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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간혹 영국 미디어를 통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세히 설명하려면 복잡하다. 두드러진 특징 몇 가지만 간추려 본다.
이것은 잉글랜드에서 2002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유형의 중등학교이다. 운영 주체는 사립이지만 운영비는 100% 공적 재원으로 충당되는 공립학교다. 교사 임용은 일반 기업의 회사원처럼 이뤄진다. 연봉제에 근거한 자유 계약직이므로 학교재단은 교원노조 눈치 안 보고 교사 임면 권한을 더 크게 누린다. 교과목 선정, 교육 방법, 학교 운영 방식 등에서 운영 주체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단, 교육기준청의 감사를 받아야 하며, 일정 기간 이내에 학교의 성취도를 향상시켜야 한다.
아카데미는 원래 노동당 정부 시절인 2002년에 대도시 중심부의 열악한 교육구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던 정책이었다. 나름대로는 계급 격차에 따른 교육 수준 차이를 극복하려고 고심 끝에 도입한 것이었다. 신설 아카데미 하나를 설립하는데 최소한 400억 원이 넘게 들어간다. 가난한 도심지에서 ‘지역 부흥’을 자극시켜보자는 취지로 학교에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혁신적인 건축 디자인을 채택했기에 초기 비용이 이렇게 많이 든다.
보수당이 집권한 이후 마이클 고브 교육부 장관은 이를 아주 통 크게 밀어붙이고 있다. 노동당 집권 말기였던 2010년 4월에는 잉글랜드의 3,100개 중등학교 가운데 6.25%가 아카데미 지위를 갖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11년 4월 현재 12%를 기록하고 있으며, 12월에는 25%로 증가될 예정이다. 만약 이런 속도로 진행되면 다음 총선 때인 2014년에는 잉글랜드의 모든 중등학교가 아카데미로 전환될 것이다. 아찔하다.
며칠 전 시사 주간지 <스펙테이터(Spectator)> 4월 9일자에 실린 아카데미 관련 사설을 읽었다. 이 주간지는 아직도 영국이 ‘대영제국’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강경 보수지 <데일리 텔레그라프>와 자매지 사이다. 이 사실은 일찍이 알고 있었으나 그 논조의 황당함에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http://www.spectator.co.uk/politics/all/6846463/leader-schools-out-for-ever.thtml)
이들의 주장은 단순 명쾌하다. 그 동안 아카데미의 성적이 급상승했는데 그 성공 요인은 개별 학교에 ‘자유’를 부여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일반 공립학교처럼 지방교육국의 통제를 받지 않아서 교사들은 변화를 위해 최선을 다 했고, 불필요한 행정적 낭비를 줄여 더 많은 교육비가 실질적인 교육활동에 투입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교원노조, 학교의 간부들, 관료주의, 그리고 지방교육국 모두 학교 효율성을 막아온 주적이라는 것이다. 고브 교육부 장관은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흔들림 없이 이 정책을 밀고 가라고 주문까지 한다.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대로 넘어가기 쉬운 주장이다. 이런 논조는 학교에 대해 늘 불만족스럽던 서민들의 일반 정서에도 딱 들어맞는다. 보수언론이 구사하는 대표적인 포퓰리즘이다.
하나씩 탐조등을 비춰본다. 첫째, 학교 성적 문제. <스펙테이터>의 주장대로 아카데미 학교들의 성적은 ‘로켓처럼 치솟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최고의 경영 컨설턴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 의뢰하여 조사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나타난다. 내가 보고서를 읽어본 대로 전하자면 “일부 학교에서 의미 심장한 성적 향상이 있었으나 지역별, 설립 주체별로 격차가 다양하여 일반화하기엔 어렵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였다.
<사진: 시티오브런던 아카데미 학생들에 둘러싸여
환담하는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둘째, 아카데미는 성적에 따라 신입생을 뽑지 않고 근거리 거주 지역을 우선하여 학교 배정을 해준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아카데미 학교 주변의 집값, 또는 주택 임대료 상승이 관찰되고 있다. <스펙테이터>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좋은 학교 배정이 확실시되는 지역의 집값은 시장 가격보다 평균 2만 파운드 정도 웃돈을 주어야 한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애초에 ‘달동네’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신설한 아카데미 근처에 여윳돈을 더 쓸 수 있는 계층이 몰려든다는 것이다. 이런 가정, 즉 아이들의 교육에 열의가 있고 경제력도 웬만큼 괜찮은 집안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학교 전체의 성적이 오를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진다.
셋째, 지방교육국의 교육정책 조정이 지닌 순기능조차 마비된다. 교육에서의 자유는 물론 권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라는 용어에 너무 쉽게 함몰된다. 학습 장애를 가진 학생,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학생, 장기간 결석을 지속해온 학생, 그리고 이렇게 배제되기 쉬운 학생들에 대한 보호 정책을 지역 교육구 내부의 학교들 사이에서 관리하고 조정할 곳이 필요하다. 만약 <스펙테이터>의 주장대로 모든 학교가 지방교육국의 관할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린다면 그 결과 결코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못할 학생들의 문제가 반드시 발생하게 될 것이다.
넷째, 교사들의 직업 안정성과 처우에 관한 문제이다. ‘교육의 질이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은 만국의 공통된 현상이다. 아카데미의 교사 이직률이 일반 학교의 2배를 넘어선다는 보고서를 <스펙테이터>는 간과하고 있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를 통해 효력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교직의 안정성에서 비롯된다. 교원노조의 뒷받침을 받는 교사는 상대적으로 직업에서의 안정성을 가지고 자기 학생들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다섯째 설립 주체의 신뢰성 문제에 대해서 <스펙테이터>는 주목하지 않았다. 일부러 언급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초기 설립 비용의 5~10%만 부담하는 기업체, 대학, 비영리 재단, 종교 단체 등은 정부에 아카데미 ‘스폰서’가 되겠노라 지원 신청을 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체와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불거지고 있다. 일례로 일부 복음주의적 교단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는 수업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기업체가 스폰서인 학교에서는 모회사에서 퇴출된 중견 간부를 학교 측 이사진으로 파견하는 사례를 비롯해 갖가지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런던 지역에 있는 아카데미 일곱 곳을 직접 방문해서 현장을 살폈다. 기대 반 걱정 반의 심경으로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이 정책과 관련된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문제점도 그 과정에서 짚어낸 것이다. 아카데미의 공과가 시행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면 그에 따라 이 정책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취약 지역 교육지원 정책에 많은 시사점이 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영국의 집권 정당이 바뀌었고, 마이클 고브 교육부 장관은 ‘아찔하다’ 싶을 정도의 속도로 아카데미의 수를 늘리기 위해 강경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실제로 고브 장관은 보수당이 집권한 이후 일 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375개 학교에 아카데미 설립 허가를 내주었다. 470개 학교는 현재 설립 준비 절차를 밟고 있다. 이처럼 집권 보수당과 보수 언론이 짬짜미를 해서 이상한 방향으로 교육을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재정 삭감 정책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생존 본능만 가득한 형국이니 아카데미에 대해 이렇다 할 공론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 폭탄 같은 교육정책이 어떤 비극을 낳을 지 전망하니 그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정치가 교육을 바꾸고, 교육이 정치를 바꾼다. 그 역동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만 되뇌는 순진무구한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이 정말 순수한 교육자들인지 아니면 순진함을 가장한 극렬 이익집단인지…… 영악스럽다고 자부하는 나조차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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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