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성향 유권자들의 큰 기대를 모았던 '진보통합 추진 선언'은 13일 열린 '전국 노동자 대회'에서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날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는 전태일 열사 41주기를 맞아 '전국 노동자 대회'가 열렸다. 행사는 한미FTA와 진보통합 문제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참석한 인원만 주최측 추산 4만명, 경찰 추산 2만명에 다다를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이날 어떤 형태로든지 언급될 것으로 예상됐던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에서 탈당한 새진보 통합연대 간의 진보통합 추진 선언은 나오지 않았다.
민노당과 참여당, 통합연대는 지난 10일 밤 마라톤 회의 끝에 진보통합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1년을 넘게 끌어온 지리한 줄다리기 끝에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의 탄생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통합정당은 3명의 공동대표 체제로 꾸리되 필요한 경우 외부인사를 수혈해 공동대표를 추가로 선임할 수 있게 했다. 대의기구 구성에서는 민주노동당 55%, 참여당 30%, 통합연대 15%로 나누고, 시‧도당 운영은 자율협의를 통해 하기로 했다. 또 비례대표의 30%는 외부에 개방하기로 했으며 총선 후보는 합의를 우선으로 하되, 합의되지 않으면 경선을 실시해 선출하기로 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은 자체 지도부 회의를 열어 실무협상에서 마련된 이러한 내용의 협상안을 승인하기로 입장을 정했고, 이에 따라 통합의 세 주체는 전태일 열사의 41주기를 맞은 전국 노동자 대회에서 통합정당 건설을 공식 선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통합연대 측에서 협상안 중 일부 내용의 수정이 필요하다며 추가 협상을 요구하며 상황은 급변했다. <연합뉴스>의 13일 보도에 의하면 통합연대는 갑작스레 내년 총선 지역구 공천 때 후보 조정이 안된 지역에 대해 경선을 치르는 대신 대표단 결정으로 후보를 정하고, 사실상 전략공천인 비례대표 개방형 명부의 비율을 30%에서 50%로 확대하자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민노당은 추가 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통합연대가 기존 협상안을 받을지 말지만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맞섰다. 통합연대가 이 협상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참여당과 양자통합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 대회 전 있었던 민노당 이정희 대표와 통합연대 심상정 임시대표의 비공개 회동이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통합연대의 고집이 결실을 목전에 둔 것으로 보였던 진보통합의 전망을 다시 한 번 어렵게 만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행사장에 참석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침통한 모습으로 통합연대의 '노심조'를 향해 이것 저것을 물었으며, 노심조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듯이 보였다. 이정희 대표는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특히 이 대표는 참석한 백기완 선생의 왼 편에 앉았다가 관계자의 권유로 못이긴 척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의 옆에 앉아 눈길을 끌었다.
불편한 심기를 반영한 듯 백기완 선생의 왼 편에 앉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 박봉팔닷컴
주위의 권유로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의 옆으로 자리를 옮긴 이정희 대표. 이 대표는 이날 행사에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주노동당의 강경한 모습이 심상치 않다며 통합연대까지 포함된 3자 통합은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통합연대가 총선 공천을 두고 딴지를 건 것은 울산 북구를 지역구로 둔 조승수 전 진보신당 대표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조 전 대표가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과 북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데, 진보신당 대표 시절 진보통합을 부결시켜 미운털이 박힌 전과가 있고 정당이 아닌 단체로 참여하는 만큼 경선을 치를 경우 불리한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풀이다.
한편 국민참여당은 민노당과 통합연대가 기존의 안이든 새로운 안이든 합의를 볼 경우 무엇이든 수용한다는 대승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으나, 하루 이틀 내에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양 측의 중재를 이끌어 낸다는 복안이다. 내달 13일 있을 총선 예비후보 등록 이전에 진보통합당을 출범시키기엔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더 지체되어서는 곤란하다는 판단이다.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진보통합의 세 주체 중 유일하게 마이크를 잡은 이정희 대표는 연설에서 "이제는 이겨야 할 때"라며 "내년 봄 큰 싸움을 앞두고 한미FTA의 저지를 통해 MB와 한나라당을 무너뜨리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표는 "그것을 토대로 총선에서 승리해 교체된 힘 있는 의회권력으로 복지 혁명을 이룰 것"이라며 "노동자와 시민은 하나다. 하나가 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