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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동생과 자취를 했다. 나름 어렵지 않은 환경이라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힘들지는 않았다는 느낌이지만 세상에 쉬운 자취생활이 어디있겠나. 역시 먹거리가 힘들었다. 식욕이 한창 왕성할 때라 모친께서 해놓고 가신 음식만으로도 잘 버텼던 것같다. 그러나 음식을 차리고 치우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먹어야 산다고 도시락까지 싸갔다고 생각해 봐라. 그래서 집에 있을 때는 동생과 대충 순번을 정해서 음식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그랬다. 그게 당시 우리 집안의 불문율이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이 뭐 좀 품앗이를 하면 또 한 사람은 뭔가 그에 맞먹는 품앗이를 하는 거. 뭐, 다 그러겠지만 말이다~~
공휴일처럼 집에서 서로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는 왜 그리 밥때가 빨리 찾아오는지. 그래서 이렇게 음식문화 프로세스에 순번을 정하는 게 민주적이고 화목인 가정환경 유지에 필요했다. 그만큼 민주적인 형이었다는 말이다. 물론 예외 없는 법칙 없듯이 한 가지 예외는 파 등 부식거리를 사오는 일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딱 하나 있는 가게에서 사와야 하는데 그건 동생 몫이었다. 지금이야 벌건 대낮에도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거 거의 내가 다 한다. 그런나 그 당시에는 그 가게에서 두부나 콩나물, 뭐 이런 거 사오는 게 왜 그렇게 쪽팔리던지... 돌이켜 생각하면 아마 새댁들이 많았던 그곳 환경이 나를 그렇게 위축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이 좀 방향을 잃었는데, 여튼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가족모임에서 회자되는 게 이 동생놈의 설거지 신공이다. 설거지에는 순서가 있어서 적어도 물에 헹구고, 닦고, 마른 행주질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동생은 식사 후 내가 반찬류를 정리해 놓고 상을 접으면 벌써 씽크대에서 손닦고 나온다. 비누칠 해서 (당시 세제가 있었던가 모르겠지만) 닦을 그릇이 없을 때는 더 빠르다. 음식 그릇들을 챙기려고 일어설 때 벌써 손털고 나오기도 한다! 하도 어이가 없어 씻은 그릇을 현미경으로 살피듯 전수조사를 해도 흠이 잡히지 않는다.
부산까지 내려가 박봉팔닷컴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개척하고 있는 노근의 글에서 내가 댓글로 달았듯 설거지에 관한 한 동생보고 '니가 형 해라'하는 소리가 안 나올 수 없는 신공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녀석은 사회경제적 지표에서 지금 나보다 한참 위에 있다. (꼭 설거지를 잘 해야 성공한다는 말은 아니쥐^^) 녀석이 어제 전화를 했다. "아니, 형. 요새 전화도 안 하고 말야?" 그래서 내가 그랬다. "아, 그러게. 형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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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분좋다