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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해일은 "사랑은 3개월동안 지속되는 감정일 뿐"이라고 한다. 강혜정은 "3년 아닌가요?" 라고 반문하지만 사실 그 기간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결국 언젠간 끝장나는 운명을 가진 감정이란 것이 사랑이라고 남자들은 알고 있다. 이건 비교적 객관적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건 남자 스스로에게도 다소 불편하고 잔인하기 때문에..
그래서 남자들은 변명을 준비한다. 사랑이 우정으로 변해서 믿음과 의리로 자신의 파트너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며 살면 될 것 아닌가. 그리고 3년이 지나기 전에 대부분의 짝들은 아기를 가진다. 대충 대충 아기에게도 사랑을 나눠줘야 하기 때문에 파트너에 대한 사랑이 좀 덜해지는 건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 아닌가..
남자에게 연애감정은 '감정'이므로 지속이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자들은 계속적인 소통과 이해를 바란다. 하지만 남녀의 언어는 서로 다르다. 남자들은 여자가 쓸데없이 복잡하다고 한탄하지만 원래 여자는 복잡한 걸 어쩌란 말인가. 여자들은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남자들보다 최소한 한 단계는 더 복잡하다.
남자에게 연애는 '부분'이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위안과 휴식, 감동과 탄식을 얻을 대상이고 남자들의 '질서'와 권태에 약간의 파열음을 내게 함으로써 일시적인 해방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존재일 뿐.. 남자들은 여자로부터 완전하고 절실한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다. 남자들은 자신이 하나의 '주체'로서 받아야 할 인정과 이해를 사회로부터 구한다.
그래서 사랑을 하게 되면 여자들이 더 손해를 보게 되어있다. 여자들은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남자보다 더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아의 완성'을 위해서 사랑에 더욱 더 투자한다.(남자는 자아의 완성을 위해 '사회생활'에 더욱 더 투자한다) 여자는 육체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권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여자에게 사랑이란 것은 자아를 완성하는데 있어 더욱 절실한 요소가 된다. (남자의 경우보다 더..)
그리고 여자는 남자와 달리 이성, 소통, 통합의 차원에서 남자를 사랑한다.(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거는..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그래서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거는데.. 그 남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하려는 순간 여자는 결국 이성과 소통보다 '감정'적이고 '부분'적인 사랑을 하는 남자에게 실망하게 된다. 실망만 하면 다행인데 남자든 여자든 사랑이 한창 무르익을 때는 자신의 감정에 굴복하여 자기를 잃어버린다. 흔히 사랑을 하게되면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게 되는데 그게 일시적으로나마 자기를 잃어버린다는 증거다.
사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 짜릿한 기쁨에 굴복하여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남자는 자극을, 여자는 전체를 원한.. 서로 애초에 어긋날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종말 시점에서.. 결국 남녀 각자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댓가를 치른다. 그런데 그 댓가가 불공평하다. 남자는 그저 가슴 아파하는 반면 여자는 사랑의 불가능함을 느끼고 '절망'하는 것이다. 첨부터 여자가 더 많이 걸었기 때문에 더 많이 잃는 것...
여자는 대개 사회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사랑에서도 스스로 '부분'적인 존재를 자처할 때.. 또는 자신의 완결성을 구현하려 하지 '않을' 때 자신이 덜 다치게 된다는 구조적 불평등을 깨닫게 된다. 반면 남자들은 스스로 부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데 이는 '문명'이 '자연'에 헌신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된다.
2.
이 영화에서 박해일이 강혜정에게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남자들은 좀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사실 '모든'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여자에게 접근한다. 단지 박해일은 '비교적' '너무' 솔직했기 때문에 이런 저런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
이 영화는 남녀의 소통의 가능성, 사랑의 가능성에 관한 영화다. 강혜정이 '부분'으로 자신을 위치지을 거였으면 박해일과의 그런 모험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혜정은 솔직한 박해일에게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끌린 것이다.
이 영화에 매우 중요한 대사가 나온다.
박해일: (강혜정과 몇 번 더 자려고) 유예기간을 줘야죠,
이런 식으로 갑자기 안 만나주는게 어딨어요.
첫 눈 올 때까지..좀 만나줘요..
강혜정: .. 그럼 그 첫눈 올 때쯤 돼서 내가 해일씨 계속 만나고 싶어지면요?
박해일: (허를 찌르는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 그럼 저도 유예기간 드릴께요..
강혜정: (피식..웃음)
이거 한국영화사에 길이남을 명대사라고 본다. 물론 남자의 도둑놈같은 심보 이지만 이런 정도의 솔직한 소통이 가능한 남자는 매우 드물다. 박해일은 강혜정이 계속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면 자신도 강혜정을 계속 사랑하겠다는 사기를 치지 않는다. (보통 남자는 그럼 계속 사랑하면 되죠 뭐..이랬을 것이다) 그리고 둘 관계에 있어 최소한의 '기계적 평등'까지 접근한 의미심장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남자가 여기까지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이 영화는 여자의 깊고 여린 아픔까지 감싸주지 못하는 박해일에게 강혜정이 비수를 들이대며 결말로 치닫는다. 이 부분은 남녀의 사랑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중요한 장면이다. 사랑과 결혼에서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 그리고 그 권력관계가 생물학적 권력관계와 더불어 남녀의 '차이'를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면.. 이건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가장 허물기 힘든 벽을 하나 허물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 남자의 상태를 사회의 '부분'으로 만들어놓고 남자로 하여금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라고 여자는 '강요'한 것인데 중요한 것은 의외로 이 남자의 저항이 그다지 격렬하지 않다는 것이다.
난 이 색다르고 드문 '남자'가 나오는 이 결말 장면을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난 [연애의 목적]을 보고 내가 뽑은 한국영화 베스트5에 꼽았다. 연애를 다룬 영화로는 베스트1 이다. 여러 모로.. 남자를 이 정도로 솔직하게 그린 영화는 없었다. 그리고 고리타분한 장면이 하나도 거의 없다. 박해일이 자신과 강혜정의 관계를 퍼뜨린 학생 몇을 아작내고 그 소문을 주도한 여선생을 찾아갔을 때 관객들은 모두 박해일이 그 여선생과 한바탕 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박해일은 아주 '사회적'으로 행동한다. 이것도 기존의 멜로영화의 룰을 완전히 파괴하며 남자의 본질에 다가가는 아주 훌륭하고 중요한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도 전혀 멜로영화스럽지 않다. 멋있게 끝나야할 마지막 장면이 여관 앞 골목이라니.. 하지만 그 말초적인 여관앞 골목에 하얀 눈이 쌓여있다.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크고 그 장면 자체가 영화의 주제를 드러낸다.그렇다고 이 영화가 멜로영화스러운 따뜻함을 주지 않은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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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