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네덜란드 선거결과까지 얘기했지?
다른 나라, 그것도 의원내각제 국가 상황을 주절거려놓은 걸 읽자니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 근데 내게 네덜란드의 연합정치가 재미있는 까닭은, 내가 이 나라에 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의 상황이 절로 떠올라서일 거야. 내가 한국사람이 아니라면, 네덜란드의 연합정치가 어떤 모양으로 돌아가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상한 소리 같지만 사실 그래. 투표권도 없는 주제에 이 나라 정치에 관심 많은 외국인이 된 데는 내가 한국사람이기 때문이야. 물론 우리 집 노후대책과 세금 문제 등과도 관계가 없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내 눈에 들어왔던 부분을 조금 써 볼께.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말 있잖아?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야) 비유가 이상할지 모르겠는데,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얘기 들으면 나는 이 문장이 떠오르거든. 배부른 사람들은 어느 조건만 충족되면 서로 닮은 얼굴일 수밖에 없는 반면, 진보 쪽 정당들은 결핍의 내용이 다 다른 거야. 분열을 좋아해서가 아니라고. 결핍과 열망이 조금씩 채워지면 그 얼굴도 닮아가리라고 생각해. # 2010년 선거 결과 다시 보면,
원내정당이 10개나 되는 다당 구조이지만, 좌우 균형이 잡혀 있잖아? 그리고 가만히 보면 제아무리 당이 많아도 ‘등대’처럼 저멀리서 빛나는 진보정당들을 끌고 가는 중추정당이 있다는 점이 보일 거야. 기댈 수 있는 맏형이 있어서 그래도 작은 정당들이 빛을 내거든. 요즘 네덜란드에는 동물보호당이 내놓은, 종교의례 가축 도살 금지법안을 놓고 논쟁이 한창인데, 네덜란드에서는 동물에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도축법을 금지하고 있어. 마취한 뒤 도축해야 한단 말이지. 단, 종교 의례 도축은 제외야. 이슬람과 유대교 모두 마취 도축방법은 자기들 율법에 맞지 않아서, 우리 동네에도 푸줏간이 따로 있고 그래. 종교 의례라고 해서 뭐 제물을 바친다거나 그런 거 아니고, 자기들 먹는 거야.
그런데 이 ‘종교 의례 도축’ 제외 조항을 없애고모든 동물을 잡을 때 마취해야 한다는 안을 동물보호당에서 내놓은 거야. 이슬람과 유대교가 ‘종교의 자유’라는 공동 이해를 가지게 된 사안인데, 그렇다고 공동대응이나 공동투쟁을 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
그런데 이 동물보호당은 말이야, 전에 국회의사당에 쥐가 너무 많아서 쥐덫을 놓기로 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동물보호당이 나서서 쥐의 고통 감소를 위해 약을 쓰자 그래서 아마 약으로 쥐 잡았을 꺼야 그때. 이들이 없으면 누가 쥐의 고통을 고민하겠어?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데 소중한 일을 하는구나 생각하다가도 내 눈엔, 그냥 합쳐도 되지 않나 싶을 때도 있거든. 그 사람들이 내 말 들으면 꽤 기분 나쁘겠지? 한국 정치정당들은 시대의 요구를 비켜가며, 진보 보수의 양당구조로 발전해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든든한 국민정당 하나 없는 한국은 대체 어떻게 나아가는 게 좋을까? 맏형인 줄 알았던 당은 저너머로 건너가 버린 지 오래고. 다른 형제들은 아무도 나설 생각을 안 하잖아. 참여당이 그 중심이 될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 말이야.
연합정부 꾸리기 네덜란드 선거결과를 놓고 칩을 요리조리 놓고 판을 짜보아도 연정이 가능한 경우의 수가 몇 가지 안 돼. 안이 두 개 밖에 안 나오더라.
정부 꾸려가기 수월하려면 제1당이 좌우 비슷한 쪽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아무리 같은 오른쪽이지만, 그래도 우파 정당이 건전보수거든. 노동시장을 열 것인가 닫아 잠글 것인가의 문제도 그렇고 경제정책도 다르고. 게다가 경호원 없이 못 다니는 극우정당하고 같이 하고 싶지는 않을 거 아냐. 극우 정당 빼고 하려니 조합이 더 안 나왔지. 쪽수가 안 맞춰지는 거야. 군소정당이 캐스팅보트 노릇을 하겠지? 그러니까 작다고 무시하지 말란 말이야! 게다가 노동당이 한 석 차이로 제2당이잖아. 완전히 빼버리고, 오른쪽끼리만 정부 꾸리기도 부담스럽고. 그래서 처음엔 좌우 연합을 추진했어.
이 연정을 ‘보라색 플러스’ 라고 불렀는데,
‘빨강 + 파랑 + 작은 정당 둘’ 이야.
작은 정당이 둘은 들어와야 과반이 되는데, 되는 듯하더니, 결국 긴축재정안을 놓고 협의가 안 됐어.
연정 합의가 되면 그 내용을 담은 ‘통치 합의 협약’을 공표하고, 각 정당원에게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연정 파트너가 많아지는 데다가, 작은 정당일수록 등대처럼 빛나다 보니 이 ‘통치 합의 협약’을 못 이끌어냈지. 좌파 정당 쪽에서 보면, ‘통치합의협약’에 양보를 어느 정도 하고, (이건 우파도 마찬가지겠지) 내각에 참여하는 게 좋은가를 따져봤을 텐데, 극우정당이 연정에 들어오는 꼴을 봐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합의가 안되더라고. 좀 양보하고 내각에 들어가면, 정부정책이 오른쪽으로 기우는 걸 그나마 좀 누그러뜨릴 수 있잖아. 이건 내 생각이고. 그런데 그렇게 안 하더라고. 통치자가 되기보다는 저항자로 남고 싶었던가 봐.
보라색 내각의 추억 나는 좌우 연합이 되길 은근 바랐거든.
얼마나 다이나믹할까?^^ 극우정당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꼴 보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 크기도 했지만 말이야. 네덜란드 역사상 ‘보라색 내각’이라고 하는 좌우 연정시절이 있었는데(1994-2002)
초록색(중도) 없이 빨강과 파랑만으로 꾸린 연정을 부르는 말이야.
그런데 이 ‘보라색 내각’을 겪어 본 네덜란드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더라.
죽도 밥도 안 된다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이 보라색 내각을 2기까지 이끌었던 사람이 노동당 당수 윔 콕Wim Kok인데, 폴더 모델을 만든 사람이야. 폴더 모델은 평가가 여러 가지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네덜란드가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민영화로 나아가면서 북유럽과 다른 길을 가게 된 면이 있거든. 네덜란드 살림살이에 투덜거리는 사람들 많아. 수도와 에너지 공급, 기차, 의료 부문이 민영화되었는데...네덜란드만의 일은 아니지만, 비싸기도 하고(민영화가 단독범은 아니야), 서비스 품질에 대한 불만도 있지. 아, 공공주택정책도 크게 바뀌었고. 이때부터 정부가 하던 많은 일이 민간부문에서 이뤄지게 돼.
연합의 절차와 보고자(informateur)의 역할 제1안 ‘보라색 플러스’는 무산되고, 제2안인 우파 연정으로 꾸려졌어. (중도+우+극우)
가운데 초록색부터 오른쪽으로 세 개 정당이야. 손잡기 싫어도 어쩔 수 있나. (벨기에 플란더런 정당들은 극우정당과는 손잡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지?) 이 과정에 informateur라는 역할이 있는데, informateur 는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 통신원, 보고자쯤 되는 뜻이야. 네덜란드에서 공식적으로 여왕이 대장이라고 했지? 여왕이 이 ‘보고자’를 지명해. 제1당 사람이기가 쉬운데, 당수라던가 내각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사람 말고 좀 외곽에 있으면서 정치적 영향력 크지 않고, 하지만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 있잖아? 꼼수 부릴 것 같은 그런 사람은 안 되겠지?
가능한 경우의 수를 뽑아서 각 정당을 협상 테이블에 불러오고 하는 일을 해. 네덜란드말로 ‘탐험자’(익스플로러)라고도 하는데, 스카우트에서 길 찾는 사람을 말하거든. 길라잡이라고나 할까?
(※ informateur와 함께 formateur를 지명하는데, formateur는 ‘조각자’, 즉 제1당의 총리 후보로, 차기 내각을 구성하는 사람을 말해.) 이 ‘길을 찾는 보고자’는 길도 찾아야 하고 보고도 해야 하는데, 여기서 ‘보고’란 국가수반, 즉 여왕에게 하는 거야. 연정 구성 대상 정당대표들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들을 보고하는 거지. 그런데 이 과정이 결국은 국민에게 보고하는 셈이 돼. 그 내용이 속속들이 발표되거든.
이 ‘보고자’는 다른 정치인들의 얘기도 듣는데,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사람들 마음속에 흐뭇하게 오래 남아 있는 그런 정치인들 있지? 있어... 그런 사람들도 두루두루 만나며 조언도 받고 하는 것 같아.
가장 중요한 건, 연정 합의 절차를 끌어나가고, 합의 내용인 ‘통치합의협약’을 중재하고, 그 과정과 내용을 알리는 일이야.
보니까 4개월 걸린 연정합의 절차에서 보고자를 7번 지명했네. ‘보라색 플러스’ 합의할 때는 좌에서 하나, 우에서 하나, 이렇게 임명했고. 정당도 치우치지 않도록 했고. 이 보고자가 내각 구성에 어떤 영향은 끼치지 않을는지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고, 절차가 현대 민주주의의 투명성에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어. 그런데 뭐 큰 부작용도 없고 이렇게 바꾸자 하고 나서는 사람도 없어. 여왕은 ‘내정간섭’을 못하게 되어 있거든.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이 여왕에게 보고하는 절차에서 여왕이 어떤 영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어. 공식행사하고 나면 여왕은 마차를 타고 가는데 말이야, 황금 마차. 차 타면 될 걸 일부러 마차 타고 가는 행위와 비슷하달까? 여왕이 이렇게 하래, 어명을 받들어라, 이런 건 안 통하겠지? 여왕이 그즈음에 한 연설에서 내각 구성 촉구를 암시하는 듯한 이런 표현을 했지.
“주고받기, 관용, 조율.”, “조화로운 사회”, “우리 모두의 책임”.
뭐 여왕이 약간 좌빨이라는 소문은 이전부터 있었는데, 여왕이 ‘좌우 연합’을 지지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말들도 하더라. 그 연설할 때 또 보랏빛 도는 드레스를 입고 나와가지고...
# 베아트릭스 여왕이 공주였을 시절 사진이야. 1965년
요즘은 담배 끊었대.
통치합의 협약 극우정당이 연정에 들어오니까 이런 점이 있더라.
극우정당이 바깥에 있을 때는 정말 시끄러웠거든. 동네 깡패처럼. 사회분열조장이란 정말 이럴 때 쓰는 말일 거야. 그런데 일단 ‘통치합의협약’을 맺었잖아. 그러니까 연정에 들어오면서, 결과적으로 그 꼴통 짓이 좀 누그러졌달까?
극우정당은 공공장소에서 히잡 전면금지 주장했었거든. 그런데 부르카만 전면금지하기로 했고, 히잡은 법무, 경찰 공직자에 한해 금지하는 걸로 합의했더라.
(부르카는 눈만 나오는 옷이고, 히잡은 머릿수건이야.) 이제 어디 가서 히잡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떠들고 다니지는 않겠지. 그래도 그 근본이 어딜 가진 않아서... 얼마 전에 노동당이 65주년을 맞았는데, 극우정당 당수인 윌더스가 이런 내용으로 트윗을 날린 거야.
“65세 생일 축하해. 너희가 네덜란드에 대량 이민, 수많은 실패자와 범죄자들을 들여왔지.”
거기에 노동당 당수의 대답.
“축하해줘서 고마워. 정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네가 우리나라에서 서로 생일 축하하는 법을 보여줘서 좋구먼. #이민자사회통합교육?”
네덜란드 사람들, 생일 엄청 챙기거든. 생일 축하해주는 네덜란드 문화도 모르는 너야말로, 이민자들이 받는 사회통합교육 받아야겠다, 하는 말이지. ‘통치합의협약’이라고 해서, 몇 대 몇 지분이라던가, 재정은 내가 할 테니 노동은 네가 해라, 뭐 그런 건 줄 알았거든. 아니면 국정 기조라던가 뭐...
그런데 협약내용 보니까 선거기간에 쟁점이 되었던 내용 있잖아, 그 내용에 대한 굵직한 합의더라고. 장관 숫자도 있긴 하더라.
참, 극우정당은 정책연합만 했어. 입법과정에서 정책 공조만 하는 거지. 그래서 내각은 자유민주당과 기독민주당이 반반, 소수내각이야. 자유민주당의 연정 상대인 기독민주당은 오랫동안 제1당이었고, 지지층 넓은 중도정당이야. 이 건전한 크리스천들이 우파와 손잡은 모습에 실망한 사람들이 더 등을 돌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 기민당 당 대표가 ‘통치합의협약’ 안을 들고 당에 돌아와서 전당대회를 통과하기는 했는데...전당대회 장면을 TV에 보여주는데 울부짖는 당원도 있고 그렇더라.
극우들은 말만 내세우는 정당이 아니라 연합에 참여했다는 의지와 책임감을 보여주는 셈이 되었고.
노동당은 다음 선거 때는 우파 정부에 피곤해진 사람들 마음을 얻어서 반대로 제1당이 될 지도 모르지. 결국, 정당마다 그때그때 내외부 여건을 보면서, 통치 의지를 지니고 참여하여 정책을 펼치느냐, 아니면 외곽에서 다음을 준비하느냐, 하는 나름의 판단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
합의에 대한 합의 100명의 사람이 100가지의 의견을 가진(가져야만 하는) 나라에서, 과반을 아우르는 주류 정치세력이란 존재할 수가 없는데, 어떤 정당도 영원한 제1당이 될 수 없고, 제1당이라 해도 연합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그러니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고, 평소에 서로 존중할 수밖에 없고, 합의문화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 ‘합의’라는 놈이 두 얼굴이 있거든.
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면서 한편으로는 죽도 밥도 아닌 절충안이 되기도 하거든. 서로 양보를 해야만 이루어지는 게 합의지만, 그 말은 결국 둘 다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도 되니까. ‘이상적’인 신념이란 설 자리가 없다는 서글픔도 좀 있고.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게 합의라는 것. 그러니 악마는 없는 거지. 네덜란드 정치에선 그래. 그런데 ‘제 눈에 악마’와 손을 잡더라도 그 과정을 공개하고 협상이 있을 때마다 그 내용을 당원들과 일반대중이 잘 알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한 것 같아. 그래서 당원과 지지자들이 합의안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고, 지지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으면 합의가 되지 않는 것이고, 또 조용한 지지자들이 만드는 여론도 살피고.
내가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그리 열광적인 편은 아닌데, 그 과정은 멋지더라. 악마 같은 정치인도 근사해 보이대. 부러워서 그랬을 거야, 그 유연함과 상상력이. 자신감에서 나오는 거겠지? 그래서인지 나는 ‘화학적 합의’라는 말이 의문스럽거든. 합의가 화학적일 수 있을까? 합의는 서로 마음이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같아질 수 없음이 너무나 명확해서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이라고 나는 이해하거든. ‘딜’이지. 단, 합의 때 맺은 약속을 지킨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화학적으로 동의하는 것이지.
맺은 약속에 대해서만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니까, 맘 안 맞는 일 생기면 홱 돌아서기도 해. 중요한 것은, 약속을 맺는 과정, 양보의 각 내용을 사람들이 잘 알 수 있었던 것처럼, 갈라설 때도 누구 때문에, 어떤 이유였음을 누구나 알 수 있고, 국민 여론이 평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다는 거야. 합의를 깨는 것 자체도 하나의 전술이기도 해. 저 위에서 말한 ‘보라색 내각’ 있지?
그 보라색 내각이 끝나는 2002년 무렵, 바람같이 등장한 사람이 핌 포르타윈Pim Fortuyn인데, 네덜란드 정치사에 처음 떠오른 반 이슬람 극우정치인이야. 이 사람이 낸 책 제목이 <보라색 8년 동안의 쓰레기더미>였어. ‘잃어버린 8년’ 보다 더 직설적인 말이지.
굉장한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는데, 2002년 선거운동 기간에 동물· 환경보호 활동가라는 사람한테 암살당했어. 서로 의견 존중하고 합의 잘하고 그런 이 나라에서도 극과 극이 부딪혀서 끔찍한 결과를 낳곤 해. 그러니 더더욱 ‘합의’의 소중함에 끄덕여지고. 한국은 여러 토대가 네덜란드와 다르니 바로 견주어보는 건 좀 무리지만, 들여다보면 짚어볼 만한 부분이 있을까 하고 적어봤어.
우리는 죽을 둥 살 둥 왔는데 이제 여기잖아. 그러다가 아프리카나 중동 거리에서 오늘은 몇십 명이 죽었다...이런 뉴스 날마다 들으면 이만큼 온 것도 굉장하다 싶고 그래.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엔 그래도 내가 어디 가서 기 안 죽고 다녔거든. 그때 언젠가 네덜란드 친구가 그러더라고.
“한국은 아직 한참 ‘영 데모크라시야’.”
맞는 말인 줄 아는데,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오기가 얼마나 어려웠는데,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지 너는 모른다, 너는 태어나보니 사회복지국가에다가 민주사회에다가 그랬잖아 하며 발끈하고 그랬어.
그 ‘영 데모크라시’라는 말이, 대통령 바뀐 것만으로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말이었고, 곧 넘어져서 겨우 일어나 또 조금 걷다가 또 넘어지고...뭐 그럴 거라는 거 나중에 깨달았지.
그 친구는 나중에 이런 말도 했어. 한국 사람들은 사람 얼굴 볼 줄 모르느냐고. MB 보고 한 말이야.
# 생일 트윗 설전 펼친 두 사람. 누가 누군지 얼굴 보면 알겠지?
마지막으로 한가지.
2002년부터 선거를 4번 했거든. 그러니까 연정 꾸리는데 반년씩 보내고 몇 년 하다가 깨지면 다시 선거하고 그러는 거야. 이게 무슨 짓인가 싶고, 이래도 나라가 돌아가는구나 싶었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권교체가 그만큼 어렵지 않다는 말도 되잖아? (한국의 다음 선거를 목놓아 기다리는 심정 때문에!)
그리고 그 징한 토론과 합의과정을 생각해보면, 보고자가 여왕과 협상당사자들 사이를 진전 없이 왔다갔다는 과정, 각 정당 안에서 지지자들과의 피드백, 저잣거리 여론, 교감, 그 모든 절차가 그 자체로 민주주의구나 싶더라.
새 정부가 출범해도 마찬가지야. 토론,토론,토론,조율,조율,토론,파기,조율,조율,토론,토론, 토론.... 어쩌겠어? 한쪽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데. 뭐 화끈하게 되는 게 없지. 근데 크게 잘못된 길로 가거나 엉망으로 하는 것도 없는 거지. 지금 3당 연합도 언제까지 갈까 하고 지켜보는 사람도 많아.
그렇게 민주주의는 지겹고 짜증스럽고 열 받고 그런 과정이더라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는 그 지루함을 견디는 냉철한 이성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 그 틈새시장을 노려 선동꾼이 나타나기도 하거든. 지루함에 지친 사람들, 화끈한 리더쉽을 기다리는 무지렁이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는.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위험한 사람들이고. *벨기에는 정부 내각이 아직 안 꾸려져서 여성의원이 섹스 파업을 주장하기도 했다잖아?
이 ‘무정부’ 상태가 6월 13일이면 꼭 1년이 되는데, 유럽 기록 208일(네덜란드,1977년)은 일찌감치 경신했고, 이라크가 289일로 기네스 세계 기록이었는데 그것도 깨졌군. 남자들도 뭔가 해야지?
벨기에 배우 한 명은 정부 구성 때까지 면도하지 않겠다고 올해 1월에 선언했대.
800명가량의 남성들이 이 ‘수염 항거’에 동참했나 봐. (http://www.unebelgiqueaupoil.be/) 그런데 이 항거를 이끌었던 당사자는 얼마 전에 참다 참다 면도를 했다고 뉴스에 나왔더라고. 올해 유럽의 봄이 예년보다 꽤 기온이 높거든. 너무 덥고, 희망도 없고, 어디 캐스팅도 됐고...뭐 그렇대. 아직 버티고 있는 ‘수염 항거자’도 있어. 방송인 쿤 필레Koen Fillet라고.(트위터@filletk) 수만명이 참가하는 거리 시위도 있었어. 대학생 몇이서 ‘SHAME’(http://www.230111.be/) 이라는 이름으로 사이버 항의에 이어 실제 시위를 인터넷에서 조직했지. 플래카드 들고 앞장선 대학생들 보니까 그래도 이 나라, 괜찮지 않아?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