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수학이라는 상표가 있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누가 지어냈는지 참 잘 지어냈다는 느낌이 드는 말이다. 교사가 높은 자리에 우뚝서서 학생을 가르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눈높이로 내려가서 지도하겠다는. 좋은 아이디어다.
그런데 2011년 9월 말, 한국의 상당수 정치집단들은 대중을 이끄는 리더가 아니라 리드를 당하고 있는 판국에 몰렸다. 눈높이 수학의 주체들이 바뀐 셈이다. 이제는 정치적인 리더들이 대중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 전형적인 국면이 민노당 당대회에서 명확히 노출되고 말았다. 민노당의 권, 강, 천, 김으로 대표되는 수구보수들이 진보대중의 간절한 열망을 무시하고 진보대통합을 거부함으로써 이 나라의 진보진영들이 극보수와 보수를 대표하는 한나라와 민주가 지배하는 완강한 정치적 틀을 깨고 모처럼 집권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했는데 민노수구보수들이 그 타이밍을 엇나가게 해버렸다. 통탄할 일이다.
학생들의 눈높이가 아주 높아서 스스로 주체적으로 공부하게 해줘도 좋은 교실에서 눈높이가 아주 낮은 교사가 교실에서 밀려날까 두려워 양아치처럼 깽판을 치면서 학생들을 짓눌러버린 셈이다.
# 뭐가 진보고 뭐가 보수야?
권, 강, 천, 김, 심, 노, 조가 진보라구?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도대체 진보라는 게 뭔데? 말 그대로 발전지향적, 미래지향적이고, 현상을 고수하려하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성향을 말하는 거잖아?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어? 이른바 화석화한 진보, 진보의 탈을 쓴 보수의 전형적인 행동양식을 보여주고 있잖아.
그것도 사실 순수하게 보수적 원칙론들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즈들이 차지해왔던, 근래 들어 이정희가 빼앗아간 것 같은 제 밥 그릇을 차지하기 위해 말뿐인 진보의 원칙들, 열사들의 이름까지 팔아먹어가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잖아.
그렇게 과거에 집착하고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기 위해 민노당 다수 대중의 열망까지도 무지르며 낡고 상투적인 조직논리, 진영논리를 앞세워 옛 영화를 탈환하려고 광분하는 이들이 어떻게 진보가 돼?
나라 전체가 이렇게 어려워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돌파구가 마련되었으면 하고 열망하는 대중들이 진보지. 미래 지향적이잖아.
그러기에 당대회가 끝난 뒤 민노당 평당원들의 엄청난 분노에 놀라 그것들이 미래지향적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잖아. 그 수구보수들이 무슨 대안이 있겠어. 기껏해야 노심조 끌어들여 도로민노당 하자는 거밖에 더 있겠어. 그걸로는 군색하니 그밖의 진보라는 이름의 보수아류들을 끌어들여 진보통합 모양새나 내자는 거겠지.
과거 현실사회주의자들이 패배한 것은 그들이 휴머니즘을 본바탕으로 하는 본래의 사회주의의 원뜻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반휴머니즘적 집단조직을 바탕으로 한 전체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외부를 향해서만 혁명을 부르짖었을 뿐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혁명도 하지 않았기에 형편없이 썩어버렸고, 그 때문에 대표적인 수구꼴통들이 되어 몰락해버렸다. 지금의 권강천노심조도 역시 그런 길을 걷고 있다.
# 진보대중의 미래
사람들은 안철수, 박원순 현상을 다양하게 바라보고 평가하지만, 나는 이것을 눈높이가 높은 대중들이 이른바 정치적 리더들이라고 하는, 눈높이가 아주 낮은 상당수 기존 정치인들을 옆으로 밀쳐내버린 현상이라고 본다.
그들은 생존의 기로에 내몰린 진보대중들의 열망을 도저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시대의 흐름이 한참 바뀌고 너무나 살벌해진 세계조류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대중들의 눈 밖에 났다. 이명박은 물론이요 한나라도, 민주당의 상당수도,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상당수도 다 그렇다.
그러니 눈높이 대중들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이미 있는 정치인들은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는데.
이제는 대중이 정치인들에게 휘둘리는 게 아니라 대중이 주체적으로 정치판을 새로이 짤 때가 왔다. 대중이 스스로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의 흐름을 주도할 때가 온 것이다. 선생이라고 쓸 만 한 것들이 어디 있어야 말이지.
나는 민노당의 35%가 아니라 65%를, 유시민과 참여당을, 그리고 기존의 과거지향적인 수구보수 정치인들이 아니라 진보대중만큼 눈높이가 높은 미래지향적인 정치인들을 주목한다. 대중을 계도하겠다고 섣부르게 나서는 이들이 아니라 대중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정치인들을.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