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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Zombie)
좀비, 누구든 이 단어를 들으면 징그러움과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느린 걸음으로 사방을 헤매는 썩은 시체. 살아움직이지만, 죽어 있는 존재.
난 지금 솔직하게 말한다. 국민참여당은 좀비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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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의 꿈
국민참여당 당원의 70%는 정당생활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 중 대다수는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분노와 슬픔을 느끼고 국민참여당을 찾은 이들이다.
국민참여당의 창당선언문에는 “우리는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삶을 당원의 삶과 정치적 실천을 규율하는 거울로 삼을 것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분노와 슬픔을 느끼는 와중에 어떤 정치세력이 이와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나오면 누군가는 분명히 그에 반응할 것이다.
그 수가 현재까지 5만여명이다. 그런데 그들 중 노무현의 삶 이상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정치를 바라봄에 있어서 노무현이 어떤 최소한의 기준치가 된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우리 정치 역사에 노무현과 같은 강직한 신념을 가지고, 지독하리만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가졌던 사람은 거의 없다. 그와 같은 인물을 정치를 바라보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가 그만큼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노무현과 같을 수는 없다. 정치에 입문한 과정도, 정치를 전개해나가는 과정도, 그리고 신념도. 노무현을 기준으로 삼되, 모든 이를 노무현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국민참여당은 노무현을 하나의 교조로, 바이블로 만들어버렸다. 솔직히 말하자. 노무현 팬클럽과 차이가 뭔가?
정당에 처음 관심을 가지고, 처음으로 정당문화를 체험하는 70%에게 노무현에 대한 연민, 분노 그 이상의 동력을 끌어낸 것이 있는가?
이 상태로는 언제나 비장한 분위기 그대로 침잠해 들어갈 뿐이다. 우리끼리 뭉치기야 하겠지. 하지만 바깥에다 대고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유시민과 노무현
우리들은 유시민에게 노무현을 투사한다. 2008년 2월 28일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유시민의 손을 들어줬다는 기억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모두에게 외면 받았을 때 그 홀로 방패막이가 되어줬다는 기억으로, 유시민은 노무현의 또 다른 분신으로 자리매김한다.
유시민은 자신은 노무현과 다르다는 말을 수도 없이 내뱉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과 노무현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노가다를 하면서 고시공부한 적도 없고, 잘나가는 세무변호사였던 적도 없다. 청문회에서 대기업 총수에게 쓴소리를 한 적도 없다. 유시민과 노무현이 다른 사람이란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언제나 유시민을 판단하는 기준은 노무현과 얼마나 닮았냐는 것이다. 유시민을 비판하는 이들은 유시민이 노무현과 다른 길을 가기 때문에 비판한다. 유시민을 옹호하는 자들은 유시민이 노무현과 비슷한 길을 가기 때문에 옹호한다.
유시민은 노무현이 쓰러졌던 그 자리에서 출발하겠다고 했지, 노무현이 갔던 그 길을 다시 가겠다고 한 적은 없다. 이 둘의 차이를 간과해선 안 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4월 27일로부터 벌써 2주가 지났다. 이제와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너무 늦은 일일지도 모른다. 4월 27일이 지나고 선거를 평가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제일 많이 들린 말은 당의 총체적인 역량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 죄다 모자랐단 말이다. 유시민도 모자라고, 최고위원들도 모자라고. 후보도 모자라고, 당원들도 모자랐단 말이다.
부족한 모두의 책임이니,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정당에 누가 신뢰를 보낼 것인가.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나보다.
장유터널에서, 창원터널에서 방사능비 맞아가며 자동차 매연 마셔가며 밤낮으로 고개를 숙이던 유시민이 모자랐단다. 자기 돈 써가며 전국 여기저기서 주말이고 주중이고 찾아와 몸빵을 뛰던 당원들, 자원봉사자들이 모자랐단다.
그 덕에 유시민은 죄다 자기 책임인양 큰 죄를 지었다고 말하면서 모든 활동을 접고 자숙 모드, 칩거 모드에 들어갔다.
유시민이 다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니까, 그냥저냥 넘어가는 분위기다. 유시민 불쌍하니까, 우리라도 그만 뭐라하자. 이런 분위기다. 당 바깥에서는 유시민에다 대고 온갖 조롱에 동정을 날리고 있으니 더욱더 그런 분위기다. 이런 때에 ‘모두 내 잘못이오, 내 목을 치시오’ 하면서 나서는 이도 없다. 유시민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던 사람들이 그런 충성심도 없다. 김해 캠프에서 실무나 전략을 책임졌던 사람이라면 그 정도 태도는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다들 유시민 뒤에서 숨어서 눈치만 보고 있다. 혹시나 날 비난하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놈의 민주당 탓. 작년 지방선거 때부터 줄곧 우리 쪽에서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민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 민주당의 소홀한 지원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말이었다. 정권획득을 지향하는 공당으로서, 자당 후보자들의 공직자 당선을 목표로 하는 정치집단으로서 그런 말을 하면서 부끄러움을 못 느낄까. 다른 당의 지원이 없으면 목표달성이 어렵다는 말이 변명으로 적절한 것일까? 독자적으로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사방팔방에 떠들고 다니는 주제에 국가를 바꾸고, 정치를 바꾸겠다는 말을 누가 믿을까.
나이브한 태도
5월 9일자 리얼미터 조사에서 유시민의 지지율이 회복되는 모양새를 보였다. 4월 27일 직후 한 자리 숫자로 떨어졌다가, 지금은 원래의 그 모양새 그대로 돌아가는 양상으로 보인다. 그래서 기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국민참여당 지지율 4%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유시민이 12%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 모양이다. 당이 유시민을 감싸안지를 못하는데,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냥 유시민 그 지지율 그것만 가지고 저쪽에 들이대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4%의 당이 12%의 유시민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을까? 유시민이 국민참여당에 소속돼있지 않아도 그만한 지지율은 나오지 않을까?
현재 손학규가 15% 정도의 지지율이 나온다. 민주당은 30%가 넘는 지지율이 나온다. 당의 지지율만큼 나오지 않는 대표주자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당이 그 사람의 발목을 잡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손학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채워도 그 지지율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이라면, 응당 그 안에 소속된 사람들을 감싸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민참여당은 그게 가능한 정당인가? 그나마 그런 당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그런 당 아니면 갈 데도 없는 유시민이 가련할 뿐이다. 결국 유시민 탓인가.
유시민의 지지율 회복세를 보고 많은 이들이 쾌재를 부르고 있다. 나는 그들의 그런 반응이 무섭다. 점점 모두가 유시민바라기만 될 뿐이다.
플랜B
국민참여당의 주요전략은 언제나 ‘올인’이었다.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찍고, 거기에 당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런데 그 이외의 전략을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아마 앞으로도 다른 방법을 택할 거 같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계속 들이대다 보면 한 번은 통하겠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다.
지도부에서 당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하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다보니, 김해 단일화 국면에서 일부 당원들이 김경수나 문재인을 물어뜯는 모양새도 나온다. 그런 돌발상황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부담은 모두 유시민에게로 돌아간다.
당연히 이길 것처럼 말하던 선거는 보기 좋게 져버렸다. 졌을 때의 상황을 생각하던 이들은 별로 없다. 그렇기에 충격이 더 크다. 이렇게 상처는 상처대로 입고, 상처는 상처대로 주고. 그럼에도 다음에는 또 유시민 하나를 믿고 올인이다. 유시민이 12%가 넘게 나오니까, 그거 하나만 믿고 또 들이댈 것이다.
그러면서 유시민을 점점 갉아먹을 것이다. 플랜B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무얼 할 것인가.
일단 우리 스스로 쌓은 벽을 깨야 한다. 이 새끼는 이래서 안 되고, 저 새끼는 저래서 안 된다. 결국 노무현, 유시민이 짱이다. 이런 방어막을 친 상태로는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다. 당장 유시민부터가 주장하지 않는가. ‘우리는 진보를 지향한다. 진보의 힘은 섞임에서 나온다’고.
꼬마민주당의 추억을 떠올리며 국민참여당을 그에 빗대는 사람들이 있다. 꼬마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다르다. 꼬마민주당은 3당 합당이라는 야합에 반대하며 남은 당이다. 국민참여당이 그런 대의명분을 가지고 시작했는가? 정치적 대의명분이라고는 오로지 노무현 정신 계승. 단 하나다. 한 인물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점에서 친박연대랑 다를게 뭔가.
민주당과는 정당문화라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민주당은 구태정당이 확실하다. 대의원을 지역위원장이 지명하는 정당이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구들과 단일화를 또 해야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어 우리의 표를 끌어내야 한다. 이건 당분간 이어질 딜레마다.
그런데 우리가 작은 정당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민주당이라는 정당 안에서 민주당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일리가 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실패한 것이 입증이 되었으니 함께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면 실패하는 것이 100% 입증된 유시민 중심의 올인전략은 계속해도 괜찮은가?
진보대통합 좋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우리가 한 그룹 안에서 노선경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내부에서 활로를 찾기가 힘들다. 국민참여당의 이름으로 바깥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다. 정책도, 비전도. 모든 게 막혀버렸다. 외부의 압력이 거세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한 우리 당원들은 내부로 똘똘 뭉친다. 힘들지만 우리끼리 잘해보자. 언젠가는 우리들의 진심을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만의 레토릭에 갇힌 채 바깥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좀비가 되어갈 것이다.
나는 지금, 진심으로 무섭다. 아무 말도 못한 채 우리안에서 우리만의 이야기가 맴돌까봐 무섭다. 구태한 놈들이건, 비합리적인 놈들이건, 싸우고 싶다. 차라리, 싸우다 죽고 싶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은 지금 싸우지도 못한다. 싸우자고 덤비면 비웃음을 당할, 그런 상태가 됐다. 싸우다 죽지도 못하고 스스로 살지도 못한다. 좀비와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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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