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2 때 내가 꿈에도 그리던 우열반 수업을 드뎌 우리학교에서도 실시한 거다. 지난 몇달간 옆 학교 친구들을 통해 우리같은 특정 부류들이 그야말로 환상적인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다 전해들은 <우열반 수업>이라는 극강의 시스템이 드뎌 울학교에도 상륙한 거지.
우열반은 국/영/수 세 과목에 한해.. 3개의 반을 섞어 흔든뒤, 우수/그럭저럭/열등 세부류로 나눠서 수업을 듣는 거다. 그 시간만 교실을 이동하는 거.
이 시스템의 우수성은 스승님이 제자가 수업을 듣는지 안 듣는지 감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어, 동숙이가 안 보이네?' '아하.. 열등반에 있나보군' 이런 거지.
우열반 수업 초창기엔 물론 학교 안 어딘가에서 놀았다. 1시간, 또는 2시간으론 멀리 출타하는 건 쉽지않았으니까. 근데 네 분의 스승님들이 연이어 출산휴가를 내는 바람에 시간표 조정이 있었고.. 그에 따라 수요일 1,2,3 교시가 몽땅 자유시간이 되는 혁명적 사태가 도래한 거야. 아주 노가 난 거지, 노가!
3시간 연속 자유가 주어지는 첫 수요일, 난 이쁘게 차려입구 전철 타고 경복궁 꽃놀이패에 다녀왔다. 근데 다녀와보니 교실 분위기가 되게 안 좋은 거야. 중간에 가방 사려고 종로를 헤매느라 시간이 좀 초과하긴 했지만 4교시 스승님이 대체 누구였길래 친구들이 일케 나를 안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나 했어.
씨,바, 4교시가 담탱이 수업이었다네..? ㅜㅜ
내 키가 젤루 작은 것도 아닌데 특별한 주의와 관심이 요구되는 재목으로 분류해 나를 정가운데 맨 앞자리에 앉힌 그 담탱이..ㅜㅜ
애들이 내게 전한 바는 이렇다.
-밥풀이가 장난끼는 쩜 지나친 면이 있지만 악질은 아니다 -또 아무리 간땡이가 츠부었어도 담탱이 시간을 뺑뺑이 치는 악질은 없다
담탱이가 위와 같이 말하니까 애들이 일단 쩜 웃었나봐.
근데 느닷없이 담탱이가 화를 막 내드래. 지금 웃음들이 나오냐구? 이건 분명 사고라구. 그럼서 정신이 나간듯이 교탁을 타 뛰넘어 내 책상 밑에 있던 가방을 막 뒤졌단다. 근데 내가 그날 자율학습시간은 학교 옆 싸우나에서 보낼려고 장비를 좀 챙겨왔었거든. 주황색에 흰 반점 들어간 비키니 수영복, 물안경 2벌, 발에 끼는 지느러미, 수건 몇 장, 잠수부들이 물안경이랑 연결해서 숨쉴 때 쓰는 지팽이 모양 그거.(=야광연두 스노클) 거기다 갈아입을 속옷 몇 장, 등등
내 가방 내역을 확인한 담탱이가 울기 시작하드랜다. 얘 이미 오래 전에 집도 나왔던 거라구. 자기는 그것도 못알아챈 스승인 거라구. 그리고 현재 밥풀이의 4교시 무려 담탱이 수업불참은 사고를 의미하는 거라구. 긴가민가 하던 애들도 분위기 막 숙연해지고..
자초지종을 동료들에게 대충 전해들은 뒤, 상담실로 황급히 담탱이를 달래주러 갔는데 아직까지 훌쩍이고 계셨다. 어찌된거냐기에 꽃놀이 갔다가 제 시간에 올 수 있었는데 우리동네 프로스펙스 매장엔 품절된 모조가죽 가방이 종로 매장에 2개 남았다는 제보 땜에 거기 댕기오느라고 이렇게 됐다고..면목없다고..방금 산 가방을 보이드렸다.
담탱이는 사고가 아님에 안심했고, 되게 망설이는 투로 "근데 집엔 언제쯤....?" 일케 말끝을 흐리셔서 단호하게 "오늘은 꼭 들어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나 가출한 거 아니고, 그것들은 싸우나 냉수탕 용 연장이다.. 어쩌구 구질구질 늘어놓을 분위기가 아니기도 하구..)
졸.라늬우스
거짓말은 나쁜 거지만 그 상황이 참 그래..
내가 "나 가출한 거 아니거든요?" 강하게 외칠수록 "가출한 걸 애써 숨기려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상황. ㅋㅋ 거기다 일단 담탱이의 감정을 가라앉히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었다. 애들 말에 의하면 헉헉 울다가 수업 못하겠다고 상담실에 혼자 틀어박혀 1시간 가량 우울해하고 계셨던거니까. -.-;; 상담전문 스승님이었는데 상담받아본 애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야, 상담스승님 핀트는 참 못마추는데..묘하게 그러지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타입이다.." ㅎㅎㅎ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