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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가 만주국 건국대학에 초빙 계획에 있었었다는 소재를 보며 만주국에 갔던 최남선, 염상섭, 유치환을 생각했다. 그래 허만하의 <청마 풍경>을 다시 꺼내 들었다.
허만하는 청마의 시 '道袍' 일부를 꺼내 놓으며 친일행위는 주체적인 것이 아니었고 후회했다고 넌지시 말한다. 청마의 시 도포에 나오는 한궈인은 중국인이 한국인을 부르는 말로 짐작되고, 꺼우리팡스는 한자표기로 高麗棒子인데 만주인이 고려인을 일본인의 하수인으로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 <암사지도>를 쓴 서기원이, 소설 중에 棒자가 아니라 皇자로 써 일본놈 하수인을 지칭했다고 했던 틀렸을지도 모를 기억이 있다. 어쨌든 김소운의 말을 허만하가 받아 적은 것으로 보아서는 청마는 마음을 빼앗긴 것이 아니고 회오를 가득 담은 친일이었던 걸로 보인다.
하얼빈의 중심가 <키타이스카야가>街 72번지에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러시아 케이크 전문점인 제과점으로 빅토리아 다과점이 있다. 청마가 일본에서 자기를 찾아온 김소운을 만났던 것은 이 다방에서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 1945년의 일이다. 러시아풍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이거리 인도 바닥에도 봄 햇살이 묻어날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김소운이 도쿄를 떠나 만주를 찾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일이 있었겠지만 청마를 만나는 것도 일의 하나였다고 나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낮부터 사이다병만한 보드카를 두 병 비웠다. 거의 휘발유 같은 술이었다고 소운은 회고했다. 청마는 보드카 두 병을 비우는 동안 말 한마디 없는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나는 그때 청마의 침묵에 대해서 김소운 시인에게 물었다. 그때 뜻밖에도 그는 그것이 자기의 친일 행위에 대한 비판의 표현이라고 스스럼없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단법인 전시생활삼담소의 외지위원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시 청마는 사람이야" 라는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운 역시 사람이다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짓적 물러받은 도포같은 슬픔을 나는 입었소 벗으려해도 벗울 수 없는 슬픔이오 --나는 한궈인이오 가라면 어디라도 갈 --꺼우리팡스요
위는 허만하가 쓴, 靑馬풍경 237~238 쪽에서 따온 글이다. 윗글을 보면 최남선의 매정(賣情)친일, 염상섭의 현실적 인정과는 달리 대장부다운 부끄러움을 아는 시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는 역시 같은 책 140~141 쪽에 있는 글로 사실 이글을 쓰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파 뭉치를 먹는 대시인... 나는 이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다. 파 뭉치 대신 미나리 강회와 초고추장을 개다리 소반에 올려 놓고 통영의 시인 어른들을 모셔서 한 잔 하고 싶어서일 게다. 이런 잔칫날은 희뿌윰한 새벽 강구항 시장으로 나가 할머니들이 닥달해 손 보아 놓은 옅은 하늘 빛으로 투명한 학꽁치며, 등푸른 고등색 멸치, 노란 성게알을 사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 왔으면 하는 꿈을 꾼다. 부엌에서는 술을 데우고 봉당 마당 화덕에는 들기름 지지는 번철 냄새가 요란할 터이다.
청마가 북만주에서 고향 통영(충무)으로 돌아온 것은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그해 이른 여름이었다. 부인의 권유가 있었지만 만주국 오족협화(만주인, 일본인, 조선인,몽고인, 러시아인을 협화하야 정체성을 세우겠다는 신생만주국 친일어용단체)가 얼마나 불편하고 입을 수 없는 옷인지 이를 버리고 통영으로 온 것이다.
그 때 김춘수 씨는 마산의 처가에 있었다. 군이나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하여 숨어 있었다고 한다. 김춘수 씨가 처음 청마를 상면하게 된 것은 해방 후 바로 얼마 안 되는 어느 날이었다. 해방이 되자 김춘수 씨는 고향 충무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 때 김춘수 씨는 그가 처음 대하게 되는 시인이란 이미지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침 점심 무렵이라 청마는 점심을 들고 있었다. 김춘수 씨가 처음 만난 청마의 모습은 막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켜고는 파 뭉치에 고추장을 찍어 입에 집어 넣고 있는 그러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기대했던 시인의 이미지와의 괴리감에 상당히 실망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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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