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병원 장례식장 306호 이만호.
아침에 강사장이 그의 죽음을 알려줬다. 옆집 박형에게 전화를 걸어 장례식장이 어딘지 알아두었다.
재작년 구제역파동으로 전쟁이래 소키우는 이와 안키우는 이의 심리전이 벌어졌다.
차 바퀴에 묻어오는 모든것들이 그들의 적이었으며 출퇴근하는 차량의 머리위로 쏟아지는 소독약은 누구라고 봐주지 않았다.
소키우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알 수 없는 미소들이 그들의 얼굴에 가득했다. 왜그리 추웠는 지
구제역 파동이 거세질 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힘들었다. 하루 16번 뒤집어써야 갈 수 있는 내 침실
그나마 집앞까지 갈 수도 없어졌다. 동네 근처 진우까지 소를 매몰처리하자 축사를 가진자들의 눈은 더욱 깊어지고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칠고 행동은 난폭했다.
구제역 파동이 시작되던 날 도로가 터억하니 막혀서 이리저리 돌아 겨우 집에 돌아온 그는 시청이며 동사무소, 경찰서 민원실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어 전화를 돌렸다.
화근은 그것.
동네사람들의 척을 진것이다.
아내와 두 사람의 차량은
동네 그 누구의 차보다 세찬 소독세례를 받았으며 소독기구가 설치된 브스를 통과해야하는 모욕적인 날이 시작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대체 왜 내가 병원균의 원인을 제공한 자로 우리가 왜 동물원 원숭이처럼 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길을 지나가야 하는 지 불쾌한 마음에 입안에 쓴물이 고였다.
그해 겨울 지하수조차 먹지 못하는 불신의 시간 도로에 주차를 하고 카트에 생수를 실어나르며 마트에서 좋아하는 과일이며 생선조차 추위에 들고 나르기 싫어 참어야했던 시간
그 무리들 사이에 그사람이 있었다.
그때 우린 알았다. 웃으며 지나 다닐때 주고 받았던 인사. 그들은 우리와 다른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고개 숙여 인사할 때 더 낮은 인사로 우리에게 공손을 떨어대던 동네 축사주인들.
구제역이라는 대란을 겪으며 심란한 길모퉁이를 돌아오다 만났던 만호. 사람 좋은 웃음으로 멋적게 머리를 긁적이던 나이가 65세
삼촌뻘 되는 그는 먼저 웃어주며 말을 건네곤 하였다. 작년 봄 농사에 새로산 밭을 슬며시 자랑하며 부끄러워하던
67세 이만호 기독병원에서 간암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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