달해 손보아 놓은 하늘 빛 투명한 학꽁치며, 등푸른 고등색 멸치 갈라친 거 한 소반, 노란 성게알을 한 바가지를 사서 자전거로 돌아 왔으면 하는 꿈을 꾼다. 부엌에서는 술을 데우고 봉당 마당 화덕에는 전 지지는 들기름 번철 냄새로 번들번들할 터다.
먼저 대청 마루에 앉아 있는 시인들께 김윤식교수가 잔을 올린다. 위대한 허풍 청마가 받고 나서 제 결혼식 들러리 소년 김춘수에게 잔을 건넨다. 안주는 예나제나 파 뭉치다. 대여 김춘수는 새침떼기 뽄새로 김상옥 선생께 잔을 받든다. 초정 선생은 술을 받아도 한마디 없이 고풍스런 무덤덤이다.
옆자리엔 악마의 글쓰기로 자자한 박경리가 개경서 피난 내려온 박완서와 토지 두만이 얘기를 하고 있다. 만주 훈춘에서 두만이가 금녀를 혹독히 고문하는 장면 말이다. 박완서 자신도 만만치 않은 악종의 글쓰기를 하였지만 거복이를 끌고 만주까지, 해방무렵까지 달려 간 선배에게 해반주그레 반죽 좋은 얼굴을 들이댄다. 박경리가 속으로 '너두 만만치 않아, 한잔 받아랏!' 쏘아본다.
상청 안방에는 한용운과 김소월이 버림받은 여인의 얼골로 앉았다. 한용운이 퉁기는 거문고 병창이 적막을 더한다.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는 것은 시름을 잊을까 함이러니 님은 밤바다가 되고 나는 무지개가 됩니다.' 둘이 다 한 잔 술에 눈물바람이다.
만해가 소리를 권하자 소월이 답한다. 招魂은 아니 됩니다. 그걸로 끝이다. 님의침묵 곁의 눈물. 땅거미가 몰려오고 마당에 초롱불을 밝히고 희자매 인순이가 뽑아 제낀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어 놓고도 가는 님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임이야 어이 잡으리'
환장할 노릇이다. 가는 님을 잡지도 못한다니. 소월 옆 곁방살이 팔할 서정주는 저주받은 여인의 얼굴로 밤하늘의 새를 쫒고 있다.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비끼어 가네' 오늘도 못 오시나 봐~ 혼잣소리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순사가 오르명 내리명 분주한 데 물레 잣던 손도 맥이 풀려서 어유 등잔만 바라보는 북국의 아낙네 최정희가 속을 태운다. 그네 눈 앞에 샤갈 그림처럼 나타샤와 당나귀가 걸어 나온다.
달구새끼 털 뽑느라 정신이 없던 김수영이 마루로 올라서며 소리지른다. '에라이 이 넘들아 침을 뱉아라. 김일성 만세다. 닭똥 냄새 묻히며 시를 썼건만 술 한 잔 안주냐? 이거뜨라...' 대갈 일성에 불콰한 풀잎 모냥 뜨악한 데, 대문 앞이 수런하다.
오셨나 봐요. 오셨어요? 춘수가 맨발로 뛰어 나가며 선생님! 하며 엎어진다. 다들 일어서서 대청마루턱, 섬돌에 나와 선다. '춘수야 나 토영 데려 가다오.' 그렇게 그렇게 토영을 애 태우던 윤이상을 기다렸던 것이다. 아무도 없다. 꽃그늘에 바람소리 뿐이었다. 행랑 섬돌에 앉았던 황동규가 혼잣소리를 한다. '김종삼이 왔다 그냥 갔나 봐요. 문 앞에 신문지에 말아 놓은 진로병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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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