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미국 경제학의 대표적인 두 조류가 있었으니 하나는 바닷물파saltwater고 하나는 민물파freshwater였다. 전자는 1930년대의 대공황에 대한 처방으로 나온 케인즈 이론을 주요축으로 하는 동서 해안지역 경제학자들이었고, 후자는 시장만능을 부르짖는 5대호 유역의 시카고 학파였다. 영어로는 전자를 liberal economists 라고 하고 후자는 libertarian economists라고 한다.
대공황이 바로 경제적 양극화와 금융자본의 전횡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1930년대의 정치경제의 주요 흐름은 금융자본이 전횡을 부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상업은행이 투자은행의 기능을 겸하지 못하게 제한하고 정부가 시장에 많은 관여를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때 상업은행이 투자은행의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대표적인 법이 글래스스티걸법이었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대공황의 참화에서 벗어나 5-60년대의 황금기를 누린 뒤 1970년대 이후부터 자유시장 편향의 이론이 득세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조류는 레이건과 부시,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지면서 미국의 지배세력들은 대공황 때 쓰라리게 겪었던 교훈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시 시장만능 이데올로기를 신봉했으며, 이런 조류는 동서냉전의 종식을 틈타 미국을 넘어 전세계 경제를 지배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 조류다.
바로 이런 경제적 조류 때문에 정부재정은 축소되고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은 감면되고 무역장벽과 금융장벽은 철폐되었다(어느 분단 국가 대통령과 그 경제 똘마니들의 경제정책과 아주 많이 닮아 보이지 않는가?). 말하자면 전세계 시장이 자유화되고 이에 대한 각국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되었다. 그런 조류가 낳은 파국적인 결과가 다들 잘 알고 있는 전세계적인 버블 경제고, 2008년의 금융위기였다.
내가 다들 잘 알고 있는 이런 얘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단 하나, 맨 위에서 이야기한 <liberal>과 <libertarian>의 중대한 차이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전자는 우리 말로 <진보적>으로 옮길 수 있고 후자는 <자유주의적(혹은 보수적)>으로 옮길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모든 걸 시장 기능에 맡기고 정부는 일절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시장만큼 지혜로운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금융산업 역시 최대한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시장에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했다간 다시 대자본의 전횡이 되풀이되고 자본 집적을 통한 소득 양극화 현상이 조성되기에 시장에 일정한 제한을 가해야 하고 정부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많은 관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도 단단히 고삐를 죄어야 하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 땅의 이른바 진보 혹은 아가리 진보라고 하는 자들은 툭하면 노무현과 유시민을 신자유주의자들이라고 불러왔다. 이번에 참여당과 민노당의 진보통합을 가로막은 자들 역시 유시민과 참여당을 신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불러왔다.
그렇다면 과연 노무현과 유시민, 참여당 사람들이 시카고 학파들처럼 시장에 모든 기능을 맡기자고 주장해왔는가? 대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은 깎아주고 정부의 시장개입은 최소화하고 복지 예산같은 건 사정없이 깍아버리고 금융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방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가? 그들은 Libertarian한 사람들인가? 민물들인가?
당연히 아니지. 그들은 Liberalist들이었다. 진보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기업과 대자본이 독판치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대자본과 독점재벌기업들의 전횡을 제어하려고 애써왔고, 정부재정을 확충해서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애써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들에서 줄기차게 확대되어온 복지예산이었다. 노무현집권 말기에 이르면 우리의 복지재정 규모는 정부 예산의 30퍼센트 가까이 확대되었을 정도였다. 유시민은 노무현의 그런 뜻을 충실히 반영해서 그런 흐름을 주도해온 인물이었고.
그런데 어떻게 노무현, 유시민을 신자유주의자요, 시장자유론자라고 매도할 수 있는가? 노무현이 한미FTA를 추진했으니 신자유주의자라고?
천치 같으니. 그것은 노무현 정권이 그 당시 어떤 고민을 갖고서 주어진 경제 현실 내에서 어떤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는가를 조금만 살펴보면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그에 관한 논의는 생략한다.
노무현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한 말은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나는 이 당시 정부권력이 대자본이 마음대로 활개칠 수 있게 하자는 시장만능 세력, 경제적 이익 독점 세력, 기득권 세력의 전횡을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옳다고 여긴다. 앞으로 차기 집권세력, 뒷세대들이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엄청나게 힘겨운 싸움을 치러야 할 것이라는, 일종의 숙제 같은 것을 제시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고.
libertarian과 liberal은 말만 들으면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둘의 간격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멀다. 그런데도 스탈린의 하수인들이나 홍위병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땅의 보수반동적인, 이름뿐인 진보, 아가리진보들은 이렇게 비슷하게 느껴지는 두 용어를 의도적으로 엉뚱하게 해석해서 노무현, 유시민을 신자유주의자들이라고 매도해왔다.
다시 말하거니와 유시민과 참여당은 엄연한 진보세력이다. 아가리 진보들도 이미 사문화된 사회주의 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의회민주주의 한계 내에서 집권을 기도하는 세력이라고 한다면 혁명적, 혹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집권을 꾀하는 세력들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나 유시민이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의회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의 범주 내에서 정치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유시민과 참여당 역시 그들 못지 않게 진보적인 세력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마치 진보 이념의 독점권을 가진 것처럼 행세하면서 참여당은 신자유주의 세력이니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고 매도하는 것은 한나라당 것들의 독선적인 작태, 진실을 왜곡하는 작태와 하등 다를 바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진보대통합의 대승적 진로는 아직도 엄연히 열려 있다. 이러한 통합을 열망하는 이들은 어떤 경로,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강구해서라도 진보를 가장한 수구보수들을 포함한 온갖 쓰레기들을 서둘러 치워버리고 힘차게 앞으로 나가야 한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