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커(Backpacker) 주인아저씨가 주선해준 일거리를 마치고 킹스크로스로 돌아와 홀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밥먹고 숙소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모두 옥스포드 거리에서 열리는 게이 축제를 보러 가기로 했다면서 나보고 빨리 나오란다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열두명이 모두 참석하여 킹스크로스를 지나 윌리엄 스트릿을 따라 길을 건너 마침내 옥스포드 거리에 당도했다. 우리는 시위행진에 참여하기라도 하는 양 약간은 긴장된 상태에서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여든 군중과 음악소리를 듣자 가슴이 부풀어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데모구호와 노랫가락의 한 구절이 나왔다. 옆에 있던 누가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라고 말한다.
수만명의 군중이 일제히 모여서 내는 구호소리는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우리는 군중심리에 휩쓸려 축제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이동하는 무리를 따라갔다 밤이 깊어지자 군중수는 더욱 불어나고 2층 테라스에서 누군가 나타나 무어라고 이야기하고 조명은 그를 집중적으로 비추면서 이제 곧 축제의 서막이 올랐음을 선언하면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기 시작한다.
수십수백발의 조명탄이 하늘에서 장렬히 산화하면서 내는 소리 "빵" "빠바방" "빵빵" 분위기에 약한 나는 감동한 나머지 주머니에서 50불짜리 지폐를 꺼내 맥주 한 박스를 사서 우리 일행들에게 돌렸다.
그옛날 87년 여름,시위대를 위해 박카스 한 박스를 사 주면서 힘내라고 하던 중년의 아저씨와 버스안에서 손수건을 건네주던 중학생처럼 나는 젊은 우리 일행들에게 호주캔맥주 한박스를 돌렸던 것이다.
화려한 의상과 다이나믹한 율동으로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던 거리의 축제 마디그라스는 그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과 축제에 참여하는 인원수면에서도 상상을 초월한 규모였다. 이런 축제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머리속에만 남겨 두다니... '바보, 바보, 바보..'
투입된 의상비만 해도 수십만 달라는 넘을 것 같았다. 그 당시 투입된 최루탄 비용과 자꾸 비교가 된다.
"눈물의 축제"를 위해 투입된 사과탄과 최루탄 지랄탄 그때 최루탄을 너무 마셔서 내 몸이 이렇게 부실해 진 건 아닐까?
나는 단 한번도 닭장차에 실려 가본 적이 없고 연행된 적이 없었지만 그때 그렇게 쌩쌩하던 내가 이날 축제에서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 세계적인 쇼를 보지 못하고 길바닥에 앉아 있는 사이 한국을 대표하는 동성애자인 컴잉아웃의 주인공 홍석천씨가 등장했고 우리 일행은 일제히 함성을 올리면서 그를 지지했는데 그는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가 다른 연예인들과는 달리 때묻지 않고 심성이 착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새옹지마가 될지 그 세기의 대축제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공짜로 실컷 본 우리 젊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이었다.
대규모의 집단 축제에 내가 참여했다는 사실,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은 평생동안 그의 기억속에 자리할 것이 틀림없음을 나는 경험을 통해 체험했었는데 다시 한번 느낀 것은 그런 집단의 신명의식이 그 구성원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나는 호주여행이후 동성애에 대해 관대해 졌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마디그라스 축제대열의 다이나믹한 열정의 분출, 생명력의 찬미에 크게 감동을 받았음을 밝힌다.
속셈학원 회식때 술먹고 나의 손을 잡고 비비던 고등학교 후배인 수학선생에 대해서 전혀 징그럽다고 생각하지 않았고,노래방에서 나의 엉덩이 깊숙한 곳을 찌르던 변태 영어선생의 행위에 자연스럽게 반응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젊었던 대학시절, 권위적인 군사정권에 저항하며 한달내내 거리에서 최루탄과 사과탄 연기를 마시며 서울시내를 안방처럼 다녔을 때의 시대정신이랄까 저항정신은 어떨까?
그것은 바로 386세대의 정체감을 형성하는 공통된 정서로서 생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지금은 시대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긴 하지만 그런 시위문화가 종종 발생하는 파업현장속으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지금껏 기존체재에 편입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이익사회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인간은 공동체속에서 자기를 실현하며 살아야 하며 우리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2003년 유레카의 여행기에서) #
사실 이제는 동성애가 호주에서 일종의 유행이 된 느낌이 없지 않다. 동성애자들만이 모이는 술집을 비롯해 그들만을 위한 잡지가 발간되기도 한다. 학교 선생은 물론 대법관까지도 공공연하게 동성애자임을 밝히며 아무 거리낌 없이 살아가고 있다. 물론 법적으로도 인종차별을 금지하듯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 또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거리에는 구경나온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단체별로 눈을 끄는 의상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글로 쓴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참가자들은 동성애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소수자를 대변하는 단체도 많이 참가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표심을 잡으려고 참가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기독교 단체도 사회정의를 외치며 참가하고 있다.
다수가 인정하는 무리에 섞여야만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한국인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외국에 오래 살았지만, 아직도 이러한 모습을 보면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돈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