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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여덟 고등학교 2학년 봄에 쉰하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어린상주들 앞에서 친척 분들과 문상객들은 아버지의 젊은 나이를 애통해하셨다.
그 당시 나에게 아버지는 결코 젊으신 분이 아니었는데 세월이 지나 내가 마흔에
중반을 지나니 이제야 아버지께서는 참 젊으실 때 돌아 가셨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기억하는 아버지는 많이 보수적이신 분이었다.
우리 5남1여 남매들은 누구도 아버지가 퇴근하시기전 잠든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출근 하실 때는 늘 문 앞에서 어머니와 단체인사를 했었다.
당연하지만 무척이나 권위적이신 아버지를 당시 나는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들의 방은 절대 열어보시지도 들어오지도 않았다.
딱 한번 내방 창문이 고장 난 일로 수리하러 들어오시고는 벽에 도배되어있는
당시 최고스타 이선희 사진과 제임스 딘 사진을 한동안 물끄러미 둘러보시고는
한중아 니는 이선희가 이쁘다고 생각하나? 한 말씀하시고 나가셨다.
그날이후로 왠지 이선희가 별로 이쁘지 않게 보여 사진을 떼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아버지는 참 멋있는 분이셨다는 것은 인정해야한다.
내가 좋아하던 제임스 딘처럼 늘 포마드기름으로 올백머리를 하시던 아버지
날마다 많은 자식들이 돌아가며 닦은 구두를 정갈히 신으셨던 아버지
어머니께서 깨끗하게 다려놓으신 흰 와이셔츠를 즐겨 입으시는 아버지
그 당시 어른들 중 가장 훤칠하신 키에 더블 자켓이 잘 어울리시던 아버지
집에 손님 데려 오는 것과 친척들 집안일 챙기는것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돌아가시던 해에는 집 인터폰을 누르지 않고 한잔 하시면 문 앞에서
조용필의 못 찾겠다. 꾀꼬리를 부르시며 어머니를 부르시던 아버지.
어느 여름밤 얼큰하게 취하셔서 육남매가 하나씩 먹어야 한다고 여섯 덩이의 수박을
사와서는 한통씩 자식들에게 먹으라하시며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아버지
지금 생각하니 그런날들은 아버지가 세상에 부딪히고 조금은 좌절하신날 같다.
당시 나의 학창생활은 그래도 믿는 아버지가 있어 마음껏 불량함과 저항을 펼칠 수 있었다.
솔직히 책에나오는 사춘기 방황이라는 표현 보다는 불타는 호기심의 연속이 맞을 것 같다.
불량함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당구장을 드나들며 중학교 때 배운 술. 담배를
질풍노도의 영웅들의 상징처럼 여기며 한마디로 거침없는 사춘기 시절이었다.
그런 나를 아버지께서는 어린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게 별로 나무라지 않으셨다.
세월이지나 어머니에게 들으니 내가 작은 사고를 칠 때 마다 아버지께서는
자식이 많으니 한 놈이 저러는 것이 당연하다. 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나뿐만 아니라 어느 자식들과도 대화가 별로 없었다.
고1때 가출했다가 형에게 붙잡혀 집에 들어온 날 마당에 혼자 있는 나를 지나치시며
어떻게 하던 학교는 가라. 공부는 하고 싶을때 해라. 니는 아버지회사 다니면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름 지역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런 형들이 왠지 싫었다.
형들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아버지께서는 사정없이 회초리를 드셨다.
나는 중학생이 되었을 때 확실히 아버지의 관심에서 벗어나고자 공부를 접었다.
통지표에 부모님 확인도장을 받을 때 아버지가 물어보시면 나는 공부가 싫다고
당당히 말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한번 도 아버지는 나의 성적을 나무라시지 않았다.
이미 아버지는 나의 반항을 알고 계셨고 저놈은 공부보다 잘하는 것이 분명 있으니
가만 놔두면 된다고 어머니에게도 공부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단다.
그런 아버지께서 간암으로 결국 자식인 나와의 약속을 못 지키시고 돌아가셨다.
회사동료분이 아프신데 병원을 안가시니 데리고 가셨다가 함께 검사를 받았는데
그분은 괜찮으시고 아버지께서 석달남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그날 밤도 나는 친구들과 동네 당구장에서 열심히 반항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가니 외지로 직장과 대학을 갔던 형들이 와 있었다.
늦어도 나는 늘 인터폰을 누르고 무사히 집에 귀가한 것을 아버지께 간접적으로 알렸는데
평소 문을 열어주는 어머님이 안보이고 굳게 닫힌 안방문과 머리를 숙이고 거실에 앉아있는
형들의 모습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대구에서 내려온 큰형이 나를 불렀다.
아버지 얼마 못 사신다. 너까지만 알고 있어라. 동생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오늘 아침까지 아무 이상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말인지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형들은 다시 학교로 직장으로 돌아가고 일주일쯤 아버지는 그렇게 집에 계시었다.
나는 그날이후로 대장에 대한 도리인가? 아님 의리였던가? 학교를 마치면 땡하고
집으로 왔었다. 아프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에서는 내가 넘버 투라는 생각으로..
서울 기도원으로 떠나시기 전 일주일 내내 동생들과 노래 부르고 귀여워해주시는
평소 못 보던 아버지 모습을 나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께서는 일주일후 아침 일찍 그렇게 어린자식들을 남기고 서울로 떠나셨다.
마지막 배웅하러 오신 고모님들과 인척 분들의 눈물에도 오히려 담담히 위로하시고
택시에 오르시던 모습이 내 기억에 마지막 남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떠나시고 나는 아버지의 석달남은 시한부 인생을 잊어버렸다.
학교에서 야간수업을 못한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은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야간수업을 빠지고 다음날 아침에 비록 맞을지라도 아버지이야기를
선생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왠지 말하면 정말 돌아가실 것 같아서..
집에는 큰형과 서둘러 약혼한 형수와 동생들이 있었고 나는 한시적 가장이 되었다.
어린동생들은 아버지가 조금 아프셔서 서울 병원에 가신 걸로만 알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나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평범한 대화만 주고받았다.
어른이 되어 생각하니 아버지는 그때 가장 걱정되는 자식인 나를 마치 특별히 중요한
임무를 주신 것처럼 하여 마지막 아버지와의 못다 한 이야기를 하신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어느날 1교시 마칠 때쯤 선생님의 호출로 교무실에 내려갔다.
니 집에 아버지 아프셨나? (네.) 그런데 와 말 안 했노? (그냥요.)
니 그래가 야간수업 안했나? 아버지 돌아가셨다. 집에 가봐라 (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가방을 챙기고 나서는데 친구놈이 어디 가냐고 물었다.
(아버지 돌아가셔서 집에 간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 내내 슬퍼야 하는데 나는 왜 안 슬플까를 생각했다.
동생들 학교에는 내가 전화를 했다. 아버지 돌아가셨으니 집에 보내달라고..
중학교1학년인 막내놈이 저 멀리 사거리부터 가방을 질질 끌며 울고 온다.
외할머니가 달려가서 막내놈을 끌어안고 우신다. 그래도 나는 슬프지가 않았다.
오후가 되어서 아버지는 엠불란스에 실려 어머니와 형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상을 치루는 내내 나는 하나도 안 슬픈 내가 아버지를 배신 한 것처럼 싫었다.
세월이지나 군대를 전역하고 아버지의 병상일기에서 나와 나눈 대화를 발견하였다.
일기에는 가장 속 썩이는 아들을 믿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작은 의지를 하셨다니..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전화로 나와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하셨다.
세월이 흘러도 나는 차마 못하고 산소에 가면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사랑해요.를 시킨다.
이제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다. 조만간 아이들 데리고 아버지 산소에 가야겠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 앞에서 내가 먼저 아버지에게 사랑합니다. 한번 해야겠다.
내 늦둥이 아이들은 나와 사자놀이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늘 크고 힘센 아빠사자이다.
목청껏 어흥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은 나의 품으로 파고들며 재빨리 숨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몸을 비비고 고양이처럼 작은 소리를 내며 하이에나와 호랑이를 혼내 달라고 한다.
아빠사자는 나쁜 호랑이와 하이에나에게서 새끼사자들을 언제나 지켜주는 그런 존재이다.
그렇게 나는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사자로 지켜 줘야하고 곁에 있어줘야 한다.
내 마음속에도 아버지는 나를 가장 믿어주고 지켜주는 영원한 아빠사자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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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