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전에 어디선가 시인 황지우의 강연을 청강한 적이 있다. 그 때 황지우는 몇 사람의 아마추어 작가들의 글을 보고 매몰차게 평했다. 시가 너무 깨끗하다... 당신들.. 원래 그렇게 고귀하게 사세요?.. 사춘기 소녀들도 아니고.. 시는 더러워야 한다. 원래 사람이 더러운 존재이므로.. 시에서 똥냄새도 나고 땀냄새도 나고 살냄새도 나고.. 그게 사람냄새 아닌가.. 왜 향수냄새만 나는 시를 쓰려고 하는가..
미국의 작곡가 존 애덤스는 아스토르 삐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네루다의 <오염된 시에 대하여>란 시를 인용해 찬양했다.
"삐아졸라의 음악은,
" 흠집 많은 인간의 혼란... 양손의 수고로 가혹하게 닳아버린,
땀과 연기에 찌들은, 백합향기와 오줌냄새를 맡는,
합법적으로 혹은 불법으로 우리가 하는 갖가지 행동으로 얼룩진...
음식자국과 죄에 물든, 낡은 옷처럼, 주름진 육신처럼,
감시, 꿈, 불면, 예언, 사랑과 미움의 말들, 어리석음, 충격, 목가,
정치적 신념, 부정, 의심, 긍정 따위로 순결을 잃은 ..." 영혼이다."
존 애덤스는 또 남미의 예술작품 전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의 작품은 야수성과 신비, 관능, 인간적 솔직성 등이 뒤섞여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표현하는 세계의 생생함, 그 감정의 폭넓음, 인간상황에 대해 눈도 깜짝하지 않는 통찰, 짓눌린 경제와 정치의 무게를 아랑곳하지 않는 그 놀라운 유머는 우리에게 아프게 삶의 활기를 일깨우는 찬란한 일격과 같은 충격을 주었다..."
2. 난 남미 예술의 이런 느낌들이 경제와 정치의 무게에 짓눌린 남미인들의 감정의 탈출 방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울 한다. 아니면 원래 정열적인 피를 타고 났든가.. 예전에 컬럼비아의 국가대표 골키퍼는 한 번의 실수로 공항에서 성난 팬들에게 총 맞아 죽기도 했다. 이런 남미인들의 분노는 어디에서 나올까.. 난 모든 것이 정치적인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로 수렴되지 못하면 어디선가 폭발한다. 난 그것이 마치 에너지보존의 법칙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닥터 지바고>의 구소련이나 아일랜드, 남미처럼 한이 많은 역사를 간직한 나라에서 애끓는 예술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여기서 한가지 고민이 있다. 세상이 평화로우면 좋은 이야기와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있을까.. 나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와 상관없이..
스웨덴의 라스 할스트롬같은 영화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영화들을 찍었는데 그냥 착한 척 하는 일반 휴머니즘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라스 할스트롬 감독은 마주보기 힘든 인간의 잔인한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대결하며 '따뜻함'을 이끌어낸다. <개같은 내인생>, <사이더 하우스>, <길버트 그레이프>, <줄리아 로버츠의 사랑게임>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빨리 '후진적인' 정치 격변기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더 많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는 장에 도달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