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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수와 진보’, ‘상식과 비상식’에 대한 여러 말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글이 있어 다시 찾아봤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에세이《침묵하는 소수(Silent
Minority)》에 소개된 글인데,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나나미가 일본 정치의
‘혁신과 보수’ 담론을 보며 언급한 내용이다. 80년대 중반, 일본에서 나온 책이며, 중역(이탈리아어->일본어->한국어)되었고,제 1차 대전 뒤 각종 선언이 울려펴지던 무솔리니 시절의 현역 언론인이 노장이 되어 70년대에 쓴 글 임을 감안하고 보시라.
<참된 보수주의자> - 참된 보수주의자는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또 인식은 경시하지 않으나, 그것이 원칙을 동반하지 않을 경우는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후퇴도 마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때때로
일단 후퇴한 후에 전진하는 편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참된 보수주의자란 우선 흔한 보수반동이나 전통주의자나 회고주의자와
구별되어야 한다. 보수주의자는 보편적인 원칙의 영향에서 피할 수 없다고 하지만, 새로운 과제에는 새로운 대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실패한 경험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과거를, 즉 역사를 경시하지 않는다.
- 참된 보수주의자는 자신이 ‘내일의 인간’은 되지 못해도, ‘모레의 인간’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내일의 인간이 실패로 끝난 후에야 비로소 이해되는 것이 모레의
인간이다.
- 보수주의자는 새로운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편들고 일어서는 무지함에 가담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 참된 보수파는 원래부터 추상적인 사고를 싫어하는 자요,
경험에 의하지 않은 이론 일변도를 즐기지 않고, 평생 찰나주의와 무관한 사람이 많다.
- 보수주의자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사회의 제요소는 사유재산,가족,국가,종교이다.
- 참된 보수주의자는 무엇보다 책임감을 중시한다.
- 보수주의자는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환경개선을 위한 노력은 본질적으로 어느 시대나 다름없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니 이런 종류의
개혁은 그런 하나하나를 모아 강한 인내심으로 밀고나갈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 보수주의자라 해도 정치상의 변혁에는 무관심하지 않다.
단지 그 변혁이 신중하고 올바르게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듯 행해지도록 바랄 뿐이다.
- 보수주의자는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빈곤과 문맹과 기아를 추방하기
위해서는 조금씩 끈기 있게 한 나라씩 손을 써나가야 할 과제라 여기고 있다.
- 참된 보수는 언젠가 반드시 혁신이 보수화하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 보수주의자는 일부 사람들의 빈곤과 실패가 언제나 사회조직의 결함으로
인해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개선은 장애를 짊어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제도, 말하자면 패자부활전과도 같은 제도로 해결하는 편이 사회조직의 전반적인 개선보다도 유효하다는 사실에
눈뜨고 있다.
- 보수주의자는 장기간에 걸쳐 사회에서 통용되어온 제도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장기간 유지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 보수주의자는 등장하자마자 당장 대중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는 신인을
신용하지 않는다.
- 보수주의자는 공동체의 중요한 목표가 그 구성원들의 관습이나 풍속의
특성을 지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는 민속이나 종교 또한 지켜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구성원 개개인의 힘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끌어 공동체 전체의 힘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 참된 보수주의자가 한 조직이나 제도의 개혁이나 변혁에 신중한 것은
사회의 쳇바퀴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기능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 참된 보수는 개혁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은 개혁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있다.
- 보수주의자는 공동체의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서는 우수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건강한 자와 아픈 자, 적극적인 사람과 소극적인 사람 등을
같이하지 않고 분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 있다.
- 건강,연령,성별,외모,교육,재능,힘 그리고 용기, 더욱이 의지력이나 정직함,
그외의 어떤 면으로도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고 보수주의자는 믿고 있다. 운명조차도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는 머지않아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과로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참된 보수주의자는 국가권력이 비대해지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국가는 모든 사람을 관리하려는 사태는 그것이 복지라 할지라도 흐뭇하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귀착되는 곳은 비능률이라는 단 한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 참된 보수주의자라면 소수에 의한 부의 과도한 집중도,
다수의 과도한 빈곤도 모두 사회적인 위기로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부자와
과도한 빈자를 억제하여 사회를 조화롭게 이끌어, 보다 폭넓게 중간층을 육성하고 보호하는 것을 중시할 것이다.
- 보수주의자는 개개인이 속으로 가진 욕망이나 보다 좋은 지위와 환경에
대한 욕망을 국가가 행하는 안이한 대책보다 신뢰하고 있다.
- 참된 보수주의자는 개인의 자유가 발명이나 진보나 발견의 소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또한 약자에 대해서는 잔혹한 결과를 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가 언제 유해한 것으로 돌변하는지를 알려주는 시계는 그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권리’로서가 아니라 ‘의무’로 생각함으로써 그 시기를 예측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 보수주의자가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인정하더라도 역사가 같은 형태로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그 누구라도 자기의 한계를 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로부터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들이 미리 알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갖가지 예를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혁신주의자는 역사는 자기들이 창조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으므로
역사를 경시한다.
- 보수주의자는 관료제도의 팽창, 자국의 방위를 다른 나라에 의뢰하는 것, 장기간에 걸친 무거운 세금, 평가에 인색한 것 등은 언제나 사회가 쇠퇴해가는 전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민족 독립의
마지막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 참된 보수주의자라면 부가 재능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과 그렇다고
빈곤이 장점이 되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좋은 사회는 어차피 보다 적극적인 자,
정직한 자, 지혜로운 자, 재능이 있는 자가
지도적인 지위에 임할 수 있는 사회라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 보수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가 인간 일반에 대해
비관주의자다. 인간은 모두 태어날 때에는 선인이요, 악인은 사회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선인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평생 선인일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선인인 채로 있을 수 있다는 것, 바꿔 말하자면 악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은 그 개인의
어떤 작은 노력에 의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참된 보수주의자는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의무의 관념도 그리고
인간적인 것을 존중해주는 마음도 소수인만이 가지는 ‘덕성’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 보수주의자는 소수인에 의한 지배, 다수인에 의한 지배, 그 어느 쪽에도 약간의 의혹을 느끼고 있다.
-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의 마을이나 도시의 정치에는 대개
어느 정도까지는 상당히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 경우, 가까운
시점에서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나 특별시 규모가 되면 ‘일개 시민의 시점’만으로는 이제 충분하지 못하다. 더욱이
국가 범위의 정치가 되면 완전히 일반인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나, 대개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개 시읍촌에 대한 판단과 같은 시점으로 종종 한 나라의 외교까지도 즉석에서 판단해버리기 때문이다.
정치의 전문가는 일개 시민의 시점과 통치자의 시점, 쌍방을 가지고 그것을 경우에
따라 균형을 유지해가며 쓸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참된 보수주의자는 국가의 정치외교를 이러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갖지 않은 정치가는 언제나 존재한다 아니 수적으로 이쪽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보수주의자는 보통선거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 보수주의자는 외교 숭배나 이국 취미를 배제한다. 이러한 경향이야말로 국민이 퇴폐하는 조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련이나 중국의 지배자들도
이 의견에는 완전히 동조해 주리라.
- 보수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언론의 자유는 절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단지 이런 자유를 쓴다는
것은 언제나 사회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도 믿고 있다.
- 보수주의자도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엄성이 사회 생활의 활력을 낳는
귀중한 ‘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권리’라기 보다는 국가로부터 하사받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 참된 보수주의자는 인간이 고안해낸 모든 제도가 완벽은커녕 불완전투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완전무결한 제도는 조물주조차도 만들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만큼 ‘없는 것보다 낫다’라는 관점이
의외로 진보에 공헌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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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유럽에서 나온 보수주의자 선언이지만,
고개 끄덕이게 되는 부분도 많이 있을 것이다. 지금 유럽의 보수우파 정치세력이 사고하는
틀이라 할 수 있다.
이 <보수주의자 선언(Manifesto
dei conservatori)>은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인 주세페 프레치올리니(Giuseppe
Prezzolini,1882-1982)가 쓴 글인데, 프레치올리니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일었던
보수혁명운동의 주역이었다.
보수혁명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수구세력과 선을
그은 지식인,중산층들이 찾아 나선 제 3의 길이었으나 개인의 자유 같은
서구 근대주의 보다는 보편성에 중심을 두면서 결국 파시즘으로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위 글의 저자를 중심으로
이 ‘보수’적이며 ‘혁명’적인 정치흐름이 있었으나, 나중에는 무솔리니도 이 보수혁명의 지지자였다고 하니 말이다.
한국사회에서 개혁은 진보만이 아니라 보수혁명의 힘과 함께 해야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보수혁명을 일으키자는 말이 아니다. 만약 위 글과 같은 ‘참된 보수주의’의 흐름이 생긴다면, ‘상식’을 갖춘 사람들끼리 때로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고, 때로는 서로 견제하며 혁신을 내올 수
있다. 좌파진보와 수구 반동의 양극에서 삐걱거려왔던 우리 사회의 고민축이 조금씩 조금씩 그 진폭을 좁혀가는
조짐이 보이고, 보다 많은 사람의 소망을 담아내려는 흐름으로 가는 것 같아서, 나는 요즘 설렌다.
그러나 보수가 수구반동과 결별하고 ‘보수혁명’또는 ‘제3의 길’을 가더라도, 그것을 견제할 만한 진보의 힘이 넉넉하지 않다면, 보수는 언제고 다시 수구와 손잡을 수 있다. 민자당이 탄생했을 때처럼.
우리는 묵묵히, 많은 사람과 함께 하는 진보의
힘을 키우는데 힘쓰고, 그 진보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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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