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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한직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한직은 일거리가 없고 부수입이 없어서 지원하는 사람이 없지만 책을 읽고 공부하는 데는 안성맞춤이어서 나는 책을 실컷 읽을 생각으로 한직을 지원하게 되었다. 내가 부임한 곳은 오전에 일하면 오후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한직 부서의 상사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근무시간에 신문이나 잡지책을 보기도 하고 잡담을 즐기고 졸기도 하는데 나의 상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업무가 끝나기만 하면 책을 펼쳐 들었다. 상사는 내가 책을 읽는 것을 싫어했다. 다른 사람은 상사와 잡담도 하고 저녁에 술도 마시면서 비위를 맞추기도 하지만 나는 술자리를 빠져나가기 일쑤이고, 비위를 맞추는 일에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어서 그것이 상사의 비위를 더욱 거슬리게 했다. 그렇지만 내가 업무를 소흘히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아끼려고 외출을 삼가하고, 사무실에서는 신문도 읽지 않아서 상사로부터 폭을 잡힐 이유가 없었다. 직원들 치고 상사로부터 주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늦게 출근한 사람,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운 사람, 외출했다가 늦게 들어온 사람, 근무실적이 나쁜 사람 등.. 상사는 하급자에게 주의 주는 것을 즐기곤 했다. 나는 출근시간에 늦은 적도 없고 화장실에 가는 일 외에는 자리를 거의 비우지도 않아서 주의를 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 상사의 자존심을 더욱 건드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갓 배달된 석간신문을 무심코 뒤적거리다가 상사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이보시오! 근무시간에 신문을 봐도 됩니까?” 상사의 호통 소리에 20여 명의 직원들이 모두 신경을 곧추세웠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 동안 참고 있었지만 오늘은 도저히 못 봐 주겠구만. 도대체 당신은 근무자세가 돼 먹지 않았단 말이오. 업무와 관련 있는 책을 읽는다면 모를까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책만 읽고 있으니 누가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겠소?” 상사는 나에게 품었던 불만을 한꺼번에 풀려는지 얼굴이 온통 불만과 노기로 가득차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보시오! 우리 사무실에서 당신처럼 업무와 상관 없는 책을 읽는 사람이 어디에 있소?” 직원 중에는 빈둥거리기가 싫어서‘세월아 네월아’하며 할 일도 없는 일을 하루 종일 붙잡고 늘어지는가 하면 상사가 자리를 비울 때는 놀다가 상사가 자리에 앉으면 열심히 일하는 척하기도 하고, 퇴근시간이 임박하면 그제야 일거리를 펴들고 부산을 떠는 직원도 있었다. 그렇게 해야 상사의 눈에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상사의 언성이 더욱 높아 갔다. 문득 나의 눈에 상사의 얼굴이 도깨비로 보이기 시작했다. 분노로 가득차고……. 얼굴에 핏발이 서고……. 그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깨달음이 있었다. (상사는 지금 나를 공부시켜 주고 있다. 자기처럼 화를 내면 도깨비 얼굴이 되니 화가 나더라도 화를 내서는 안된다면서 나에게 시각적으로 교육을 시켜 주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대체가 돼 먹지가 않았단 말이야.” “…………” 나는 글에서 읽었던 수승화강(水昇火降)을 실감했다. 수승화강은 찬 기운이 얼굴로 올라가고 뜨거운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사람이 화를 낼 때 얼굴이 붉어지는 이유는 반대로 뜨거운 기운이 얼굴로 올라가기 때문이다(火昇水降). 수행을 하고 도를 닦으면 수승화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침착해지고 냉정해지기때문에 마음을 닦는 사람은 화를 내지 않게 되고 체질개선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상사의 얼굴은 열기로 가득차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었지만 나는 열기가 오히려 차가워지는 것을 체득하면서 나의 깨달음을 위해 교육을 시켜주고 있는 상사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직원들 앞에서 사과하시오!” “?”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상사가 소리를 지를 수록 나의 마음은 더욱 식어 갔다. 나는 상사의 요구대로 직원 앞에서 사과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상사는 저항하지 않는 내가 싱거웠는지 아니면 스트레스를 모두 풀기라도 했는지 나를 놓아 주었다. 상사가 밖으로 나가자 직원들이 몰려와 한 마디씩 했다. “수모를 참고 견디는 것을 보니 인내심 한번 대단하구만.” “더러워서 어디 직장 생활 해먹겠나? 내가 열 뿔이 나서 참느라고 혼났어. 스트레스를 풀겸 퇴근할 때 쏘주라도 한잔하자고…….” 나는 상사 덕분에 수행을 하지 않고 도를 닦지 않아도 수승화강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상사가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상사는 나에게 수승화강을 체득하게 해 준 고마운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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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