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예전에 플랜비니 어쩌니 하면서 주접떠는 글을 두 개 썼었는데, 이제는 별 가치가 없는 얘기들이 돼 버렸다. 먹고사느라 별로 신경을 못 쓴 사이에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 마당에 플랜비니 따지고 있는 건, 사고 나서 숨 헐떡거리는 사람 눈 앞에 두고 바로 119부를 생각은 안하고 어떤 핸드폰으로 전화해야하나하고 고민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냥 전원켜져 있는 핸드폰 아무거나 집어들고 전화하면 될 것을.
문재인이 요즘 화제다. 문재인의 운명이 그저께 출간이 됐는데, 베스트셀러로 오르고 이인규와 진실공방으로 다투고. 화제다. 나도 샀다. 어제 동네 서점을 지나가다가 샀는데, 오랜만에 봉팔컴에 들리니까 서평단을 모집하고 있더라. 그냥 서평단 신청이나 할 걸.
유시민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10% 초반대에 있던 지지율이 한자리수로 떨어지고 올라갈 생각을 안 한다. 오늘 뉴시스에서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문재인에게 역전된 상태다. 문재인이 손학규에 이어서 3위라니.
이미지가 무섭다. 솔직히 말하자. 문재인은 정말 멋진 사람이다. 남자가 봐도 멋지고, 여자가 봐도 멋지다. 젊을 때 사진을 보니까 쾌남도 그런 쾌남이 없다. 군대는 무려 특전사. 우수한 사법연수원 성적에도 불구하고 운동권 경력 때문에 판사임용에서 탈락하고 노무현과 동업. 노무현이 스스로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노무현의 신뢰도 얻었다. 노무현에게 친구로 인정받은 인물.
그런데, 현실 정치인 문재인은? 고개가 갸웃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치적 컨텐츠가 별로 안 보인다. 문재인은 그에 대해 여러 차례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노무현의 후계자. 유시민을 지지하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이 부분에서 가장 신경이 쓰일 것이다. 문재인이 겹친다. 좋은 일일까 슬픈 일일까.
유시민은 확실한 정치적 컨텐츠가 있다. 스스로 판을 만들고, 판을 주도하고, 정치적인 위기상황에서 노무현을 감싸안고, 국정을 무리없이 수행해 내고. 노무현의 정치적인 신임을 얻었다. 그래서 노무현에게 ‘노무현과의 정치인’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유일한 정치인이 되기도 했다. 노무현에게 정치인으로 인정받은 인물.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그는 외롭다. 그는 정치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그와 함께 정치를 하려는 인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노무현이라는, 지금 많은 사람이 그리워하는 걸출한 인물의 뒤를 놓고 문재인과 유시민이 경합을 벌이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
노무현의 서거 이후, 그를 정치적으로 계승할 인물은 계속 유시민 하나였다. 노무현이 남긴 유산을 많은 이들이 탐냈지만, 누구도 그 유산을 오롯이, 온전히 계승할 수는 없었다. 어떤 이는 자격이 모자랐고, 어떤 이는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유시민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격과 능력이 충분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노무현의 유산이 그에게서 한동안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단단해보였다.
그 유산을 나눠갖기에 적합한 인물이 하나 있긴 했다. 문재인이었다. 원래 그는 그 유산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게 보인다. 유시민의 연이은 정치적 패배, 그로 인한 고립.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노무현의 유산을 조금씩 깎아먹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이제 가시적인 부분에서 문재인이 등장했다. 대선주자에서 유시민을 앞질렀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문재인과 유시민 중 누가 더 정치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내 답은 유시민이다. 나는 아직도 그에게 적합한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냉정하게 생각하자. 문재인은 유시민에게 위협적인 존재인가 아닌가? 나는 단기적으로는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가 가져간 지지율이 돌아올 것인가? 아마 단기적으로는 돌아오기 힘들 것이다.
지금 유시민을 지지하다가 문재인으로 돌아선 그 마음들의 주인은 ‘노무현의 후계자로 적합한 인물은 누구인가’에 대한 정답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다. 김해 선거 과정에서 유시민에게 실망한 사람들일 것이다. ‘유시민은 갈등을 일으킬 뿐이다’ 이렇게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나는 참여당의 위기의 원인 중 하나를 친노로부터의 고립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지금 참여당이 유시민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상, 그 타격은 고스란히 유시민의 것이다. 그리고 그 타격에 힘입어 문재인이 부상하고 있다. 노무현의 유산이 이대로 사라져버려서는 안된다는 친노들의 위기감, 민주당에 존재하는, 유시민을 찍어누르려고 발악하는 정치인들의 욕구.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문재인을 점점 부상시키고 있다.
그래서 참여당의 독자노선은 위험하다. 독자노선 안에서 유시민은 ‘노무현의 후계자’라는 프레임에 갖혀 ‘계승할 능력이 없는 자’로 낙인이 찍힌 채 시들어갈 수밖에 없다. 유시민이 시들어버린 참여당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유시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노무현의 후계자라는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친노정당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참여당은 그 프레임을 벗겨줄 수 없다.
결국은 대중적 진보정당의 품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사회주의자, 주사파, 진보주의자, 온건좌파, 맑시스트 수많은 이들과 싸워야 한다. 거기서 죽을 가능성은 있겠지만, 하나씩 이들을 이겨나가면 이기는 만큼 명성을 얻고, 유시민만의 컨텐츠가 생긴다. 더불어 유시민이 노무현의 이름없이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정치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유시민이 노무현을 마음속에서 거두지 않는 이상, 그 컨텐츠는 오롯이 노무현의 확장이 될 것이다.
문재인 이야기를 해보자. 앞서도 말했지만, 문재인은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좋은 정치를 한다는 보장은 없다. 착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지는 않듯이 말이다. 지금 그에게 지워진 어떤 굴레를 본다면 그는 아마 조금씩 현실정치 안으로 발을 내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는 유시민과 주로 경합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가 현명하게, 좋은 판단을 하길 바란다. 정치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항상 지켜왔던 그가, 노무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잊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정정당당하게 나서길 바란다.
그리고 그가 그런 방식으로 유시민을 능가하는 좋은 정치인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를 놓고 봤을 때 참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약간 불안한 면은 있다. 지금 문재인의 발걸음은 민주당으로 향하는 것 같다. 민주당 중심의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
정당 내부에서 경합을 벌인 적이 없는 그가, 정치적 컨텐츠가 미약한 그가, 이미지만으로 부상해서 유시민을 찍어누른다면, 아마 그는 길지 않은 시간에 용도폐기처분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로지 유시민의 대항마로만 그가 활용이 된다면, 그건 정말 비극이다. 그건 노무현의 소멸과 마찬가지다. 제발 그 길만은 가지 말라.
한 가지. 유시민 지지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문재인이 부상한다고 해서, 흥분하지는 말자. 본의 아니게 그가 유시민에게 상처를 입힌다고 해서 그에게 날을 세우지 말자. 문재인과 유시민이 경쟁을 한다고 하면, 노무현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하지만 난, 유시민을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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