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후배님네 집주변에 텃밭이 있는데 후배님 부부가 농사경험이 없어서 작년에도 그냥 묵혔길래
올해는 그대로 둬서는 안되겠는지라 자청해서 텃밭을 일궈주기로 하고 제 집사람하고 후배님 부부하고 같이 삽으로 파고 .... 쇠스랑으로 털고 ....
후배님 모친께서 소천하신 후 7년여를 그냥 둬서인지 자라난 잡풀하며 .... 등등 작업량이 말이 아니게 많았습니다.
한참을 일하고 난 후 점심을 먹고, 잠깐 쉬자고 해서 쇼파에 드러누워 있으려니 ....
예전부터 버릇이 그냥은 못자는 아주 못된 습관이 있어서 다시금 일어나 후배님 서재에 들어가 아무 책이나 보면서 자려고 선책하던 중, 다른 책들은 피곤하여 애써 피하고는 부담없는 책으로 고르다보니 ....
빛바랜 조그마한 문고본이 눈에 띄더군요 1962년 출판된 <素月詩選>이었습니다.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누렇게 빛이 바랜 신문갱지위에 옛모습의 활자체로 새겨진 <금잔디> <초혼> <진달래꽃> 등등의 시선이
아름답게 장식된 현대식 시집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오전 내내 작업으로 지친 나른한 육신에 뭔가 말로는 표현해 내지 못할 감동을 주면서
오늘이 가고 나면 변함없이 부딪혀야 하는 살엄음 판의 트레이딩 전쟁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더라구요.
보름 후나 한달 후, 길게는 찬서리가 나야만 소출할 수 있는 상추며 아욱이나, 쑥갓, 케일, 봄배추, 봄무우, 토마토, 오이, 수박, 참외,옥수수, 들깻잎, 파, 가지, 감자, 고추, 호박, 고구마 등등 무려 열여덟 종이 넘는 채소와 과일들의 풍성한 모습과 함께 ....
일주일에 닷새를 컴 앞에 앉아 하루 24시간 꼼짝 못하고 가슴만 졸이다가 접하는
모처럼만의 노동은 <실락>했다가 다시 찾은 <아담과 이브의 동산>처럼 저와 제 집사람에게 <되찾은 안식>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점심을 들고난 후의 나른한 포만감과 소월의 시와 풍성한 소출의 상상이 합하여져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가물가물 눈꺼풀이 무거워져 오더군요. 소월의 시심을 그리워하고 부러워하며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또다른 문학의 열정을 실낱같이 느껴보면서 다시 할 수 있을까 하는 은근한 걱정과 함께 ....
그리고는, 꿈꾸듯 다음날 있을 트레이딩 살육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애써 눈을 뜨고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몇번이고 되뇌이고 되뇌이면서 .... 읽고 또 읽고... 하다가는/ 스물스물 밀려오는 잠을 못이겨 살포시 쇼파 위에 잠이 들었답니다.
한참이 지난 주일에, 예배 후 점심을 같이 먹는데
고구마가 다 죽었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가보았더니 고구마는 이상이 없고 ....
------------------------- ㅋㅋ~ 고구마는 그렇잖아요. 활착할 때까지는 이파리를 죽이고 줄기를 살리는 무서운 전법. 고구마만의 생존전략입니다. 고구마는 왠만해서는 죽지 않습니다. 줄기만 살아 있으면 무조건 살아납니다. 우리 참여당도 제발 고구마 정신으로 살아났으면 .... --------------------------------------------------
싱싱하게 자란 잡풀과 더불어 송알송알 맺힌 토마토 알갱이와 마디마디 열매 맺은 오이와 애호박의 가녀린 넝쿨이 사알짝 전율로 스치면서 뭔가 모를 메세지로 강하게 박혀오는 것이었습니다.
"소망과 결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몇주 전 .... 씨 뿌리던 모습이 새김질되면서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입가에서 저절로 "산유화"가 흘러 나오더라구요.
저와 여기 계시는 봉팔러들 모두 다 호박넝쿨 열리듯 복덩이가 주렁주렁 널리시길 두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 그리운 素月 아, 그리운 文學 내 언제나 이 짜릿한 안식처에 다시 들어가 볼꼬.
제가 속한 인천참여당 여성위원회에서 마련한 텃밭 가꾸기에서 딸과 함께 화분에 고추 상추 토마토 심어왔는데요...상추가 제법 자라서 어제 6장이나 따서 맛나게 먹었어요... 작고 야들한 상추입한테 괜시리 미안하기까지 하더라구요 딸아이도 무척 좋아하고요...생명을 가꾸고 또 그 생명이 저에게 보시해주는 그 자체가 신이 말하는 사랑도 그 속에 있나봐요... 노란 참외가 참 탐나네요 ㅎ ^^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