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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꽃‧양이라는 다큐 기억해? 한 때 착한 이들 사이에선 이거 안보면 착한 이로 낙점 못받았지. 우루루 같이 봤는데 옆에 애들은 막 울고불고 하더라고. 솔직히 난 그저 그랬어. 저 다큐를 보고 울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이들이 조금 부러웠다고나 할까.
98년 외환위기 직후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는 구조조정에 맞서 총파업에 돌입했어. 그 2년 전인 96년 김영삼 정부의 결정적 몰락을 가져온 날치기 통과 법안 중 노동법 30조에 ‘경영상 위기에 의한 해고’ 규정이 있었거든. 외환위기 이후 현대자동차 사측이 한나라당이 만든 이 편리한 칼날을 처음 뽑으려 했지.
노조와 사측은 결국 식당 아줌마 300여명의 정리해고에 동의하면서 노동자들은 살아남았어. 사측은 상당한 손실에도 정리해고를 단행했다는 실리?를, 노조측도 노조원 해고를 막았다는 전리품을 얻었다. 그 식당 아줌마들 이야기가 '밥, 꽃, 양' 이라는 다큐로 만들어 졌어.
사실 노조가 곧 식당을 인수해 운영을 했으니 실질적으로 해고당한 사람은 없었어.(당연하지.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냐) 아줌마들의 근로조건이나 임금도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후문을 들었어.(확인은 안해봤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들이 ‘밥.꽃.양’은 잘 기억하는데 당시 울산 상황을 이상할 정도로 기억 못해. 울산은 말 그대로 매일매일 전쟁터였지. 모든 진보진영 총동력이 울산에 집결 했고 정부도 수만여 명의 전경을 보내 두달여 간 전쟁을 치뤘어.(기간은 정확히 모르겠다) 지금 그 영상 찾아보면 정말 경악할 거야. 하루에도 수십 명씩 병원에 실려 가고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앞이 안보였지. 그런데 그 결과가 앞에 말했듯 저래. 아무도 해고되지 않았다. 그 전과 똑같다. 좀 허무하지.
투쟁으로 얻은 성과인데 왜 허무할까?
사실 당시 사측도 그리 무리하게 구조조정 할 의지가 없었어. 일단 그럴 이유가 없었지. 빵삼이와 한나라당의 대삽질 덕분에 환율 졸라게 올라서 수출 경쟁력 빵빵했졌지. 행복한 비명 막 지르고 있는데 무슨 얼어 죽을 구조조정이냐. 노조 측도 그렇게 극렬히 저항할 생각은 없었D. 사측의 속내를 알았거든.(나중에 노조가 무슨 돈으로 식당을 인수하겠어. 사측과 합의를 한 거지, 막말로 노난거야!)
참 이상하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대리전이 그래서 참 무섭다는 거야.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사용자 단체 측은, 이 ㅅㅂ 그냥 재벌집단이라 하자. 현대자동차가 ‘경영상 위기에 의한 정리해고’란 이 칼날을 최초로 쓰길 바랬어. 노조 측도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이를 막고자 현자 노조를 최전선의 보루로 임명한거야.(이거 적절한 비교는 아니지만 6.25전쟁 보는 것 같지 않냐.) 대리전 되니깐 어어~ 하다 서로 별릴없이 박 터지게 싸우다 사실상 원점에서 합의한 거지.
내가 보기엔 한진이 마치 당시 대리전 양상으로 가고 있다는 거야. 한진 노조가 산별 노조에 권한을 위임했으니 노조위원장의 합의가 효력이 없다고 법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 그러나 사실상 합의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일하고 있는 노조원들한테 물어봐봐.) 우리 진영이 고공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을 상징으로 이 싸움을 글로벌 비즈니스(신자유주의란 말 쓰기 싫어)와 전쟁을 치루듯 끌고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신난 이들도 있겠지. 조합주의적 관점이 아닌 엄청난 구조와 싸우고 있으니깐.
글로벌 비즈니스에 얽힌 문제는 내가 아는 한 최고의 난제다. 한 정부나 정치권이, 또 어떤 진영 차원에서 결코 해결할 수 없어. 한진에서 일어난 문제는 실제로 너무나 많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고, 더 중요한 것은 한진에서 이긴다고 다른 지역에서도 이길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란 점이야. 결국 고용 문제는 성장 동력을 올릴 수 있는 산업구조 개편이나 또 다른 창출로 해결해야지 한 단위노조 투쟁 현장에서 해결할 수 없겠지.
밥‧꽃‧양 이야기를 왜 꺼냈냐 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에 먼저 반응하잖아. 그래서 분노하고 열정을 바치고. 정말 너무 당연하지. 사람은 원래 그래. 그런데 너무 중요한 문제를 놓치는 경우가 많어. 그게 걸리는 거야. 김진숙이 고공농성 하는 과정도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일종의 다큐야. 아니라고 말 못할 껄.
이제 대리전이 된 만큼 한진 사측은 더더욱 해고철회 못할 거야.(원래부터 할 생각 없었지만) 굳이 사측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이유는 조 씨 일가한테 압박 넣는다고 해결 안돼. 지들도 어떻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 출구 찾기도 힘들 거야. 무엇보다 난 한진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진짜 그래. 법적은 물론 도의적으로 우리 진영이 다 달려들만큼 정말 잘못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 씨를 국정조사장에 불러 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
감성으로 싸울 수도 있지. 그러나 진영 전체가 올인하는 정치투쟁은 무조건 이겨야 해. 안 그렇냐. 그런데 가능성 없는 싸움을 하고 있어. 말렸다는 느낌! 더구나 ‘대리전’으로 치달으며 정작 해고 노동자들에게도 별 도움을 줄 수도 없어.
유성기업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겠지. 이길 수 있고 또 싸워야만 해. 그 미친 경영진들 바로 구속감이다. 그것은 너무나 명확한 진실이자 수많은 증거들이 있지. 김진숙 보다 더 아프고 더 서러운 진실이 거기에 있어. 그런데 왜 다들 다큐에만 집중 하고 있지? 하여 문제를 제기해본 거야.
솔직히 난 이기는데만 신경 써. 그래서 편협하고 비겁해. 그래도 어쩔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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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