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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잘 다녀왔습니다.
1. 분단의 말뚝을 넘어서
금강산 가는 날 이다. 하늘은 맑고 구름도 깨끗해 보이고, 새로 장만한 등산화 덕분인지 발걸음도 가볍다. 지하철4호선 전구간의 정전사고로 평촌 지하철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오느라 일행과 만나기로한 주차장에 10분 늦게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니 먼저 오신 동료들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드디어 버스는 한강변을 따라 가다가 홍천을 거쳐 진부령을 넘어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간성 쪽으로 내려간다. 어느덧 백담사 가는 길이 보이고, 그 옆에 ‘대통령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사람은 없고 그 규모만 자못 크다. 버스는 긴 해송 숲을 따라 달려가더니 오른쪽 차창에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난다. 남한 최북단 바다다.
금강산 콘도주차장에 도착해서, 관광증을 수령하고 버스는 다시 북쪽으로 올라간다. 민간인은 통과할 수 없는 민통선을 지나, 남측 출입관리 사무소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제부터 금강산전용버스로 갈아타고 비무장 지대로 들어간다.
비무장지대를 지나는 버스차창으로 비스듬하게 서있는 낡은 콘크리트 말뚝이 보인다. 순식간에 지나친다. 개성에서 금강산까지 한반도의 허리를 남과 북으로 나누고 있는 휴전선이다. 분단의 상징 남북방 한계선 3~4km 비무장지대. 이 완충지대에는 남쪽도 북쪽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50여 년간 자연만이 주인이었던 중립지대이다.
휴전선을 얼마 앞두고 안경 낀 한국군 헌병이 서 있는 초소를 지나간다. 철모를 깊게 눌러쓴 그는 차에 오른 뒤에도 침묵하고 인원만 셈한다. 북쪽으로 조금 더 가니 불현듯 북측 초병이 눈에 들어온다. 북한 군인이다.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얼굴로 서 있는 북측 초병은 무표정하다. 그로 인하여 북측 출입관리소는 낯선 땅으로 다가온다. 북한 땅이다.
차는 다시 북쪽 방향으로 올라간다. 차창 밖으로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이 있고, 드문드문 붉은 기 들고 있는 북한 군인이 보인다. 금강산 가는 길 양쪽은 모두 민둥산이다. 불 질러 숲을 없앴기 때문이란다. 민둥산 자락에는 농막과 같은 차고시설이 있고 그 아래 군 트럭이 주차되어 있다.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북한 군인들을 보며, 아까 지나쳤던 남과 북의 청년 군인들의 침묵과 무표정이 생각난다.
2. 온정리, 고성항 횟집 그리고 북한 여성
온정각을 거쳐 금강산관광호텔에 도착한다. 현대와 북측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호텔이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눈부시게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받쳐 입은 북한 안내원 여성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참 곱네요. 잠시 스케치 좀 하겠습니다. 화가십니까. 아니요. 그냥, 잠시만 실례합니다.’ 몇 마디 말로 바로 친숙해진 듯하다.
객실에다 짐을 놓고 버스에 오르니 관광조장이 온정각 앞 넓은 주차장에 내려주고 주변 식당에서 식사하란다. 주차장 여기저기서 동료들이 서로를 부른다. 오늘 밤은 고성횟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금강산의 첫날밤을 함께 보내자고 한다.
고성횟집의 북측 접대원 여성들은 청순한 얼굴로 주문을 받고, 표정도 밝고 말솜씨는 재치가 있다. 그들의 화사한 젊음에 자연산 회가 어우러져 고성횟집은 싱싱함 그 자체다. 접대원여성이 따라 주는 북한 술을 주고받으며 웃음과 얘기보따리가 하나가득하다. 북측 접대원 여성 덕분에 더욱 편안한 술자리가 된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성은 옆에 동료와 동성동본인 먼 일가라고 한다. 대략 20촌..
고성횟집에서 바라보이는 건너편은 고성항이다. 낮에 많은 건물들이 보였는데 밤이 되니 보이는 것은 불빛 한 점 없는 검은 실루엣의 금강산뿐이다. 전력사정이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밤늦게 호텔로 돌아와 호텔 앞에 설치된 포장마차에서 다시 술자리가 이어진다. 포장마차의 접대원 여성은 술 권하는데 더욱 적극적이다. 우리 대화 속에 함께 넘나들며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술자리 마칠 즈음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맘을 글로 써달라고 했더니, 통일 이야기이다. 북한 술로 너무 취해 그녀가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그 글은 내 수첩에 남아 있다.
3. 구룡연과 상팔담, 곱기만 하더냐.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창밖 풍경을 본다. 산은 어제의 그 산인데, 9층에서 바라본 주변은 낯설게도 군인 숙소와 북한직원들 숙소 등 그들의 거주지가 아주 가깝다. 호텔 옆에는 “21세기의 태양 김OO”등 선전간판으로 주변은 붉은 글씨 천지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북한군 트럭 3대가 지나간다.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북한군들도 쉽게 바라보이는 곳이라니, 북한 땅임을 일깨우는 아침이다.
금강산 구룡폭포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에서야 금강산을 만난다. 차창으로 금강 소나무들이 붉은 색을 드러내며 용솟음치듯 서있다. 목란관 입구 주차장에서 관광조장과 함께 간단한 체조를 하고 우리는 금강산을 오른다.
길옆으로 수천, 수만의 바위 덩어리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우뚝 우뚝 솟아있다. 계곡 이곳저곳에 집채만 한 바위덩어리가 널려있다. 모두 오랜 세월 닳아서 둥굴둥굴하다. 금강문을 지나니 넓은 계곡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옥류동 계곡이다.
옥류동 계곡의 맑고 짙은 옥색의 물은 사람 넋을 잃게 할 것 같다. 옛 선인들이 이름 지어 부른 바로 그 명경지수가 이런 건가 보다. 계곡에는 바위마다 옛 사람들의 이름이 어지러이 새겨져있다. 평안감사 이OO, 관찰사 김OO 등 빼곡히 새겨져 있는 이름을 보니 옥류동 계곡물이 그들에게 풍류를 즐기도록 옥색물속에 몸을 담그도록 유혹했을 것 같다. 기암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구름다리를 지나고 드디어 구룡연이다. 120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폭포로 백룡이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듯 하다는 그 전설의 폭포다.
구룡연 가는 길옆으로 사이길이 있다. 그 길은 대부분 아찔한 계단이다. 그 길 타고 금강의 비경과 함께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이 깃든 상팔담으로 오른다. 모두 1008계단이라고 누가 그렇게 말한다. 정상의 작은 봉우리에 오르니, 북측 남성안내원이 기다렸다는 듯 한바탕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전설을 말하기 시작한다. ‘아래 원뿔 모양의 봉우리를 돌아 흐르는 여덟 개의 못이 보이지요. 연못은 모두 옥빛이며, 연못의 물은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습네다. 그런데 유일하게 세 번째 못은 잔잔한데 그곳이 선녀가 목욕하던 연못이라고 합네다’ 그가 전하는 전설을 들으니, 선녀를 아내로 맞이한 나무꾼의 기쁨이 여기 정상까지 전해져 오는 듯하다. 저절로 금강에 살어리랏다가 외쳐진다.
4. 평양 모란봉교예단 교예 관람과 축구경기 응원
목란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교예관람까지는 2시간 여 시간이 남아 있다. 온천욕 하기에 빠듯한 시간이지만 온천행 버스에 오른다. 금강산 온정리는 온천으로 유명한데 천연 온천수로 데우지 않은 자연그대로란다. 한 번 목욕하면 피부가 5년은 젊어진다는 속설도 있어 놓칠 수는 없는 기회이다. 노천에 마련된 탕 안에서 물마사지도 받으며 어제부터 차안에 앉아 지친 몸을 편히 누인다. 기분이 상쾌하다.
목욕을 마치고 문화회관으로 바삐 갔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우리들은 맨 앞줄이다. 평양모란봉교예단은 평양 외에 여기서만 교예를 한다고 한다. 굳이 서커스를 교예라고 할까, 싶은 맘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지만 관람이 끝나고는 음악과 어우러진 곡예가 ‘교예’로 불러질 만큼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정말 예술이다. 신기에 가까운 곡예에 박수 치고 또 박수 치고 그러면서 옆의 동료는 눈물까지 흘린다. 나 역시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재미있어서 일까, 아니면 그들이 불쌍해서 일까.. 모를 일이다.
온정각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 모두들 호텔로 술집으로 흩어진다. 토고와의 월드컵 축구경기를 시청하기 위해서다. 관광조장이 북측에서 야간 통행을 허락하지 않아 문화회관에서 단체로 축구응원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이리 허망할 수가.. 할 수 없이 아침에 약속한 술자리가 생각나 바삐 호텔로 향한다.
그런데 술 보다는 잠이 우선인가 보다. 그대로 쓰러져 잠을 잤는데, 잠결에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북측과 합의되었으니 토고전 축구경기를 단체로 모여서 응원할 수가 있다고.. 서둘러 문화회관으로 가니, 좀 전에 교예를 보았던 문화회관은 이미 붉은 옷으로 가득 차 있다. 모두가 소리 지르는 “대~한민국” 응원소리가 우렁차다. 신 바람나게 붉은 물결에 합류한다. 역전골이 들어갈 때 우리는 어느새 서로 껴안고 뛰고 있다. 승리의 순간 내지르는 함성소리에 기쁨이 폭죽과 함께 터지는 것 같다. 축구경기를 단체로 응원하는 것은 힘에 겨운 일이다. 그래도,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다.
축구경기가 끝나고 회관 밖으로 나가는 도중에 붉은 인파 속에서 북한 복장을 한 북측 지도원과 고위층 인사가 보인다. 어제 저녁 고성횟집에서 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도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아마도 응원을 열심히 한듯하다. 축구가 남과 북 그리고 우리를 하나로 묶고, 짙은 우정으로 맺어주는 것 같다.
5. 옛 모습 그리고 남북 협력을 바라며
마지막 날 점심은 옥류관에서 냉면이다. 예약을 하면서 까지 먹은 평양냉면은 단백하고 맛이 있는데 인공 조미료를 넣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접대원이 이쑤시개조차 평양에서 운반해 온 것이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옥류관 앞에서 만난 현대 아산 직원에게 여기의 생활을 물으니, 외국생활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 위험수당이나 그런 건 없지만, 외국체류에 따른 수당은 있단다. 다만, 휴가는 일년에 2번뿐이어서 아쉽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통일의 길에 ‘앞선 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하다.
그에게 금강산 사업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물었다. “남쪽은 자본주의 국가다. 북쪽은 노동을 중시하는 공산주의 국가다. 자본과 노동이 힘을 합쳐 금강산관광단지를 만들고 개성공단을 만들고 있다. 이런 남북 협력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로인해 우리는 평화를 얻을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는 온정각을 출발한다. 북측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버스가 가는 길 옆으로 나와 잘 가라고 인사한다. 이제 남으로 간다.
차창너머로 다시 붉은 기를 들고 서있는 북한군인들이 보인다. 이제 보니 그들은 하나같이 어린 얼굴이고 표정은 긴장한 듯 굳어있다. 그런데 그 들녘에는 그들만 있지는 않다. 그들 너머 들녘에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리고 가족도 보인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어머니는 수레를 끌고 수레에는 동생이 타고 그 옆에는 7세 정도의 남자애가 손을 흔들고 있다. 다른 논두렁에는 두 명의 아이들이 뛰어가다 뒤돌아 부모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모습도 보인다. 익숙한 장면들이다.
꿈결처럼 70년대의 내 모습이 연상된다. 여기는 내가 어린 시절 보던 나무 전신주가 있고, 뛰어놀던 뚝방이 있고, 낡은 스레트집도 있고, 일하느라 삐쩍 마른 소도 보인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런 누추함이 예전에 우리 남측에도 있었다고, 지금은 없지만“ 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여기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온 느낌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이 가난하다고 부족하다고 해서, 슬프고도 가슴 아프다고 내가 판단할 것은 아니지 싶다.
그저께 북축관리소 세관심사장에서 만났던 북측군인을 다시 거친다. 먼저는 발견하지 못했던 그의 손등 위에 있는 ‘우리’라는 문신이 보인다. 다른 손에 ‘하나다’가 있지 싶다.
버스는 다시금 비무장지대를 지난다. 오랜 세월 탓에 기울어 있던 "분단의 말뚝"이 더욱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남측 경계선을 따라 이동하는 국군들이 손을 흔들며 반가이 맞이한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금강산 참 잘 갔다왔다. 다시 가고 싶고, 또 가고 싶다. 금강산 가는 길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 서프라이즈에 올렸던 글인데 다시 올렸다 될까? 좀 망설였는데, 내가 힘들여 쓰고그린거라 한 곳에 모으고 싶었다. 박봉팔닷컴에.. 이 것외에는 오픈한 적 없다. 외장하드가 깨졌는지 저장 한거 보기가 어렵다. 정리되면 차례대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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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