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프람 어스, The Man from Earth, 2007, 리처드 쉥크만 감독>
“특수효과 없는 SF영화”
2007년에 만들어진 <맨 프람 어스>가 한국에서 뒤늦게 개봉했다.
우리는 영화에서 많은 초인들을 본다. 하늘을 날고, 빠르고 힘이 세고, 남의 생각을 읽고, 남의 눈에 보이지 않거나 총이나 칼을 맞아도 죽지 않는 존재들. 그것들은 모두 우리가 한 번 쯤은 해 본 상상 속에서 나온 캐릭터들이다. <맨 프롬 어스>에는 아주 소박한 초인이 나온다. 그냥 35살에 노화가 멈춰져 영원히 죽지 않는 보통사람.
10년간 미국 지방 대학에서 역사학과 교수생활을 하던 존 올드맨은 대학에서 제의한 종신교수직도 거절하고 갑자기 학교를 그만 두고 먼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동료교수들이 이사 직전의 존의 집에 모이는데 그 자리에서 존은 폭탄고백을 한다. 그건 바로 자신이 구석기 시대부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과 자신이 십년마다 이사를 가는 이유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이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에 낯 선 곳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인 사람들은 같은 대학에서 고고학, 생물학, 인류학, 신학, 심리학 등을 전공하는 교수들인데 당연히 주인공에게 여러 가지 질문들을 쏟아낸다. 처음엔 농담쯤으로 생각했던 가벼운 대화가 차츰 심각해진다. 그리고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이 영화는 CG나 특수효과가 전혀 없이 주인공이 이삿짐을 꾸리는 집안 한 장소에서 거의 대화로만 이루어지는 영화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재미있는 이유는 SF영화가 가지는 재미의 본질을 잘 살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 어느 날 자신이 구석기시대부터 죽 살아온 사람이라는 설정은 얼마나 자극적이고 흥미로운가. 그리고 SF영화의 필수요소처럼 보이는 특수효과나 CG는 아이디어로 극복할 수 있다. 폴 바호벤 감독의 <스타쉽 트루퍼스>를 보면 남녀 군인들이 훈련을 끝내고 거리낌 없이 함께 샤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장면은 특수효과나 CG 없이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 사회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SF 장면이 되는 것이다.
주인공 존이 콜럼버스와 반 고흐, 부처 등과 교류한 이야기로 점점 지평을 넓혀가자 심리학 교수는 존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몰아가고 이 영화의 논란거리 중의 하나인 예수 이야기가 나오면 신학교수는 신성모독이라며 존을 공격한다. SF영화가 상상력의 힘으로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면이 있는 것이라면 이 영화야말로 ‘인문학적 SF영화’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화내용은 어떤 특수목적과는 상관없는 보통사람들이 흔히 술자리에서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라 이 영화를 ‘리얼리즘 SF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와 유사한 설정의 ‘리얼리즘 SF영화’로 어떤 여자가 자신이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자기는 미래에서 왔다는 고백을 하는 내용의 <해피 액시던트>(2000, 미국, 브래드 앤더슨 감독)가 있다. 이 영화도 재미있다.
그럼 <맨 프롬 어스>의 존은 과연 정말 구석기시대부터 살아온 죽지 않는 사람인 것일까. 물론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극적으로 밝혀진다.
이 영화의 극본을 쓴 사람은 미국 인기 TV시리즈 <스타트렉>의 몇 몇 에피소드를 쓴 제롬 빅스비다. 이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존의 집을 나서면서 “집에 가서 ‘스타트렉’이나 봐야겠다”라고 하는 대사가 나온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