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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초겨울. 당시 잉글랜드는 ‘등록금 정국’이었다. 12월 9일 하원에서 등록금 인상 법안이 최종 통과되었으나 도심 학생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특히 보수당과 연정의 한 축을 이루는 자유민주당이 곤혹스러웠다. 학생들의 분노는 등록금 인상에 따른 불만에서 기인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자민당 당수 닉 크레그의 정치적 약속 파기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등록금 인상과 관련하여 ‘어느 계층의 분노’가 폭발했느냐 하는 점도 관건이다. 연립정부가 설계한 등록금 부과 방안은 사실 ‘졸업세’라고 부르는 것이 더 합당하다. 졸업한 뒤에 연봉 2만1천 파운드(3천8백만 원)가 넘어설 때부터 대학 시절 지원받은 학비 총액 2만7천 파운드(4천9백만 원)를 조금씩 갚아가는 시스템이다. 학사 학위에 대한 일종의 ‘모기지’식 후불제라 할까?
물론 소득세를 내지 못하거나 일정 기준치 이하로 내는 집안의 자녀들은 이런 부담을 면제받는다. 졸업세 부과 정책은 대학 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정부 재정 적자가 심화된 상황에서 내놓은 고육지책이란 것이다.
보수당은 싫고, 그렇다고 노동당을 지지하기엔 께름칙한 중도 자유주의 성향의 중산층 유권자들은 2010년 총선에서 자유민주당에 표를 던졌다. 하지만 연정에 참여한 닉이 자신의 선거공약을 깨고 오히려 중산층의 이익에 배반하는 정책에 동조한 것에 지지자들은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여기서 더욱 주목할 점은 등록금 인상 정책의 파장이 이미 교육의 영역을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공공재정 삭감 정책을 펴나가면서 형평성을 잘 맞추지 못하면 시민들의 불복종 운동으로 번질 기세이기 때문이다. 까딱 잘못하면 연정이 위태로워지고, 국정의 틀 자체가 흐트러진다. 이 위험한 줄타기의 뇌관이 바로 대학 등록금 인상 정책이다.
지난 12월, 학생들의 도심 시위 가운데 흥미로운 현상이 눈에 띄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있는 패션 브랜드 체인 ‘톱맨(Topman)’ 매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자 회사 측이 셔터를 내리고 영업을 중지했던 것. 이 회사의 사주 필립 그린은 업체 등록을 자기 아내 명의로 모나코에 해둠으로써 약 2조원의 영업 이익에 대해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 돈을 벌면서도 ‘합법적’으로 세금 내는 것을 피해온 얌체 거대 기업에 대해 학생들이 격렬히 항의 표시를 한 셈이다.
‘세금 내라. 이 기름에 빠진 쥐새끼 같은 놈들아!’ ‘그럼 우리가 이렇게 X고생 안 해도 되잖아.’
나는 그 현장에 없었지만 아마도 톱맨 체인점 앞에 모였던 학생들은 이런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으리라. 아마 그들은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학 등록금 전액 면제이던 시절이 그리웠을 거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대학 기숙사 비용도 무료였고, 생활비까지 국가로부터 보조 받았었다. 고등교육 최고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바로 국가이다. 그래서 국가가 그 비용을 댄다는 것이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의 기본 정책 개념이다.
교육정책에는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이 동시에 담겨있다. 위에서 보았듯 잉글랜드의 대학 등록금 문제는 정치인의 신뢰, 공정한 세금 정책, 계층간의 상반된 이해 관계를 두루 넘나든다.
우리의 가카 생각이 절로 난다. 2007년 대선 공약에 분명히 들어 있던 ‘등록금 반값’ 약속은 지금 행방이 묘연하다. 하긴 그보다 더 큰 식언들이 난무하니 등록금 공약(空約)은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다. 그렇다 해도 돈이 없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해야 하고, 극단적인 경우 학비 마련이 어려워 비관 자살하는 사례가 잊을 만 하면 보도되는 우리 현실은 분명 '교육적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보여준다.
앞으로는 조금 더 지혜롭게 싸워보자. 가카의 등록금 관련 거짓말도 새로 환기시키고, 교묘하게 탈세하는 악덕 대기업들의 구린 뒷구석도 이 참에 대대적으로 폭로해 보자. 예를 들면 삼성의 이재용이 상속세를 정직하게 냈다면 대학생 몇 명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었는지 환산 가능하지 않은가? 그러니 “알량한 기부금 몇 푼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생색내려 하지 말고 세금이나 똑바로 내라.”고 기업들을 다그쳐보자. 사실 세금으로 중등교육, 대학교육 다 시켜서 일할 만큼 노동자들을 키워 놓으면 그 인력 가져다 쓰면서 온갖 혜택 보는 쪽은 바로 기업가들 아닌가.
여기까지 적다가 갑자기 맥이 탁 풀린다. ‘아참, 우리 가카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공약 이행하려고, 그나마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었던 법인세를 이미 절반으로 깎아드렸지.’
지난 3년 6개월간 대한민국 국정을 돌아보면 총체적 난맥이다. 그래서 뭐 하나 올바르게 바꾸려면 판 전체를 뒤집어야 할 판이다. 그래도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정치권에 압박을 가해보자. 지금부터 그들은 면밀하게 표 계산해야 하는 시기이므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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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