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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팽키: 수업시간 땡땡이치구선, 강둑으로 가서 담배를 피워요. 다음 시간엔 출석 부르는 선생이 들어오니까.
빌: 집에 가는 것도 쉽죠. Addy처럼요. 저번 수요일 오후 걘 조퇴증을 끊어서 집에 갔어요.
저자: 마지막으로 필기했던 게 언제니?
윌: 우리가 언제 무슨 필기를 했지?
퍼즈: 맞아. 마지막으로 했던 게 ‘진로 안내’ 시간이었지. 빌어먹을. 나는 종이조각에다 “예”라고 적었어요. 기분 나쁘더라고요.
저자: 왜 기분이 나빴지?
퍼즈: 전 한 학기 동안 끝까지 아무 것도 쓰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있었어요. 빌어먹을. 개학 후로 아무 것도 쓰지 않았는데. (인터뷰 당시는 학기 중반이었음).
영국의 문화연구자인 폴 윌리스 교수의 저서 <Learning to Labour>(1978)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초판이 나온 후 벌써 33년이 지났다. 윌리스는 버밍엄대학에 재직할 당시 잉글랜드 중서부 지역 노동계급 가정의 학생들과 직공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구 주제는 ‘반학교 문화의 태도를 보이는 학생들이 어떻게 노동자 계급으로 전이되는가.’라는 것이었다. 문화기술지 방식을 채용한 이 프로젝트는 그 연구 방법이나 제기된 문제의 참신성 때문에 학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한국어로는 <학교와 계급 재생산>이란 제목으로 2004년에 출간되었다.
일반 독자들이 이 책을 편안하게 읽기란 쉽지 않다. 전반부에 담긴 인터뷰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교육현장을 보여주므로 조금 낫지만 후반부의 연구 분석을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마르크시즘과 문화이론에 대한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학교 제도와 계급 문제를 고민하면서 좀 더 진보적인 정책을 구상하려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런 수고를 감내할 가치가 있다.
윌리스 교수는 이 책에서 ‘간파(penetration)’라는 개념틀을 제시한다. 학교에서 말썽만 일삼고, 집단적으로 껄렁대고,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패거리들은 자신을 일컬어 스스로 ‘싸나이들(lads)’이라 부른다. 싸나이들은 수업을 빼먹고, 공공연히 담배를 피우고, 교사의 강의를 방해하거나 딴지를 걸고, 예쁜 여학생들에게 연애를 건다. 공부하기나 자격증 취득엔 도무지 관심을 안 둔다. ‘범생이들(earoles)’과 자발적으로 구분 짓고 싶어 하는 노동계급 아이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의 분석에 따르면 노동계급 아이들은 이미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세상을 ‘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진출의 기회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거나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이동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학교 밖이 그러할진대 여러 가지 잡다한 자격증을 갖고 있다한들 그들에게 어떤 희망이 열리겠는가. 지식과 자격증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어떤 기술 능력이 담겨 있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배제’의 기능을 수행하며, 계급사회를 정당화하고 재생산한다는 의미 때문이다.
내 말이 너무 좌파에 경도된 것일까? 우리 주변에서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영국인들을 둘러보라. 변호사 자격증이나 건축가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의 피부색을 확인하고, 출신 가정이 어떤지를 물어보라. 요즘과 같은 불경기엔 사회적 네트워크에 능한 웬만한 중산층 출신 자녀가 아니고서는 관련 학과 졸업 후 견습직 사원 자리 하나 구하기도 힘들다. 이스트 런던의 방글라데시 이민자 출신 여학생이 건축가가 되려면 뚫고 올라가야 하는 유리 천장이 겹겹으로 둘러싸여 있다. 즉 지금까지도 자격증은 사회적 배제(=유리 천장)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우리는 영국에 살면서도 영국을 모른다. 영국 거주 한국인이 4만5천 명 정도라고 하지만 그 인구의 대다수가 주거 조건이 좋은 런던 서남부의 특정 지역에 몰려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트 런던의 뉴햄 지역에서, 버밍엄의 빈민가에서, 브라드포드의 다문화 지역 학교에서 매일처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윌리스 교수의 연구는 바로 그런 지역 가운데 한 곳에서 계속되었다. 그는 묻는다. 노동자계급 아이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리고 왜 뚜렷한 자기선택을 통해서 노동자계급의 직업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가?
아이들은 세상을 일찍 알아버린다. 바로 ‘간파’라는 명민한 문화적 의식을 통해서이다. 그들은 현재의 노동시장이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대규모로 분화된 작업 현장에서 단순한 노동을 제공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의 아버지와 삼촌들을 통해서 작업장의 십장들이나 관리자들에게 고분고분하게 굴다가 근로시간이 더 는다거나 치명적인 손해를 입는다는 걸 간파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권위를 내세우며 자격증의 중요성을 가르치려드는 학교 당국의 관리자들이 어떻게 비칠까?
폴 윌리스의 글을 다시 정독하던 중 머릿속으로 여러 장면들이 슬라이드처럼 명멸한다. 고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 빼먹고, 나와 함께 학교 담장 넘어가 광화문 뒷골목 포장마차에서 소주잔 기울이곤 하던 그 껄렁패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어느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점점 쇠잔해져가는 근력을 한탄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을까?
쌍용자동차로의 복직을 기다리다가 생활고를 못 이겨 며칠 전 연탄불을 피워 자살한 임무창(44세) 씨는 어느 학교를 다녔고, 학창시절 꿈은 무엇이었을까(그는 내 나이 또래였다). 대학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 학기 중엔 야간에, 방학 중엔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서민층 대학생, 그 아이들은 ‘스펙 쌓기’ 경쟁을 어떻게 해나갈까? 게다가 해외 어학연수가 선택 아닌 필수로 변한지 오래라는데. 경남 소도시의 기울어가는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건축기사 2급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는 한 남학생은 지금 우리 사회를 어떻게 ‘간파’하고 있을까.
교육은 더 이상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아니다. 교육과 경제 발전 사이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가정도 사실은 이제까지 올바로 검증된 적이 없으며, 그러므로 하나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의자 뺏기 놀이를 고통스럽게 지속하고 있다. 학위나 자격증을 딴 사람만이 안락한 의자 몇 개에 앉을 수 있다. 교육을 바꾸려면 이러한 판 전체를 뒤흔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산다. 아이들은 세상을 명민하게 ‘간파’하긴 했지만 그렇게 파악된 세상을 바꿀 대책이 없다. 거기서 좌절한다. 자신들만이 즐기는 ‘하위문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생겨나며, 아이들은 그 우산 아래서 보호받는 느낌을 갖는다. “씨바, 조낸 즐이네.” 이렇게 한 마디라도 뱉어야 속이 풀린다.
폴 윌리스의 방대하고 치밀한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다. 그의 연구에는 숫자나 통계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람들의 의식, 입장, 태도를 바라본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또한 그의 연구는 노동계층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고 있다. 비록 그런 개인적 정서가 <Learning to Labour>에서는 한 마디도 표출되지 않았지만 나는 연구자의 언표 되지 않은 애정을 행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교육학계에서 가장 부족한 측면이다.
자세를 낮추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고, 해결책을 진지하게 고민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런 도전 의식이 돋보이는 연구와 저작물이 최근에는 더욱 더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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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