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계에 응용윤리라는 분과가 새로이 생기면서 이전에 강조되던 '합리성'이 '합당성'으로 대체되고 있다.
합리성은 이성을 중시하는 개념으로 2,000년 이상 서양 철학을 지배해왔다. 오직 인간만이 이성을 지닌 존재라고 볼 때 그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 인간의 탁월한 삶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력한 위력을 떨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급속한 과학-교통-통신의 발달은 과거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흔들었고, 20세기에 들어 절대적 기준으로써의 이성 중심의 전통(모더니즘)은 퇴색되었으며 그 자리를 포스트 모던 철학이 대체하게 된다. (이성 이후의 철학이라는 의미임)
이 사조의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획일적 이성 강조에서 다원적 탈이성 강조 : 전체주의를 탈피하고 다원주의 사회로. 2. 절대적 가치를 부여받은 이성의 권위를 해체, 비이성적이라 여겨졌던 감정, 의지 등 소수의 가치들 재조명. 3. 보편화된 이성 중심의 거대 담론에서 탈피, 상황맥락적인 미시 담론을 추구. 4. 이성을 강조하는 합리성 개념에서 상황맥락을 고려하는 합당성 개념으로.
개인적으로는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며 그 가치는 '사람다움'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다움'이라는 것이 과거 서양의 철학을 지배해왔던 '이성'처럼 고정된 개념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는 어쨌든 다양한 목소리와 소수의 이야기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며, 그것들이 관용의 정신에 입각하여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 철학이 포스트모던의 기조로 흐르면서 과거의 굳건했던 전통이 부정되는 일시적 아노미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였고, 현재도 그러한 휴유증을 앓고 있는 중인 것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존재한다.하지만 인류가 지향할 가치의 방향은 저러한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면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발전하고 변화하는 현대 정보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다양성과 그것의 조화가 핵심 문제로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엠비가 죽지도 않은 강을 죽었다고 구라치며 몰아붙이는 것이 욕을 먹는 것도 수렴의 과정이 전무하였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에게 탈이성적, 다원주의적, 미시담론적, 상황맥락적 합당성에 의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고 할 때에 참여당과 유시민대표 앞에 놓여있는 대중적 진보신당 건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내 대답은 참여해야 한다로 귀결된다.
진보통합의 정당성
우선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획일적 이성주의를 거부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한다고 해서 그것이 소피스트들이나 궤변론자들이 주장하는 일반적 의미의 '상대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자.
일반적으로 상대주의란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양시론으로 흐르기 쉬운데 이는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바로 그런 면으로 인해서 프로타고라스 같은 소피스트가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 박살이 나게 되는 것이다.
원래 상대주의는 상대적 차이점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통찰과 사색이 부족한 작자들은 이를 무비판적인 관용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하지만 우리는 이 함정을 반드시 비켜가야만 한다. 관용이란 나와 차이점이 있는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뜻하는데 이 세상에 한계가 없는 관용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주의의 관용을 한계가 있는 관용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인 자를 관용할 수 있는가? 여아를 성폭행한 자를 관용할 수 있는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를 관용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절대로 관용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까지 관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관용에 대한 지나친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다양성이 존중되는 현대 사회라 하더라도 절대로 주장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 집권 여당께서 주장하시는 것들 중 이런 것들이 많이 보인다) 진정한 관용은 모든 것을 관용하는 것이 아니라, 관용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한계있는 관용이다.
다양한 것들의 상대성을 인정하자는 포스트 모던의 정신에 한계가 있는 관용의 개념이 삽입되는 것이 현대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의미의 다양성 존중 견해이다. 실제로 과거의 이성 중심 합리성 담론에서는 이러한 절충적 입장이 없었다. 오직 이성적 사유를 강조했을 뿐 그 상황과 맥락에 대한 고려는 부족한 전체주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를 이해할 때 진보통합에 대한 논의는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째서 그렇나?
진정으로 관용할 수 없는 상대는 바로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보진영 통합을 위한 연석회의의 상대들은 20여년 전부터 참여당 독자노선을 주장하는 당원들이 얘기하는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첫째, 정의로운 언론의 부재와 둘째, 수 십년 이상 고착된 지역주의의 폐단과 셋째,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순혈주의에 갇힌 정저지와적 실패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선택을 안타까울 정도로 받지 못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독자노선의 길을 걷는 것이 전적으로 틀린 길이 아님은 자명하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가 양당제의 고립적 상황 보다는 다양한 가치관을 지향하는 정당들이 정의롭게 공존하는 다당제임이 틀림없다고 볼 때에 노무현 정신 계승과 민주적 복지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건 참여당의 슬로건을 묵묵히 실천하는 것은 바보 노무현이 걸었던 바로 그 길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과 고통받는 서민들의 현실 등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도저히 독자노선을 주장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통합의 강력한 이유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운명이다'고 말씀하셨는가. 유시민은 왜 민주당에 입당해서 편안한 정치행보를 걷지 아니하고 지난한 참여당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수구꼴통 세력들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이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가 되어 사람사는 세상의 가치가 실현되어 질 수 있도록 유시민과 지지자들에게 주어진 운명인 것이다. 그 주어진 거대한 운명의 힘이 노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자신에게도 주어져 있음을 직감한 유대표는 작금의 고통들을 외면한채 오직 우리만의 순혈주의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운명을 직감한 리버럴리스트의 표정이다.
작년 6월 지방 선거와 7월 재보선, 그리고 금년의 4월 재보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면 상황은 분명 지금과 다르다. 당 진로에 대한 고통스러운 고뇌의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하지만 언론과 얼치기 진보들의 맹공 때문이었든 우리들의 역량부족이었든 간에 현실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는데 (아쉽게)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순혈주의만을 외치며 독자 노선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에 거스르는 일이며 모더니즘의 시대에 이성만을 강조하는 전체주의적 오류를 범했듯 시대 착오적 태도가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진보 자유주의의 노선을 통해 민주적 복지국가 건설의 순수성을 의심하자는 소리가 아니다. 현실에 주어진 고단한 실패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역사가 주는 교훈 - 바른 언론의 부재와 역량의 부족으로 인한 우물안 개구리의 상황, 그것이 국민의 마음을 사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인식 - 을 통해 새로운 흐름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돌파가 가능한 판을 새로이 짜야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독자 노선을 통해 우리의 가치를 추구해 나간다면, 그것은 아무리 잘 되어도 노무현이 쓰러진 바로 그 지점에서 유시민 또한 쓰러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비록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통합하게 될 경우 파생될 다른 어려움들이 예상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것이 두려워 순혈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국민들이 처한 작금의 개사태를 외면하는 처사가 될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시켜야 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집권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유시민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민주 진보 진영의 누군가가 강력한 대항마로 부상하여 국민의 마음을 얻어내야 한다는 논리에 입각한 주장이다. 그만큼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으며, 한 번 더 집권에 실패한다면 어떤 잘못된 정책들을 통해 국민들의 고통이 가중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주어진 상황과 맥락을 고려치 않고 무조건적인 독자노선을 주장하는 행태는 유시민의 정치적 매력을 스스로 갉아 먹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이는 근대적 모더니즘의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으로 합리성이라는 매커니즘에 매몰된 행태라 하겠다. 우리는 시대가 변한 만큼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 적합한 사고를 해야한다. 상황과 맥락을 유연하게 고려하는 합당성을 추구해 나가야 하며 바로 그것을 향한 노력이 결실을 이루어낼 때 노무현이 쓰러진 바로 그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시민이 새 시대의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진보 진영의 그들이 참여당에 손을 내밀지가 걱정이다. 하지만 이정희 대표의 최근 행동과 유시민 대표의 발언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충분한 교감을 두고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은 사실인 듯 하다. 아마 그들에게도 유시민이라는 정치인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으리라. 우리보다 20여 년 독자노선의 외골수 행보를 걸어왔던 '선배' 정당에서 손을 내민다는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들 눈에 우리가 중도 좌파로 보이기라도 하겠는가? 중도 우파로 보이면 다행이다)
운명이다
유시민 대표의 말대로 진보의 힘은 섞임에서 나온다. 시대적 철학이 이미 다원화된 가치를 진정한 의미의 관용을 통한 중용적 태도 견지로 기울어져 있다. 대체 무엇이 고민인가? 오직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야 할 시기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노무현의 가치와 유시민이 가야할 길이라는 프레임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마라. 역사는 더 이상 그러한 전체적 사고를 대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직 포스트 모던의 반정초주의가 현재의 흐름이고 취해야 할 사고방식이다.
유연해지자.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주장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통째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우리가 한나라당과는 분명히 함께할 수 없다.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 이후에 민주당과도 함께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국민의 선택을 얻지 못해 진보대통합이라는 새 판 짜기를 통해 흐름을 바꾸어 보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이들에게 함께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자의식이다. 이들과도 함께하지 못하는데 한나라당을 적극 지지하는 전체 40프로 이상의 유권자들과는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대중적 진보정당을 유연하고 상황맥락적으로 합당한 마인드를 통해 반드시 이루어내자. 이후에 민주당과 같은 중도 우파와 연대하여 한나라당을 압박해 들어가자. 그러한 구도가 2012년 초 정도에 완료될 수 있다면 총선과 대선의 판도는 크게 요동칠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노무현이 믿었고 유시민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위하고자 하는 국민을 더 돌이키기 힘든 도탄에 빠뜨리게 된다. 이후의 희망을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게 된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모든 답이 나와있다. 자유주의 가치관에 선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관의 결합. 그것 자체가 이미 합당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이다. 만약 진보통합만이 정답이었다면 유시민이 대표로 취임하기 전에 그것을 공약으로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4월 재보선 이후 급격히 냉각되었고, 현재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합당한 선택은 진보통합 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제발 말로만 지지자입네 말하지 말고, 진보 자유주의라는 가치관에 동의한다면 공부하고 성찰하자.
내가 다른 진보당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거부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참여당과 진보당들을 미미하게 지지한다는 사실로부터 유추되는 거부감이 더욱 중요하다. 국민들이 엠비라는 괴물로 대표되는 수구 기득권 세력들에게 거부감을 가진다는 사실이 더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이런 상황들을 충분히 고려해서 합리적이 아니라 합당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유시민 대표와 지지자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노무현이 그랬듯 유시민이 가는 길 또한 필연적으로 고통스럽고 아플 것이다. 어쩌면 죽어야 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사즉생이 아니라 죽어야만 국민의 마음을 얻고 감동을 이루어내 꿈꾸는 사람사는 세상에 한 발 더 다가갈지도 모른다. 이미 유시민 대표는 이러한 운명을 담담히 갈 각오가 되어 있을 것이다. 참여당에 입당하면서부터 그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당신들은 어떠한가. 유시민을 죽음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생각인가, 함께 죽어야 한다는 생각인가. 유시민을 지키는 길은 현재 독자노선 고수가 아니라 통합 논의에 합류하는 것이다. 유시민과 함께 죽는 길은 통합을 이루어내고 이후에 전개될 상황과 맥락을 민감하게 감지하여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