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덥고 ...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여 슈퍼에 들렀다.
주인할머니가 담배 한 대를 물고 반겨주신다. 옆에는 가끔 보던 낯익은 청년이 뻘쭘히 서있다. "손주지요?" "예, 외손주 ... 웃넘은 군대가고 ..." 한참 담배를 뻐끔거리시더니 "그나저나 ... 후휴~ 뻥긋하면 사고니 ..." 못마땅한듯 연기를 뿜어대신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다고 글케나 사람을 죽이면 ..." "아, 그런 소리 마쇼. 월매나 괴롭히면 그랬것소!" 할머니의 말씀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랬다. 막걸리 한병 달랑 사들고 ... 걍 인사차 별 뜻없이 주고 받은 말인데 ... 너무 의외다 싶어, 마침 비어있는 의자에 앉아 본격적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아, 할머니. 글타고 사람을 그렇게 하면 안되죠" "난 그렇게 생각안허요. 나라도 가만 안있것소 ..." 분명한 어조로 힘주어 말씀하신다. 참으로 난감했다. 사랑하는 손주를 군에 보내놓고 걱정하시는 할머니의 마음. 십분 이해간다. 그렇다고 동조해드릴 수는 없었다. "할머니. 모든 걸 그렇게 극단으로 하면, 이 세상 가만 둘 넘 어디 있어요?" "그러긴 그러지라. 그래도 나는 그넘 잘못했단 생각이 안드요." 설득하긴 이미 틀렸다. 이쯤해서 물러날 밖에 ...
뎅그랑 막걸리 한병을 손에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오는 동안 툭하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할까. 가해병사도 피해병사도 ... 다 피해자인데 ... 이걸 한 병사의 정신적 문제라고만 돌리기보다는 근원적으로 및 국가적 시스템으로 막을 수는 없을까.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80년대 초반의 일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1년 후배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친매형의 바로 밑에 동생이다.
당시 흑석동에 살 때인데, 갑작스럽게 매형의 방문을 받았다. 국립묘지에 그 후배를 안장하러 왔다고 했다. 깜짝 놀랬다. 사연의 대강은 이렇다.
사고가 나던 날 하필이면 그 후배가 주번사관이었다. 그날 밤, 취침 전 마지막 점점을 하러 각 내무반을 순찰하던 중 입구가 어지럽혀진 모습을 보고 "이거 뭐야!" 소리를 쳤다. 그러자 순간,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는 난사당해 순직했다.
문제를 일으킨 병사는 제대말년병이었다. 마지막 회식을 하면서 ... 평소 앙숙이었던 병사와 또 티격태격 ... 급기야 술에 취해 ... 평소 불만이 있던 병사를 향해 죽여버리겠다며 나가더니 총을 들고 들어왔고, 그 상대편 병사는 황급히 몸을 피했다. 그 찰나였다. 앞뒤 상황을 전혀 모르고 후배가 점검차 들이닥친 거다. 이것을 문제의 병사는 피했던 상대방이 자기를 공격해 온 것으로 착각하고는 방아쇠를 당겨 버린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아까운 한 생명이 지고 말았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런 사건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말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우선 개인적으로 나무랄 수 있겠고, 잘못된 집단문화를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것은 남북분단이라는 상황이고, 또한 시스템관리의 부재라고 본다. 다들 예전에 비해 병사들의 병영생활 수준이 높아진 것을 말하는데 이건 또 다른 차원이다.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도 있잖나 ... 여기서 빈곤이란 가치부재라고 말하고 싶다. 이 경우, 가치부재는 ... 분단의식에 대한 부재로부터 시작해 ... 올바른 집단문화의 부재 ... 개인존중의 부재 등등 ... 여러가지 것을 총칭하는 말이 될 것이다.
우리 이런 문제들을 남의 일로만 간과하지 말자. 피해병사나 가해병사나 모두 우리의 아들들이다. 우리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고 있고 방치하고 있는거다. 부디 후손들에게 좋은 나라를 만들어 주자. 안전하게 숨쉬고 편안히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 후 ... 말 안해도 잘 알거다. 이번 총기사고로 숨진 병사들의 영면을 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들아 ... 부디 우리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더불어 유가족에게도 깊은 위로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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