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소금으로 술안주를 하셨던 두 분 이야기이다.
첫 잔
1956년 3월 명동에서 점심도 거른 채 굵은 소금과 새우젓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는 저녁 아홉 시쯤 헤어졌다가 불과 삼십 분쯤 뒤에 부음을 들었다는 시인 박인환 이야기(김규동, <나는 시인이다>)를 신문에서 보았다.
박인환 평전 <세월이 가면>을 꺼내어 읽어 본다. 年譜를 <해적이>이라 쓰고 1956년 3월 20일 저녁 9시 경에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고 적어 놓았다. 김규동 시인은 아홉시에 헤어졌고 삼분 뒤에 부음을 들었다니 얼마나 놀랐을까?
나는 굵은 소금, 새우젓을 제상에 얹고 소주 한 잔만 붓는다.
두 번째 잔
1985년 경남 창녕 화왕산 자락에 갔었다.
창녕 조씨네 종택이라는 데서 잤다.
<잤다>기 보다 <술 엄청, 고성방가 밤 새, 민폐 가득>의 밤이었다.
종택을 비워야 할 시간에 짐을 들고 나왔다.
등산은 커녕 해거름까지 개기다가 한잔 더 하고 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개기는 자세가 나오기 마련이다. 길 곁에 짐을 놓고서 앉아 노닥인다.
사십 줄에 먹물 안경태 스따일 아자씨가 그야말로 옛날식 50cc 오도바이를 타고 가면서 말을 붙인다.
"어제 종택에서 잔 놈들이군?!"
헉! 말문이 막힌다. 한 마디로 자르고 쳐다 본다. 흐미 무서워~.
"갈 건가?" 산에 안 오르고 가느냐? 는 힐난성 질문이다.
"네?" "아니예요, 올라갈 거예요" 했다.
"그럼, 따라 와"
아니? 목줄을 매지도 않았는데, 북어처럼 꿰지도 않았는데, 줄줄줄 말없이 따라 간다.
구령은 안했지만 하나 둘 셋 소리가 난다.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간밤의 음주로 어떤 계획도 도루묵일 것이었다.
내친 김에 한 발 더 나가는 거지...한 놈이, 저 선생님 여기 사세요?
설레발 친 놈은 바로 죽는다... 언지부터 내가 네 선생이더냐?
"나 사는 데다."
산자락에서 비탈이 시작되는 가파른 등산길 초입 쯤 일게다.
농막에 짐을 던져 놓았다,
"넌 나 따라와!"
벌떡 일어나 그야말로 옛날식 50cc 오도바이에 티켓다방 아가씨 맨쿠로 올라 앉아 아자씨를 꼬옥 잡았다. 난생 처음 타는 오오토오바이시클이었다. 말통을 끼고서리...
비탈길을 내려가 술도가에 도착하였다.
도가 주인과 인사를 나눈 아자씨는 함석통 수도 꼭지를 틀어 말통 주둥이에 술을 부었다.
반 바가지를 받더니만 내게 내민다.
먹었다. 어~ 쎄다. 물을 탄 막걸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저짝 한켠에 있는 양푼에서 굵은 소금 반 주먹을 내게 건내신다.
눈치 까셨을 거라 생각한다. 내 말 투가 바뀌었다.
건내신다에 존칭보조어간 시가 들어 간 거다.
이 때, 내가 속으로 되뇌인 존칭보조어간 시는 한자로 詩였다.
아, 이분 詩人이시구나! 복배한 것이다.
올라 와서 계곡 물을 막걸리에 섞었다.
몸도 섞었다. 맘도 섞었다. 다 섞였다. 말 없이.
어질하여 뒷간에 가야했다. 해거름 어스름이었다.
詩人께서 유엔 성냥통과 초를 하나 주신다.
뒷간에 드니 컴컴해서 안 보인다.
성냥을 켜 밑을 확인하고 기마 자세로 앉는다. 아~! 거기 있었던 것이다.
초를 켜자 거기에 바랜 종이에 빨간 색연필로,
촛불
나뭇잎 휩쓰는
바람 소리냐 비냐
전기는 가 버리고
어둠 속으로
그대도 가 버리고
금세 세상이 온통 뒤집힐 듯
눈에 핏발 세우던
그애도 가 버리고
촛불
홀로 타는 촛불
내 마음 휩쓰는 것은
바람 소리냐 비냐
라고 써질러 있던 것이다.
싸질르러 와서 본 써질러진 촛불, 그 빨간 색연필 글씨...
바람소리가 났던 것도 같다.
한여름 밤 몸서리를 쳤다.
담 날, 읽던 시집을 슬며시 떨어 뜨리고 돌아 섰다.
간다는 말도 없이 왔던 기억이다.
오래 후, 1991년 봄, 한겨레에 아는 이름의 광고가 올라 왔다.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무참히 산화한 날, 창녕 화왕산 자락에서는 10년을 넘게 손으로 가꾸어 온 농막을 단지 무허가라는 이유로 불도져 포크레인을 앞 세운 악의 무리가 유린하였다. 대학생 노조의 수련회 엠티 장소로 쓰인다는 것이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 전국에 계신 친구 여러분들께. 화왕산 자락에서 하도암 합장. 그리고 전화번호가 쓰여 있었다.
하도암 합장 이라니? 오래 전, 그 내마음의 詩人, 그분의 손길, 합장 아니신가?
뻑뻑했다. 심장이... 할 수 있는 것이, 내 겐 없었다.
그 때, 나는 명동에서 전경에게 쫒기느라 정신이 없던 터였다.
백골단이 강경대 추모시위를 쫒고, 시위대에 쏘는 그 사과탄 최루탄이
나의 애정행각을 명동에서 퇴계로로 몰아 대며 방해했던 때였으니...
그리고도 오래 흘러 지난 금요일, 한홍구 서해성의 직설에 양길승 원장이 나왔다.
강경대 말씀을 하셨다. 화왕산 시인이 생각 나서 검색을 해 보았다.
몇 없었다. 그 중 하나가 아래와 같다.
한겨레 입력 2007.02.15 05:12
하도암(창녕 화왕산장주)씨 별세: 재민(영화인) 선화(가사)씨 부친=14일 오전 8시25분 창녕 한성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55)532-4585.
돌아 가셨던 것이니~
늦게 나마 엎어져서 굵은 소금에 막걸리 한 잔 올린다. 편히 쉬시기를
하늘에 대고 감자 먹이기 한 번
유감스럽지만 앞에 넣어던 시, 촛불의 작가가 김지하이다.
죽음을 부추기는 악의세력 운운했던....
주먹 쥐고 하늘에 감자를 먹여 본다. ㅅㅂ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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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