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탓'이라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 했기 때문에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가 안된다. 그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의 존재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화를 내는 것이다. 문제는 그대가 선한 일, 악한 일을 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문제는 그대가 그곳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악으로 인식되는 이런 처지에 놓이면 참 답이 없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거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도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그는 감옥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계절이 여름인데 그 이유가 여름에는 옆에 누운 동료가 36.5도의 열덩어리로 느껴지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동료를 미워하게 되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 본능적이고 직관적이 호오의 감정 앞에서는 사실 답이 없다. '야, 조건이 이렇고 저런데 니가 그러면 안되지'라고 말해봐야 열덩어리를 껴안고 싶은 생각이 들리 없다. 그래서 포지션이 중요한 걸지도 모른다.
우리가 특히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어떤 것으로 대접받고 있고, 존재자체가 오류인 집단으로 취급당하고 있는 현 상황이 답답하고 억울하지만 어쩔수 없다. 그들의 그런 감정조차도 인정해주는 거 이외에는. 그리고 차분히 때를 기다리거나 상황을 만들어가는 수 밖에는.
신영복선생의 딜레마는 겨울이 오니까 자동으로 해결됐다. 똑같은 열덩인데 계절이 바뀌어 난로로 대접받게 됐으니 문제가 해결될 밖에. 마찬가지로 정치지형이 겨울(?)로 변하면 우리를 대하는 그들의 인식도 변하겠지. 그래서 내 보기에 우리가 할 일은 즉흥적으로 대응하느라 힘빼지말고 차분하게 겨울을 기다리거나 주도면밀하게 겨울을 만들거나하는 것일 거이다. 사실 나는 그 겨울(의 조건)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그런 날이 오리라 믿고 상대랑 척지지 않은 상태로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너무 소극적인가? '만만디'나 '엎어진 김에 쉬어가기'같은 그런 넉넉함, 시간은 우리편이라는 자신감으로 봐주면 좋겠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