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경찰청장이 25일 총을 포함한 모든 장비를 적극 사용해 조폭과의 전쟁을 벌일 것을 선포한 가운데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 청장의 이번 발언은 지난 21일 인천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조직폭력배들의 유혈 사태를 막지 못한 것과 관련해 강도 높은 수위의 ‘조폭 관리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선 경관들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데다 정당·인권단체 등도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26일 <한겨레>에 따르면 조 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조폭에게 인권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폭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총을 비롯해 모든 장비‧장구를 적극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찰이 조폭이 두려워 꽁무니를 빼면 (그게) 경찰이냐, 총은 뭐하러 들고 다니냐”며 “조폭이 폭력을 행사하는데 (현장에서) 총기라도 과감히 사용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양동열 전 경사는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총기를 사용했을 때 의무와 책임 문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번 방침이) 현장과 동떨어진 것”이라 지적하며 “일선 경찰들이 총기 사용에 아주 소극적인 조직 문화가 있다”고 밝혔다.
양 전 경사는 “될 수 있으면 (총기를) 안 쓰는 것이 경찰 조직 문화의 통설”이라며 “우리나라 경찰이 약 10만 명인데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경감 이상의 계급은 약 10%에 불과하고 그분들 대부분은 현장 경험이 거의 제로상태”라고 실제 현실을 짚었다.
이어 “조 청장께서 이번에 조폭들의 칼부림 과정에서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 대해 ‘두렵다고 뒤꽁무니를 빼면 경찰이냐. 총은 뭐하러 들고 다니느냐’며 추궁했다고 들었다”며 “제가 알기로 조 청장은 외무고시 출신으로 중견간부인 과장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범죄 발생 현장경험이 거의 없다. 범죄의 현장을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 김유정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행태는 부하들을 희생양 삼아 경찰청장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강정마을과 한진중공업에는 그토록 강경했던 대응이 조폭들에게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라고 맹비난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넋 놓고 싸움 구경만 했으면서 청장이 자신의 과오는 뒤로한 채 ‘총기사용 불사’를 외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며 “총기사용 불사 발언은 경찰의 부적절한 대응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질타를 피해가려는 꼼수”라고 규정했다.
이어 “총기사용 매뉴얼도 없는 마당에 국민의 안전은 아랑곳 하지 않고 총을 마구 쏘라는 것인가”라 되물으며 “이는 명백히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이고 인권침해이다. 또한 일선경찰의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탁상행정이자 경찰청장의 무지의 소치”라고 규탄했다.
또 “이래놓고도 장관급 대우 운운하고 총쏘기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조 청장은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노동당 신창현 부대변인도 “조직폭력배를 소탕하겠다는 조 청장을 말릴 이유가 없지만 조직폭력배 소탕을 위해 총기사용을 지시한 것은 경솔한 행동이다”며 “특히 조 청장의 인권에 대한 입장은 매우 극단적이어서 경찰의 총수로서 자격도 의심스럽다”고 논평했다.
신 부대변인은 “민생치안은 뒷전으로 시국치안에만 골몰하던 조 청장이 강력 범죄로 국민의 불안이 커지자 일선 경찰에만 책임을 돌리며 총기사용을 독려하는 것은 오히려 사기만 떨어뜨릴 뿐”이라며 “범죄예방은 외면하고 감정적인 처방에만 매몰된다면 총기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훨씬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조 청장은 경찰 수뇌부의 민생치안 소홀을 반성하고 이제라도 민중이 지팡이로 돌아가 건강한 사회기풍을 세우는데 전력하길 바란다”고 꾸짖었다.
국민참여당 이종웅 상임 부대변인 역시 구두논평으로 “조 청장은 노무현 대통령 관련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사과는커녕 도리어 이번 조치로 자기 직무를 편안하게 수행할 방법을 꾀하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직을 수행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고 맹비난했다.
이 부대변인은 “어떤 경우든 사회를 유지하는 방법이 헌법적 권리를 앞설 수 없다”며 “법과 인권의 기준도 모르면서 청장의 자리에 앉아 초법적인 무력사용에 의존하겠다는 것은 우리 시민을 더 위협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조 청장을 즉각 경질해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인권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조폭들이 총기를 두려워하지도 않을 뿐더러 인명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총기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최후에 쓸 수 있는 수단”이라며 “모기 잡으려고 칼 빼드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임 소장은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경찰이 현장에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시국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민생 치안에는 이미 가진 인력이나 장비를 활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편 조 청장이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이번을 포함해서 올해만 벌써 3번째로 알려져 논란을 가열시키고 있다.
조 청장은 지난 5월 전국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서울 관악경찰서 난우파출소에 취객이 들어와 흉기를 휘두르는데도 팀장인 경찰관은 밖으로 나가고 다른 경찰관은 맨손으로 맞서다 부상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총기를 적극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8월 기자간담회에서는 경찰이 제작 중인 총기 사용 매뉴얼이 논란이 되자 “차라리 권총을 던져서 범인을 잡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총기를 사용하는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야 시민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조 청장을 거세게 질타하고 있다. 트위터에는 “총 되게 좋아하네... 국민들에게도 한 자루씩 지급하려고?”, “국민들 신뢰 잃는 정도가 아닌 저항의 대상으로 화해버림은 물론 조직내부의 신뢰마저 땅에 떨어지고...”, “조폭은 누구인가 정의하라”, “국민들 불안감 조성하는 위정자들은?”, “조현오는 선량한 시위대만 상대해서 조직폭력배는 상대한 적이 없나봅니다” 등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끝)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