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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같은 민족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에 온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이 곳이 내 생활의 터전이 된지도 그 만큼이나 오래지만 여전히 ‘교포’
라는 이름표가 낯설은 한 사람이다. 어떤 이유든 낯선 이국에 살다 보면 항상 반쯤만 걸쳐진 것같은 불안한 소속감을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떼어내지 못하고 살게 되기 마련이다. 이 불안함이란 당연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조국’이라는 실질적,
감성적인 울타리
(혹은 개념)에서 연유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거니와, 또 이 내재적 불안의 상승과 해소는 각 개인이 조국을 떠나 온지 얼마나 되었는지에 따라 조금씩은 다른것 같다.
내가 아는 미국을 예로 들면 교포들은 흔히1세대, 1.5세대, 2 혹은 3세대로 불리운다. 1세대는 아무런 연고없이 이국으로 이주해 정착한 사람들이고 이들은 대체적으로 강한 정신력과 끈기,
혹은 남다른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한 사람들이다.
그 만큼 자존심도 강해서 자기 생각이나 의견에 넘치는 확신이 있는데다가 이민생활 중에 입은 크고 작은 정신적, 물질적 상처로 남의 얘기를 잘 안 듣는 경향이 있다. 이들에게 ‘조국’은 그들이 떠나온 이유에 따라 과장된 향수를 불러 오거나 그만한 악의를 품게 하는 존재지만 겉포장이 어떻든 이들에게 조국은 하나다. 이민 생활로 아무리 성공한 교포가 되어 주류사회에 입성한다 한들 그들의 정체성은 여전히 한국인일 뿐이다.
1.5세대는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기에 부모나 연고자를 따라 이주한 사람들이다. 언어나 문화적인 면에서 미국 주류로 성장하는데에 1 세대에 비해 큰 제약이 없지만 성장기에 이주를 한 탓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가장 심하게 겪는다고 볼 수있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배운 좋은 가치관과 습관들이 강화된 경우에는 이를 바탕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고 마는 경우도 적지 않다.
1세대는 자기 선택이란 강렬한 동기가 있어서 치열한 이국의 삶을 불평하지 않는 반면, 반강제로 이주한1.5세대들에게 1세대에서 보고 배운 치열함은 짊어진 짐이요 굴레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풍부한 인생의 기회를 부여받은 듯 하지만 그들이 가장 상투적이고 통속적인 직업군에 종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필살 인선이었던 김종훈은 14세에 도미했다고 하니 교포 1.5세대다. 김종훈의 워싱턴 포스트 기고를 읽고 나는 그의 글에서 내게 익숙한 교포 1.5세대의 모습을 보았다.
1.5세대들이 생각하는 ‘조국’은 어디일까?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1.5세대들이 선뜻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는 난감함에 부딪힐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이라는 현명하지만 틀에 박힌 답안을 내 놓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대답은 이들의 정체성에 더 없이 꼭 맞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건 어린 시절에 떠난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들의 가슴에 뜻밖에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날의 추억만으로 그럴 수 있을까? 10대나 20대를 미국에서 보냈다면 더 많은 추억거리가 생기지 않았을까?
내 생각엔 두 가지 더 큰 이유가 있다. 첫째, 1.5세대 대부분이 성장기에
1세대의 강력한 영향력아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언어와 문화가 낯선 이민 초기의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부모에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고 이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다른 가치관은 발전하고 변화될 수 있겠지만 이미 경험할 수 없게 된 ‘한국’에 대한 생각은 가장 가까이 있는 전문가(?)의 가치관을 그대로 내려 받을 가능성이 높다. 부모의 추억은 그들의 추억이 되고, 부모의 정치적 견해는 곧 그들의 견해가 되기 쉬운 것이다.
나는 1.5세대 교포들이 믿기 어려울 만큼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것을 보고 뜨악할 적이 가끔 있는데 그들 부모의 그림자를 생각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둘째는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이다.
개인이 ‘조국’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한국인’으로 태어난 순간에 맺어진 혈맹같은 것 말이다. 비슷한 생김새와 공유한 역사만으로 그냥 한패가 되어 버리는.
여러 이유로 ‘한국’은 1.5 세대에게 1세대 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김종훈은 미국도 한국도 사랑한다고 썼고,
사랑하는 그의 두 조국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해왔으며 하려고 했음을 얘기했다. 아마 솔직한 얘기일 것이다. 그는 또 정치에 관심이 없었기에 초기에 자신의 결정은 좀 순진한 것이었다고도 썼다. 사실 나는 이 ‘순진’함이 문제의 발단이었다고 본다.
1.5 세대들에게 한국은 감성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그림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 이들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지 실재적, 현재적인 경험이 많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하물며 이들이 한국의 정치와 국가적 비젼이 어떤 것인지를 충분히 이해 했느냐에 (김종훈 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지녔더라도)
의문을 품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론이 들끓자 김종훈은 생각보다 쉽게(?) 장관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의 정치 포기 이유는 무엇보다 배반감과 수치심이 아니었을까 한다.
‘한국’에 대해 품고 있던 감성어린 호의와 어렴풋한 애국심은 예상치 못한 냉대와 비판에 상처받았을 것이고, 비정한 비난을 뚫고
(더우기 실패에 익숙지 않은 사람으로서)
본래 품었던 그의 순진한 사명을 다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간 그를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마녀사냥하듯 물고 뜯어대는 여론이 잘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는 것, 하물며 정치인으로서 신뢰를 얻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김종훈을 향한 여론의 칼날이 노무현 정권의 어떤 인사인선보다 더 날카로왔다고 보지도 않는다. 어찌보면 한국의 기득권은 항상 그렇게 야비하고 인정사정 없지 않았던가?
국적 문제를 떠나서 그는 아마 적합한 전문 관료가 되기에 충분한 사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과 한국인을 이해하지 못한 점에서는 나라의 정치 관료가 되기엔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짧은 소동의 끝에 진지한 해명조차 없이 (어쩌면 기회가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돌아간 그의 뒷모습이 씁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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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