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시국이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6월입니다. 여러분들 만큼이나 지난 23일의 아픈 소식은 제게도 충격이었습니다. 놀란 가슴 진정되기도 전에 눈물부터 솟구치더군요. 마침 학교에 출근하지 않는 휴일이었기에 다음날 봉하마을에도 직접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 놀라운 추모열기와 질서정연한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기도 하였구요.
일요일을 꼬박 봉하마을에서 보내고 돌아온 학교, 제가 보고 느낀 것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교사 생활을 올해 시작한 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첫 제자들, 우리나라의 희망인 이 아이들에게 원칙과 정의가 사라졌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우선 우리 아이들을 소개해드릴께요.
저는 학교에서 1,2,3학년 수업을 모두 들어갑니다. 저희 학교는 산청에 소재한 고등학교로 모두 6학급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이지요. 인문계이기는 하지만 내신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지원하는, 소위 말하는 2차 인문계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1,2학년들에게는 동양의 고전인 소학을 가르치고, 3학년에게는 윤리를 가르칩니다.
윤리교육과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 저는 특히 공자의 사상을 믿고 있습니다. 예.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선설을 믿는 것이라고 표현하는게 좋을거 같네요. 유학이 아니라 유교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 '아이들의 수준이 높지 않다, 가정 환경부터 결손된 아이들이 다수라 힘들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버릇과 예절이 없다'는 등의 말을 학교측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에도 '내가 仁으로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였지요. 교사가 모범을 보이고 인격적으로 아이들을 대해주면 그들도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리라 생각했던 거지요.
하지만 그 믿음은 저를 무척이나 힘들고 어렵게 하였지요. 구구절절히 어린 학생 혹은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될 행동거지를 가르치는 소학을 강독할 때에도, 여러 철인들의 윤리 사상들을 가르치는 윤리 수업 시간에도, 수업 외에 학교 내부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과 대면할 때에도 아이들은 기상천외한(?) 모습들을 보여주며 신출내기인 저를 당황스럽게 하곤 했습니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욕구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아이들. 자신들의 인권은 너무나 소중히 여기고 당당히 주장하면서도 교사의 인권은 무시하는 아이들. 학생의 권리는 내세우고 의무는 수행하지 않는 아이들...
어릴 때의 가정 환경과 초등학교에서부터 소학같은 예절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중학교를 넘어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청소년의 탈을 쓴 동물적 본능을 지닌 우리 아이들을 교화시킬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인지 너무나도 많은 고민을 했었지요...
그런데...
그런 우리 아이들도 제 말을 알아듣더라구요...
대한민국에서 지금 위협받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민주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증폭되는 의혹과 분노 앞에 그들은 무엇을 숨기려고 하는 것인지... 저와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의젓하더라고요.
내신 성적으로만 두고 본다면 대한민국의 극빈층에 속하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이자 서민 중에서도 최하층 서민인 우리 학교 아이들도 아는 것을, 왜 현 정부는 모르는 것인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알려주면서, 아이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윤리 교사라는 탈을 쓰고 너희 앞에 선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 너희에게 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너희도 반성해야 한다. 이현 선생님이 말하신 것처럼 대한민국이 얼마나 썩었는지, 젊은이들도 정의를 얘기하지 않는다." 대충 이런 식으로 피를 토하듯 말했죠...
수업 시간엔 지루해하고 문자쓰랴, 화장실가랴 바쁜 녀석들이 함께 고민에 응해주더라구요...
하지만... 아이들도 아직 심각한 문제의식 까지는 아닐거란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될 때, 빨간날이라고 놀러를 갈 것인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것인지 이겠죠.
비록 세속에 때를 많이 묻은 우리 학교 아이들이지만, 어른들보다 심하겠습니까. 그 아이들이 직관적으로 '이건 아니다. 이건 정의가 아니다. 이건 잘못되었다. 이건 의문이 생긴다.'하는 것을 아는데, 우리 나라 주류에 속하시는 분들은 무엇을 하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세금으로 월급 받고 살아가는 저같은 소시민이 대한민국에서 윤리교사로 살면서 월급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마지막으로 노통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노통은 '민생'이라는 단어가 당신에겐 송곳이라고 하셨지만 23일 이후로 저의 가슴 속에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송곳이 되었습니다 ㅜㅜ 당신이 후보가 되시고 당선이 되셨을 때, 이후 군에 다녀와서 퇴임을 하시고 평범한 촌부가 되셨을 때, 단 한순간도 원망하거나 비판해본 적이 없습니다. 힘을 가진 자들의 흔들기와 모욕주기가 견디기 힘드셨겠지만 저같은 놈들의 투박한 마음도 알아주세요... 다시 만나면 수고하셨다고 꼭 말씀드리고 안아드리겠습니다. 09. 06. 09. 윤리교사가 된 당신의 지지자가 드림.>>
사원진/ 나도 생각마니 해봤는데, 미시적 차원에서 아이들 교화-감화 시키며 내 주변부터 바로잡는 삶을 사는 방법도 무지 좋은거 같더라. 근데 난 학교교육만으로는 한계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학교 이전에 가정이 바로되야 하는데 지금 사회에서는 그게 안되자나. 결국 사회를 바로 세워야해. 여기서만큼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아니라 치국이 중요한거 같단거지.
좀 거시적 차원에서 내가 주권당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어. 선생은 주권당원을 못해. ㅜㅜ
사원진/ 나는 확고하다. ㅎㅎ 그리고 내가 선택한 이 일을 하다가 다시 교단에 서도 부끄럽지 않은 시기가 오면 나는 다시 임용준비해도 안 늦었다고 본다. 지금 28살인데 10년 하다가 돌아가도 38세다. 우리과 동기인 형은 37세에 첫 교단에 섰다. ㅎㅎ
사기자의 걱정 참으로 고맙다. 열심히할게.
무항산,유항심 대단히 어려운거지만 님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우린 한발 내디디면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아니 기다리고 있음을
압니다.때론 무모한 도전이 새로운 지평을 창조합니다, 더구나 의지가
뚜렷한 노근님께선, 도전은 아름답습니다, Turn over a new leaf!!!
노근님의 그 글 읽었더랬지요. 그 무렵...
저도 교사입니다.
늘 아이들앞에서 부끄러운 현실을 부끄러워하는 그런 선배로서
노근님의 결정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다만 우리가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노근님이 소싯적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이뤄내는것이
힘의 원천이 되는것이 아닐까 하는 선배의 염려!!!
힘냅시다.
탁석산 말이 직업이란 자아실현이 아니라 밥벌이 자체로 위대한 거라더라.
나도 학생 상대하는데 한 편 노근이 같은 결심을 진작에 못한 것도 후회되고
한 편 일을 저지르기엔 너무 어려운 때라는 생각도 든다.
말려주는 지인들이 있다는 건, 그것이 자기확신을 몇 차례 지체할 기회가 된다는 건
좋은 일이지. 외로운 결심이겠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