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영화를 10번 쯤 봤다. 이 영화를 잘 이해하려면 이 영화의 감독 브라이언 드팔마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아는 게 도움이 된다. 미국의 유명한 동성애자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정신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브라이언 드팔마에게 있어서 현재의 문화적 상황은 희망을 품을 수 있을 만한 가능성을 이미 넘어섰으며 사회변화는 불가능한 것이다...여기서 사람들에게 남겨진 몫은 이 붕괴와 파멸의 화려한 장관을 최대한 즐기는 것 뿐이다."
뭔 말인지는 확실히는 몰라도 그냥 "될대로 되라"식의 인생관을 느낄 수 있다. 그건 인간의 어떤 내적 에너지나 사상에 대한 불신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브라이언 드팔마는 대체로 자기 작품을 형식적 실험과 관련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했고 영화가 어떤 내용에 관한 것인가에는 흥미를 두려하지 않았다. 물론 브라이언 드팔마 영화의 대부분은 내용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지만 형식실험을 우선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1.
혹자는 이 영화가 갱들의 성장기 디테일을 너무 대충 그렸다고 하지만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갱의 성장에 대한 리얼함에 별 관심이 없다. 사실 이 영화에서 알 파치노가 결정적으로 크는 계기인 남미 출장에서 상대조직이 알 파치노의 출장 동료를 헬기에 매달아 죽일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얼마나 귀찮겠나. 그냥 쏴죽이면 되는데 헬기에 목 매달아 죽이다니...
즉 감독은 스토리보다 어떤 멋있는 장면을 원하는 것이다. 드팔마 감독은 멋있는 화면을 위해서 스토리를 희생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관객은 대충 그런 걸 감안하고 보는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 파치노는 총알을 100방 정도 맞을거다. 그래도 알파치노는 계속 총을 쏘며 저항한다. 쳐들어온 갱조직들도 약간 의아해하면서 알 파치노와 싸운다. 결국 알 파치노는 뒤에서 다가온 갱의 소잡는 총알을 맞고서야 거실 풀로 떨어져 죽는다. 이게 리얼리티가 있나? 하지만 마지막 비장미를 위해서 영웅본색처럼 그냥 찍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매우 멋있다. 비장미가 흐른다. (마지막 장면의 음악은 우리나라 영화 [게임의 법칙]에서 박중훈이 머리에 총맞아 죽은 뒤에 흐르는 음악과 매우 비슷하다)
2.
일반적으로 이 영화의 주제에 대해 탐욕에 의한 종말과 그 허무함..이라고들 하는데, 뭐 내용상 맞지만 대부분의 갱영화의 일반적인 주제는 자본주의 비판이다. 사실 갱영화들 보면 주제에서 이런 범주를 거의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영화도 근친상간, 그리고 악한 주인공이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자신의 일을 그르치는 따위의 특이한 설정도 있지만 결국 파멸이 주제다.
그런데 자본주의 비판에서 왜 파멸이란 주제가 항상 들어가야 하나. 이건 공황론의 변형이라 보면된다. 풍요로움을 거쳐 불황.. 또 공황으로 가는.. 일정시기마다 공황(파멸)을 겪어야하는 자본주의의 운명. 그것이 전쟁이 원인이든, 일부의 독점이 원인이든...또 대부분의 경우처럼 두 가지 모두이든..
이 영화의 가장 대표적인 주제를 상징하는 장면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알파치노가 마약을 할 때 거의 밀가루더미에 얼굴을 파 묻듯이 하면서 마약을 들이마시는 장면이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알 파치노의 입과 코 주위에 온통 마약가루가 범벅이 되어있다.
실제로 마약을 이 정도로 심하게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주는 매우 훌륭한 장면이다. 그것은 바로 이 장면이 주인공의 부를 상징하는 동시에 곧 있을 파산을 상징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야~ 마약을 저렇게 펑펑.. 부자네.. 근데 저러다 죽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장면.
한 마디로 '과잉'이 이 영화의 주제이자 스타일이다. 총알도 열라 많이 맞고 마약도 열라 많이 하고.. 지나치게 화려함과 잔인함. 위에서 언급한 디테일의 리얼리티의 파괴도 모두 '과잉'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 부차적인 문제지만 영화의 색감도 원색의 향연이다.
색깔이 너무 천박해서 이 영화에선 그 자체가 스타일이 되었다. 마지막에 알 파치노가 풀에 빠져 죽을 때 푸른 물에 퍼지는 붉은 피...
3.
브라이언 드팔마 영화는 대부분 그냥 스타일을 즐기면 되는 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스토리가 그렇게 허술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칼리토]같은 영화는 완벽한 스토리의 영화다. 아무튼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은 훌륭한 감독이다. 이 사람은 고등학교 때 미국의 전국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드팔마 감독이 졸업한 뉴욕 영화학교 출신의 동기생 엘리트 감독들이 (마틴 스코시즈, 스티븐 스필버그 등) 대부분 영화사에 명화로 손 꼽히는 '훌륭한' 영화들을 만들고 있을 때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은 오로지 선정적이고 천박한 B급 영화만 만들어왔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고 브라이언은 새로움 없는 새로움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브라이언 드팔마의 영화들을 주욱 보다보면 대부분의 영화에 붉은 카페트와 계단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건데 '단지' 스타일에 얼마나 집착하는 지 추축하게 하는 하나의 비공식적인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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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